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3살 때 호주로 입양된 루카스(박상훈)는 성인이 된 뒤 한국에 돌아와 생모를 찾지만 자신이 한국에 있을 때 대구의 보육기관에서 잠시 머물렀다는 것 말고는 다른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사진작가이자 여자친구인 마리(박지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대구로 내려간 성찬은 며칠 동안 모녀가 운영하는 기괴한 여인숙에 머물게 된다. 비슷한 시각, 낙태 수술을 받다 병원을 빠져나온 10대 미혼모 소연(김예리)은 무작정 대구의 한 고시원에 기거하며 자살을 결심한다.
“언제까지나 이방인으로 살 수는 없지 않소.” 알베르 카뮈의 희곡 <오해>(1944)에 나오는 얀의 대사다. 어릴 적 집을 떠난 뒤 중년이 되어서야 가족을 찾은 얀은 두둑한 지갑을 내보이며 환대를 기대하지만, 어머니와 누이는 그를 망치로 때려죽인 뒤 수장(水漿)한다. 탕자를 기다리던 건 죽음의 만찬뿐이었다. <귀향>이 <오해>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루카스의 파국은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양상은 사뭇 다르다. <오해>의 얀이 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어릴 적 이름을 일찌감치 털어놨던들 비극에 휘말리진 않았을 것이다. <귀향>의 루카스가 자신의 한국 이름이 주성찬임을 밝혔다면 어떻게 됐을까. “기억할 수 없는 것과 기억할 것이 없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귀향>에서 루카스는 말한다. 그에게 과거는 어떻게든 되살려내야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오해>의 얀은 떠났고, <귀향>의 루카스는 버려졌다. 얀의 귀향을 가로막은 건 망각이지만, 루카스의 귀환을 방해하는 건 부정(否定)이다. 혈육에게 루카스는 절대로 되살아나선 안되는 존재다. <오해>의 어머니는 비극 앞에서 탄식하지만 <귀향>의 어머니는 광기로 도망친다. 루카스가 과거를 더듬을수록 그의 어머니는 점점 유령으로 변한다.
카뮈는 <오해>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비극적 형식이란 불행의 엉덩이를 발길로 세게 걷어차는 것”이라고. <귀향>의 불행은 비극적 형식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연의 비명이 말해주듯이,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은 까마득한 과거가 아니라 여전한 현실이다. 루카스가 배냇저고리의 냄새를 맡으며 희미한 생의 순간을 떠올릴 때 소연은 그 옆방에서 수면제를 삼키고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때를 기다린다. <귀향>이 시종 공포영화의 기운을 빌려와 모녀의 여인숙을 채색하는 건 그런 끔찍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김기덕 감독과 고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박지아와 이화시, 모녀 역을 맡은 두 여배우의 눈빛을 느끼는 것도 좋겠지만, <귀향>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소연 역의 김예리(<바다쪽으로 한뼘 더> <푸른 강은 흘러라>)다. 루카스와 친모와의 관계를 암시하는 침실장면, 루카스와 소연의 피 묻은 아이를 한데 엮는 장면 등의 비유와 묘사는 직접적이거나 반복적이라 다소 아쉽지만, <귀향>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느껴지는 영화다. 안선경 감독은 연희단 거리패에서 배우, 연출가로 활동한 연극 무대 출신으로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