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백혈병에 걸렸다. 그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 그녀는 암에 걸렸다(무슨 암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루게릭병에 걸렸다. 우연히도 요즘 ‘심란한 영화’들만 줄줄이 보았다. 개인적으로 심란한 영화란 극중 인물들이 대책없는 병에 걸렸을 때다. 특히 사랑하는 이의 시한부 인생을 지켜봐야 하는 가슴 저린 영화다. 차라리 잔혹하고 끔찍한 살인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경우가 견디기 쉽다. 아픈 영화를 관람하고 극장에서 나오면 진이 빠진다. 감정을 탕진한다.
맨 앞 문장에서 나열한 환자들은 차례대로 <마이 시스터즈 키퍼> <블랙> <애자> <내 사랑 내 곁에>에 등장한다. 가장 보기 편한 영화는 <블랙>이었다. 아마도 가장 감정이입이 덜되어서였을 거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소녀 미셸의 기적을 만들어준 사하이 선생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황은 비극적이지만 객관화하기 수월했다. 감정이입이 잘된 영화는 <마이 시스터즈 키퍼>와 <애자>였다. 가족의 죽음이라서 그랬나보다. 어쩌면 개인적 경험과 맞물렸는지도 모르겠다. 가족 중 한명이 서서히 비참한 방식으로 죽어가는 과정을 보는 게 어떠한지를 20여년 전 몸으로 익혔기 때문이다. 두 영화 중에선 <마이 시스터즈 키퍼>보다 <애자>가 더 마음이 아팠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중간에 김이 샜다. 언니를 위해 맞춤아기로 태어난 동생이 몸에 관한 결정권을 사수하기 위해 엄마를 고소했다는 내용까지는 신선하고 애달팠다. 한데 갑작스런 반전 이후(그러니까 고소의 숨은 뜻이 결국 배려였다는) 그 가족의 사랑이 과연 ‘순정’인지 ‘청승’인지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별로 슬퍼지지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애자>에서 청승의 기운이 상대적으로 덜했다는 느낌이다. 최근 밀리언셀러의 자리에 등극한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명랑판이라고 해야 할까?(명랑해서 더 슬프다)
<내 사랑 내 곁에>를 보면서도 헷갈렸다. 이게 순정인가, 아님 청승인가. 그 지고지순한 연인의 사랑에 눈물을 적시다가도, 김명민과 하지원의 연기에 감탄하다가도, 루게릭병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다가도, 감독의 맑은 선의에 고개가 끄덕거려지다가도, 영화 중반 이후 자꾸만 무덤덤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패러디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긴 병에 효자관객 떨어진다”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오랫동안 병석에서 똥오줌 받아주다 보면 지친다. 느낌이 사라진다. 영화를 볼 때도 그렇다. 박진표 감독은 배우 김명민을 너무 오랜 시간 지겹도록 앓게 하지는 않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