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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영화] 모두가 다른 나날들
김연수(작가) 2009-10-22

고향, 영화 <스모크> 그리고 인생이란

이번 추석에는 (무려!) J군이 손수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회장님처럼 앉아서 귀향하는 호사를 누렸다. 새벽의 중부고속도로에는 귀향하느라 몰려든 차들보다 먼저 안개들이 부지런하게 나와서 이미 정체되고 있었으나, 덕분에 나는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잠들기 직전, 내 머릿속으로는 ‘금의환향’이라기보다는 ‘결초보은’ 같은 사자성어가 떠오르더라. 그간 J군에게 베푼 것이 얼마였던가? J군이 조야한 그림으로 원고를 때울 때도 나는 묵묵히 글을 쓰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휴게소에 갔을 때, 나는 주치의의 집중관리를 받는 회장님처럼 아이포드 터치의 한 프로그램에 따라서 담배를 한대 피웠다. 그 프로그램은 금연 (시도) 인생 십년 만에 내가 발견한 획기적인 금연, 아니 흡연 처방이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현재 자신이 하루에 피우는 담배의 개수를 입력하면 이 프로그램은 내가 담배를 피울 시간을 정해준다. 설명에 따르면 피우라는 대로 착하게 피우기만 하면 11월20일에 나는 하루에 담배 두 개비를 피우게 될 것이라고 한다. 계속 흡연할 것인지, 금연할 것인지는 그때 가서 스스로 결정하라는 게 이 놀라운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의 설명이었다.

이미 금연한 지 1년이 넘은 J군은 인간의 다양한 욕망의 삼각함수와 애증의 쌍곡선을 깡그리 무시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냥 끊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냥 끊으면 된다는 걸 누가 몰라서 다들 술이 취해서는 헤어진 애인 전화에다 대고 질질 짜고 그런다더냐? 이 피도 눈물도 없는 것. J군도 원래 그런 인간은 아니었다. 사실, 그 어떤 사람도 원래 그런 인간은 아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늦은 밤 담배 한갑을 산 J군이 자취방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성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마치 종갓집 며느리처럼 그 불씨를 지키기 위해 밤새도록 줄담배를 피웠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쏘쿨’하기까지 우리가 지킨 뜨거운 불씨가 그 얼마던가.

고향의 그 건물 앞에만 서면 나는 초등학생

고향에 내려간 나는 아버지와 함께 김천역 앞에서 식품점을 운영하는 작은외숙모를 찾아갔다. 어렸을 때, 우리집은 빵집이었다. 이름하여 뉴욕제과점. 작은외숙모의 가게는 그 오른쪽에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서울식품점. 뉴욕제과점의 왼쪽은 원래 남경반점 자리였다가 나중에는 밀타운이라는 음식점이 됐다. 비록 뉴욕제과점은 이제 사라졌지만, 건물의 외관은 그대로다. 그런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나는 얼마나 복된 것일까? 그 건물 앞에만 서면 나는 초등학생이 되니까 말이다.

올가을에 새 소설집이 출간되자, 작은외숙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뜻밖에도 작은외숙모는 요즘 시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작은외숙모가 시를 쓰게 될 줄은 전혀 몰랐으므로 정말 신기했다. 그건 작은외숙모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내 책을 칭찬했다는 사실을 몇번이나 일러주면서(“그러니까 그 선생님한테 꼭 책을 드려야만 한다.” “네.”) 작은외숙모가 말했다. “뉴욕제과점에 앉아 있을 때만 해도 너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 누가 알았겠나?” 하긴 그땐 나도 몰랐으니까. 초등학교 시절에 내게 제일 가능한 직업은 제빵기술자였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차라리 제빵기술을 배우는 게 낫다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으니까.

찾아갔더니 작은외숙모가 신문을 보여줬다. 하나는 그 선생님이 <김천신문>에 쓰신 서평. 다른 하나는 신문에 실린 작은외숙모의 시였다. 신문에 실린 사진과 이름을 보고 나서야 나는 어린 시절 거의 매일 작은외숙모를 만났지만, 그의 이름을 모르고 지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 시를 쓴다는 건 작은외숙모에게 자기 이름을 찾는 일이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로 아버지와 내가 찾아가자, 작은외삼촌은 우리를 밀타운 자리에 새로 생긴 복집으로 이끌었다. 우리 동네에서 맥주를 마시는 관습은 다음과 같다. 짝수로 맥주를 시키다가 일어설 무렵이 되면 “술은 홀수로 마셔야 하니까”라고 말하면서 입가심용으로 한병을 더 시킨다. 술은 무조건 첨잔이다.

그 술자리에서 나는 작은외숙모가 올해 일흔살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까무라치는 줄 알았다. 막연히 작은외숙모는 40, 50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아아아, 고향이란 그런 곳이었다. 그게 초등학생인 내가 먼 훗날을 생각하면서 꾸는 꿈인지, 마흔살이 된 내가 옛일들을 생각하며 회한에 잠기는 것인지 구별도 되지 않는다.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 건 그 프로그램이었다. 이제 담배를 피울 시간이 됐다는 것. 하지만 피울 엄두도 내지 않고 있는데, 작은외삼촌이 내게 담배를 건넸다. 내 나이 마흔. 이제는 아버지와 작은외삼촌 앞에서 담배 한 개비 정도는…, 뭔 소리냐? 턱없는 소리다. 내 눈에 작은외숙모가 40, 50대로 보인다면, 그분들의 눈에 나는 초등학생으로 보일 게 분명할 테니.

<스모크> 속 오기의 사진은 언제 봐도 찡해

고향에 다녀와서 웨인왕과 폴 오스터가 만든 <스모크>를 다시 봤다. 서울식품점 앞에 놓인 화분들을 들여다보는데 그 영화가 생각났다. 아무래도 ‘뉴욕’제과점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나는 그 영화가 참 좋다. 특히 폴 벤자민이 담뱃가게 주인 오기가 10년 넘게 매일 같은 거리를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언제 봐도 가슴이 뭉클하다. 다 똑같잖아. 아니야. 모두 다른 사진이야. 천천히 봐야 해. 그러다가 죽은 아내를 사진 속에서 발견하고 폴 벤자민이 우는 장면. 나도 매일 그렇게 사진을 찍었다면 어땠을까? 아버지와 작은외삼촌은 여전히 홀수에 맞춰서 맥주를 주문할 것이며, 두분의 잔은 비는 일이 없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 작은외숙모는 시를 쓰기 시작할 것이다. 마흔살이 된 나는 새로 나온 소설(그것도 열두 번째 책!)을 들고 서울식품점을 찾아갈 것이다.

아이포드 터치의 프로그램이 시키는 대로 담배를 피우다보면 과연 11월20일에 하루에 내가 피우는 담배의 개수가 두개 미만으로 줄어들까? 그건 장담할 수 없으나, 앞으로의 나날도 폴 벤자민이 들여다보던 사진과 같으리라는 것만은 알 수 있겠다. 다 똑같아 보이지만, 모두 다른 나날들. 우린 울고 또 웃겠지만, 모두 다른 순간들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생은 계속되겠지. ‘쏘쿨’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스모크>를 다 보고 난 뒤에 나는 담배 한 개비를 피웠다. 영혼의 무게를 재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니 참 맛있더라. 당연히 프로그램은 리셋했다. 인생을 리셋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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