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배우 브누아 폴블루드는 프랑스 오피스 박스에서 가장 값나가는 배우다. 한데 브누아 폴블루드는 프랑스 사람이 아니다. 벨기에는 불어를 사용하는 발론과 플랑드르라는 두 언어와 두 공동체가 서로 불협화음을 이루며 공존하는 아주 복잡미묘한 작은 왕국이다. 그중 불어를 사용하는 발론은 프랑스 영화계에 세실 드 프랑스, 에밀리 드켄, 올리비에 구르메, 마리 길랭, 욜랑드 모로 등 몇몇 훌륭한 배우를 내놓고 있다. 이 스타들은 간혹 파리에 정착하기도 하지만, 대개 두 시간이면 프랑스의 수도를 브뤼셀로 이어주는 탈리 지방에 살고 있다. 왜냐하면 거구의 프랑스 옆에 붙어 있는 이 ‘납작한 나라’는 신이 나면서도 아주 조용하게 영화 붐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관객과 비평가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던 벨기에는 지난해에 5편, 올해 4편의 영화를 칸영화제에서 선보였다. 이제 벨기에는 대부분의 대형 영화제에 작품을 내놓고 있다. 영화인이자 비평가인 프레드릭 소쉐르는 <포지티프>에서 아예 “생산되는 작품 수와 수상작 수를 더하면 현재 벨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영화를 잘 드러내는 나라가 되어가는 중이다”라고까지 했다.
한국영화처럼 이러한 변혁은 기적이 아닌 일의 결과다. 2000년대 이후 벨기에는 그 나라 영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새로운 재정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해놓았다. 주로 지역에서 지원해주는 왈리마주라는 이 지원금은 다시 사립 투자가들의 세금을 면제해주는 탁스 쉘테르라는 시스템으로 배가된다. 게다가 벨기에는 브뤼셀에 있는 인사스(Insas), 루벵에 있는 이아드(IAD)라는 두 영화학교에 그 발판을 견고히 하고 있다. 벨기에 왕국 시네마테크가 젊은 영화지망생들을 키우는 중이다.
벨기에영화는 서로 상반되는 두개의 전통을 양성하고 있다. 초현실주의는 마그리트와 앙드레 델보 예술의 유산이다. 벨기에영화는 흔히 말랑드렝 형제의 <머리없는 남자의 손은 어디에 있나>처럼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한다. 벨기에 작품들은 유루술라 메이어의 <Home>에서처럼 어느 집 정원을 가로질러 난 고속도로라든지 아니면 벨기에에서 활동하는 프랑스인 들레핀느와 케르번의 <아비다>에서처럼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장롱 마을이 나오는 등 엉뚱하고도 우스꽝스런 상황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詩)에는 다르덴 형제나 루카 델보류의 사실주의가 접목돼 있다. 때론 이 두개의 전통이 젊은 조아심 라포스의 희한한 예술에 혼합되기도 한다.
칸영화제에서 두개의 대상을 받았으나 벨기에에서는 한국영화 붐이 일었을 때와 같은 축제 분위기나 스타시스템 설치나 제작비의 급상승 같은 것을 볼 수 없다. 벨기에는 프랑스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그 나라 배우들은 국경을 넘어서야만 스타가 된다. 말하자면 벨기에 왕국은 오히려 소형 작품들에 투자를 한다는 소리다. 이처럼 문화부는 대부분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되는 소규모 제작(최고 2만8천유로)을 지원해주는 구조를 가졌다. 1년에 두 작품을 만드는 이러한 소규모 지원은 이런 유의 영화제작에서 대개 자원봉사를 하던 작업팀 멤버들의 보수를 감당해준다. 이 아이디어는 정부가 대형 프로덕션의 호화스러운 영화산업에서가 아닌, 대충 뚝딱거려 만든 영화에서 유명 영화인이나 배우들이 배출된다는 걸 파악하고 난 이후에 나왔다. 우리는 여기서 일종의 지혜와 경험론적 예를 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 나라의 영화의 위대함과 미래는 부서지기 쉬운 가장 작은 작품들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