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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고 영리한 영화 <트릭스>
문석 2009-11-11

synopsis 여름방학을 맞은 6살 소년 스테펙(다미안 울)은 기차 플랫폼에서 한 중년 남자를 보고 집나간 아빠라고 생각한다. 누나 엘카(에벨리나 발렌지아크)는 그 남자가 아빠가 아니라면서도 자꾸 신경을 쓴다. 아빠가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스테펙은 자신의 운을 시험한다. 장난감 병정 세우기, 철로에 동전 던지기, 비둘기 날리기 등을 통해 아빠를 엄마와 만나게 하려는 것이다.

<트릭스>는 기발하고 영리한 영화다. 순수한 소망을 가진 한 소년의 여름날 한철을 담은 이 영화는 오묘한 반복을 통해 깜짝 놀랄 즐거움을 선사한다. 영화가 시작해 중반에 이르기까지 주인공 스테펙이 벌이는 일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 6살짜리 꼬마가 비둘기떼를 왜 하늘에 날리려 하는지, 동전을 왜 자꾸 레일 위에 뿌리는지, 장난감 병정을 왜 철로변에 세우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의 행동은 거대한 계획에서 비롯된 것. 아빠(로 추정되는 남자)를 기차역에서 자신의 마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란 말이다. 그렇게 찾아온 아빠가 엄마와 재회하는 게 스테펙이 꾸민 ‘음모’의 결말이다. 동심원처럼 보이던 스테펙의 일상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나선형으로 상승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무시 못할 서스펜스로 발전한다.

스테펙에게 이런 믿음을 갖게 한 건 누나 엘카다. 엘카는 스테펙에게 행운을 불러오는 법을 가르쳐준다. 스스로 소소한 것을 희생함으로써 자신에게, 그리고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연쇄적인 ‘쿠션’을 통해 걸인에게 햄버거를 전해주는 초반 시퀀스는 뒷날 스테펙이 아빠에게 써먹는 수법의 전초전임과 동시에 ‘선한 의지는 결국 운명을 바꿔낸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미리 드러내는 장면. “리얼리티와 비현실적인 우연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것이 영화의 목표였다”고 말하는 폴란드 출신 안제이 자크모프스키 감독은 폴란드 교외의 팍팍한 풍경 안에서 삶의 마술 같은 진실을 발견해낸다. 또한 단순하지만 구석구석 정교함이 엿보이는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소년의 세계로 들어가도록 만들어준다. <트릭스>의 또 다른 열쇠는 스테펙을 연기한 아역배우 다미안 울이다. 울은 연기경험이 전혀 없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종 뚱한 표정과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이 귀여운 ‘사기극’을 완성한다. 삶이란 운명이 아니라 각자의 행위라는 작고 둥근 구슬들의 오묘한 부딪힘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스테펙처럼 두 주먹을 꼭 쥔 채 희망적인 결말을 기다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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