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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삼인삼색 2009, 옴니버스 영화 <어떤 방문>
주성철 2009-11-11

synopsis (홍상수 <첩첩산중>) 미숙(정유미)은 전주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서 스승이자 옛 애인이었던 상옥(문성근)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다음날, 친구 집에서 우연히 상옥의 물건을 발견하고 둘의 관계를 알게 된 미숙은 홧김에 명우(이선균)를 전주로 내려오게 만든다. (가와세 나오미 <코마>) 70년 전 ‘코마’라는 마을에 한 남자가 방문했는데 그는 우연히 한 아이의 목숨을 구했고 그 아이의 아버지는 감사의 뜻으로 족자를 선물했다. 시간이 흘러 현재, 그의 손자인 강준일(기타무라 가즈키)은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족자를 돌려주기 위해 코마를 방문한다. (라브 디아즈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 필리핀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마린두케섬은 오래전 캐나다 금광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캐나다 여성의 방문으로 모든 것이 바뀐다.

옴니버스영화 <어떤 방문>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2009’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개인적인 선호를 미리 밝히라면 <첩첩산중>이 가장 좋았고 그 다음은 상영 순서대로다. <첩첩산중>은 홍상수의 최근 장편들과 비교해 공간 이동의 횟수와 주요 캐릭터의 수가 다소 줄었을 뿐인데도, 그의 장편을 그대로 압축해낸 것 같은 마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면에는 여전히 대낮부터 초록색 소주병이 굴러다니고, 적당히 취기가 오른 인물들은 모텔 문을 들락거리며, 그렇게 화낼 사람은 화내고 할 말 없는 사람은 그저 원샷만 거듭하면서 홍상수의 세계를 채운다. 차이와 반복, 그리고 스산한 내레이션과 느닷없는 줌인이 그의 최근 영화들에 빠지지 않는 요소들이었다면 <첩첩산중>은 거기에 캐릭터들의 ‘오해’가 더해진다. 아마도 다시 과거의 ‘허세 문성근’과 조우했기 때문일까, 홍상수의 옛 영화와 최근 영화가 행복하게 단편으로 만난 것 같은 즐거운 충만함을 주는 작품이다.

<코마>는 가와세 나오미 영화세계의 거대한 바탕을 이루는 나라현의 숲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일단 편안하게 다가온다. 치유와 정화의 순간은 물론 마치 <수자쿠>(1997)의 어린 연인들이 나이 들어 만난 것 같은 느낌도 준다. 우리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가 들려오기도 하는 등 <코마>는 재일동포 3세 남자와 일본인 여자의 교감을 바탕으로, 양국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꽤 의미있는 접근을 한다. 준일은 하츠코의 일본 전통극인 ‘노’를 보며 판소리꾼이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 나라현의 미와산은 그렇게 두 남녀를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하츠코의 아버지로 나오는 배우는 바로 <너를 보내는 숲>에서 치매 노인으로 등장했던 우다 시게키다.

<코마>의 또 다른 주인공이 영적인 기운이 감도는 미와산이라면 그와 달리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는 이제 그 생명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마린두케섬을 배경으로 한다. 예전의 풍요로운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 반대의 사람들이 함께 술을 마시고 음모를 꾸민다. 어쨌건 그들은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이다. 개발의 부유함과 환경 파괴의 모순이 현재 필리핀 사회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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