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어본 제목이라고? 맞다. 이 책은 히치콕이 연출한 1935년작 동명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1915년에 쓰여진 첩보물의 고전인 <39계단>은 히치콕의 작품 말고도 두번 더 영화화되었고, <BBC>에서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으며, 연극으로 각색되어 한국에서도 무대에 올려졌고, 2011년 개봉예정으로 네 번째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
아프리카 생활을 마치고 영국에 돌아온 리처드 해니는 3개월 만에 고국 생활에 질려버린다. 어느 날 아파트로 돌아오던 길에, 그는 낯선 남자와 마주친다. “저 좀 도와주시겠습니까?”라고 입을 뗀 남자는, 자신은 국제적 음모를 막아야 하며, 추격자가 있어 몸을 피할 곳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한다. 남자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은 해니는 그를 집에 들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해니의 집에서 몸에 칼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된다. 해니는 죽은 남자가 나라를 위해 하고자 했던 일을 대신 하고자 마음먹고, 죽은 이의 비밀 수첩을 가지고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달아난다. 그는 경찰과 알 수 없는 추격자들을 피해 도망다닌다.
소설 <39계단>은 히치콕의 영화와는 세세한 면에서 꽤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히치콕적이다. 요즘 스릴러처럼 화려한 액션이나 몇번이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반전을 갖추고 있지는 않으나 간결하면서 스릴이 넘친다. 평범한 남자가 맨몸으로 경비행기와 자동차와 총으로 무장한 국제적 스파이들과 경찰을 피해 무사히 도망다닌다든지 복잡한 암호를 술술 풀어낸다든지 갑자기 변장의 명수가 되어 능숙하게 난관을 헤쳐나간다는 설정이 억지스럽긴 하지만 쫓기는 자의 급박한 심장박동을 독자가 느끼는 속도감은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매력적이다. 특히 해니가 ‘매처럼 눈꺼풀 아래 얇은 막’이 있는 악당과 마주치는 대목은 이후 수많은 첩보물에서 보아온 장면의 원형. 라이더 해거드(모험소설)나 코난 도일의 소설(고전 미스터리)과 많은 첩보물과 스릴러 사이의 교두보가 된 소설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쓴 존 버컨의 이력도 흥미롭다. 버컨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고전문학과 법학을 공부한 뒤 소설가, 수필가, 시인, 역사학자, 전기작가, 출판 편집자, 기자, 변호사, 군인, 첩보원, 하원의원, 캐나다 총독 등 소설 주인공이나 했을 법한 다양한 일을 경험했으며 어느 겨울 앓아누운 동안 신나는 이야기를 있는 대로 모조리 읽은 뒤 직접 한편 써본 게 바로 이 <39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