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속에 멈춰진, 먼지처럼 흩어진 기억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한 가족의 비극적 여정한국이름 ‘주성찬’ 호주이름 ‘루카스 페도라’.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그는 자신을 버린 땅 한국을 찾아온다.
그러나 그가 얻은 정보는 대구에서 발견된 미아라는 사실 뿐.
먼 바다를 건너 온 낯선 땅의 시간도 혼란스러운데 먼지처럼 흩어진 기억들을 쫓아 30년 전의 시간 속으로 떠나야 하는 성찬.
생모를 찾아 홀로 떠난 여행길에서 그는 한 모텔을 방문한다.
분명히 익숙한데 눈뜨고 나면 사라지는 이상한 꿈처럼 성찬 앞에 모녀로 보이는 두 여자가 등장하고 성찬은 알 수 없는 친밀감과 연민을 느낀다.
방문자를 죽이며 살아온 그녀들의 과거를 모르는 성찬.
운명의 길고 긴 밤은 그를 점점 과거의 상처 속으로 몰아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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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기영 감독 페르소나 ‘이화시’의 30년만의 본격적인 복귀작more
정열적인 두 여배우의 만남 : 박지아 vs 이화시
젊은 관객들에게 아직은 생소한 이름 ‘이화시’. 그러나 그녀는 고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 <파계> 등 많은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7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배우다. 그녀가 근 30년만의 본격적인 복귀작으로 영화 <귀향>을 선택한 건 강렬하고 매혹적인 시나리오의 힘이 컸다. 그녀와 함께 모녀지간을 연기한 배우는 ‘박지아’. 김기덕 감독과 함께한 <해안선>, <숨>, <비몽> 을 통해 절제된 차가움과 뜨거운 폭발력을 선보여온 그녀는 메마르고 거칠어 보이지만 어느 순간 내비치는 부서질듯한 연약함, 그리고 뜨거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지닌 모순적이면서도 복잡한 인물인 여주인공 ‘성녀’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빛과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정열적인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대결. 기대해봐도 좋을 듯 하다.
보석처럼 빛나는 신인의 발견! 박상훈 VS 김예리
입양인 ‘성찬’ 역을 맡은 배우 박상훈은 영화 <귀향>이 데뷔작이다. 낯선 얼굴에 한국말을 잘 못하고 영어를 native speaker 수준으로 해야 하는 ‘성찬’ 역을 애타게 찾던 제작진에게 어느 날 운명처럼 찾아왔다. 이름도 얼굴도 생소한 그는, 음악그룹 ‘멜로브리즈’ 멤버이자 국민배우 박근형씨의 아들이기도 하다. 신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촬영 내내 모든 스탭을 집중하게 만드는 연기의 힘. 조용히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배우로서의 면모가 벌써부터 돋보인다.
앳된 외모를 가졌지만 출산의 고통을 표현해야 하는 10대 미혼모 ‘소연’ 역 캐스팅 또한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러 후보들을 검토하던 중 촬영감독의 소개로 단편 <기린과 아프리카>를 보게 되었는데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여고생 역을 맡은 새로운 얼굴 ‘김예리’는 직접 만나보기도 전에 제작진을 사로잡았다. 아니다 다를까. 그녀는 지금 독립영화계는 물론 기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Hot’한 배우로 떠오르고 있다. <푸른 강은 흘러라>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파주>까지 눈부신 그녀의 활약.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력과 돌파력은 그녀가 타고난 배우임을 직감케 한다.
한국 영화 최초, 스위스 취리히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2009년 취리히 국제영화제에 영화 <귀향>이 공식 초청되었다. 2005년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가 공식 초청된 바 있으나 경쟁부문에 초청된 한국영화로는 <귀향>이 처음이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취리히 국제영화제는 짧은 기간 안에 유럽의 주요 국제영화제로 발돋움해오고 있을 만큼, 그 독특하고 차별화 된 안목으로 주목 받고 있다. 주로 미국과 유럽쪽의 영화들이 강세인 이 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로, 그것도 한국영화가 경쟁부문에 오른 건 극히 드문 일. 영화를 보는 내내 객석에서 ‘wonderful, incredible’과 같은 찬사가 터져나왔고, 영화제로부터는 ‘리얼리티 안에서 독특하고 강렬한 영화언어로 만들어진, 매 순간 신비로우면서도 무서운 순간을 만나게 되는 영화’라는 호평을 받았다.
알베르 까뮈 희곡 [오해]에서 모티브를 얻다
영화 <귀향>은 알베르 까뮈의 희곡 [오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비참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살인을 저질러온 딸과 그런 딸을 위해 자기 아들인지도 몰라본 채 방문자의 죽음을 돕는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자식을 낳았지만 동시에 버렸던 입양인들의 생모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입양인에게 그들은 갈망과 증오를 동시에 불러일으키지만 시간 속에 멈춰진 화석처럼 존재한다. 어머니로 대변되는 과거는 잊혀지지도 성장하지도 못한 채 무거운 그림자처럼 입양인들을 따라다니며, 아이를 입양 보낸 어머니는 모성을 잃었던 과거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평생 가슴에 돌을 안고 산다. 생모를 찾아 한국으로 떠나온 입양인들은 과거를 묻으려는 사회적 현실에 의해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며 결국 실체 없는 과거의 흔적을 찾아 부유하게 된다.
영화 <귀향>은 그런 낯선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는 한 입양인의 여정으로 시작한다.
N°1 : 주연배우 박상훈이 직접 작사,작곡,노래한 엔딩곡 ‘A Song for Luka’
그룹 ‘멜로브리즈’의 거의 모든 곡을 직접 작사/작곡/프로듀싱까지 해온 박상훈. 촬영이 끝난 후 영화 <귀향>과 성찬, 그리고 자기자신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제작진에게 곡을 들고 왔다.
가편집 중이던 감독은 듣자마자 이 곡을 영화의 엔딩곡으로 결정했다. 영화에서 미처 듣지 못한 성찬 내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기 때문. 스스로에게 편하게 말을 걸 듯 시작하는 이 노래는, 매일 어쩌면 매 순간 두려움에 떠는 자신을 달래고 있을 한 입양인의 독백과도 같다.
N°2 : ‘Stabat Mater Dolorosa’ Composed by Giovanni Battista Pergolesi / 편곡 누벨바그
‘스타바 마테르(성모애상, 聖母哀像)’는 26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작곡가 ‘페르
골레시’의 마지막 작품이다.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수녀원에 간 ‘페르골레시’는 그곳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십자가에 못 박힌 아들 예수의 주검을 바라보는 마리아’를 보고‘자식의 주검 앞에서 비탄에 잠겨 울고 있는 어머니’를 그린‘스타바 마테르’을 만들었다. 영화 <귀향>의 영화음악을 맡은 김동욱, 김기연(누벨바그)은 이 애절한 원곡을 편곡, 개사하여 성당 장면에 넣었는데 아이를 찾아 헤매며 자신의 죄의식에 고통스러워 하는 성녀의 내면을 너무나 잘 드러내어 주었다. <귀향>의 영화음악은 단절된 관계와 감정을 어루만지며 보이지 않는 정서적 내러티브로 영화의 깊이를 더해준다.
소외된 존재에 대한 연민, 그 뼈아픈 내면을 담는다 – 감독 안선경
1972출생. 대학시절부터 연극동아리에서 활발히 활동해오다 졸업 후 연희단 거리패에 배우로 입단, 연출가 이윤택에 의해 입단 2년만에 연출작을 맡는다. 연극을 왜 영화처럼 연출하느냐는 지인들의 말에, 영화에 대해 알고 싶어 영화를 시작하게 되고, 알베르 까뮈의 희곡 [오해]의 주인공‘마르타’를 연기하는 배우의 이야기 <마르타의 독백>이 그녀의 첫 영화가 된다.
마르타가 갈망하던 바다를 찾아가고 그녀를 닮은 사막을 찾아가던 감독은, 2009년 그녀의 첫 장편영화 <귀향>에서 마르타를 어머니의 존재로서 새롭게 창조한다.
<마르타의 독백,2002> 이후 구원을 기다리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고도를 기다리며,2003>, 연극 속에서 살인을 꿈꾸는 여자들을 보여준 <하녀들,2003>, 아내의 연애편지를 발견한 후 불안과 질투에 사로잡힌 남편의 일상을 그린 <열애기,2004>, 사랑에 대한 집착이 모멸감으로 변하는 실연의 마지막을 보여준 <10분,2005>, 연극과 현실을 오가는 배우 영민의 판타지를 헝클어진 시공간에서 풀어본 <유령소나타,2007>. 그녀가 만든 영화는 실존적이며, 늘 본질적인 그 무엇에 대한 강한 열망을 담는다. 가장 현실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걸 이끌어내는가 하면, 가장 추상적인 것에서 현실적인 것을 이끌어내기도 하는 감독 안선경. 한국영화계에 자기만의 확실한 색깔을 지닌 여성감독으로서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KAFA 22기 연출과 졸업.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촬영감독 이선영
아카데미 18기 촬영과 졸업 후 영상원 전문사로 들어가 김형구 촬영감독 밑에서 공부했다.
<난년이> <봄에 피어나다> 등 수많은 단편들을 촬영하면서 촬영감독이 되기 위한 탄탄한 준비를 밟았다. 아무리 잘해도 기회조차 주어지기 힘든 여자촬영감독으로서 노동석 감독과 함께 <마이 제너레이션>을 촬영했으며, 장편으로선 <귀향>이 두 번째이다. 묵묵히 그러나 감각적으로 완성될 영화를 위해 신나게 달리는 그녀의 모습을 현장에서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