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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집, <와니와 준하> 음악감독
2001-12-05

“시작보다 끝부분에 주력해요”

93년 여름, “정말 재밌는 것은 일로 하지 말고 취미로 남겨두라”는 극중 영민의 말대로라면 코스모스 졸업생 김홍집(33)에게 음악은 일로는 택하지 말아야 할 분야였다. 졸업이 눈앞에 닥친 대개의 신방과 졸업반 학생들이 그러하듯이 그 역시 한문책과 상식사전에 파묻혀 살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암기과목이라면 두드러기가 돋던 그가 한자를 외우고, 대부분 그의 인생과는 거리가 먼 항목들로 채워진 상식사전을 뒤지던 시간은 의외로 빨리 끝이 났다. 처음 낸 이력서가 덜컥 합격통지서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졸업도 하기 전의 일이었다. 후배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두달, 그는 불현듯 학회실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후배들에게 구경시킬 요량으로 사직서 양식 한부 빼오는 뜬금없는 용기를 발휘한 채. 그리고 그는 사회 진출계획을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남들보다 더 잘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것은 음악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로서 무대에 서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는 성급히 건반을 두드리거나 음표를 그려 돈을 벌기보단- 물론 돈도 안 됐다- 그보다 덜 창의적이지만, 평생 음악일을 하는 데 필요한 음반 기획과 제작에 관한 제반 지식을 쌓기로 했다. 두어 군데의 음반기획사와 몇 군데의 제작사를 전전하며 자우림, 조성빈, 황보령 등 주로 언더 가수들의 음반을 제작하는 한편 MBC 프로덕션에서 멜로드라마를 만들던 황인뢰 PD를 만나 드라마 주제곡에도 도전한다. 훗날 <행복한 장의사>와 <와니와 준하>의 음악이 탄생하게 된 데는 사실 이때의 음악작업이 큰 도움이 됐다. 소박하고 일상적이면서, 환상을 잃지 않는 스토리에 어떤 음악이 어울리는가에 관한 일종의 과외수업을 받았던 셈이다. 황 PD와 함께 MBC에서 예닐곱편의 드라마음악을 만들면서 그의 관심은 차차 영화로 옮아간다. 관록과 자신감이 붙었단 증거였다. 수수하지만 어딘가 마음을 끄는 음악으로 <행복한 장의사>의 한가로운 소도시 풍경을 수놓기 무섭게, <와니와 준하>의 음악을 맡기로 한 이재진(<파이란> <박하사탕> 음악감독)이 <내츄럴 시티>건으로 빠지면서 그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게 두 번째 영화작업을 하면서, 그의 작업실에서는 이례없는 광경이 연일 연출됐다. 대부분의 음악감독들이 써놓은 곡의 반도 못 쓰고, 감독이 골라쓰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 반해, 김홍집은 내내 “이만하면 돼지 않았냐. 더 쓸 필요 없다”고 하고, 김용균 감독은 “조금만 더 넣자. 한곡 더 만들어라”라고 서로를 얼렀단다. 그만큼 자신의 욕심보단 영화를 생각했다는 말일 터. “영화 속에서 쓰이는 음악은 치고들어갈 때보다 빠져나올 때가 훨씬 중요하다”는 소박한 진리를 마음껏 부려놓은 덕에 영화 <와니와 준하> 속 음악은 그 어느 영화보다 귀에 착착 감긴다.

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프로필

1970년생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88학번

대학교 2학년 때 아마추어 록밴드 결성

93년 졸업 뒤 대기업 입사

두달 만에 사표를 내고 디지털 미디어 등 여러 군데의 음반기획사와 제작사 전전

KBS 드라마 <여비서> MBC 드라마 <창포 필 무렵> <낮에도 별은 뜬다> <사랑에 대한 예의> 등의 주제곡 만듦

영화 <행복한 장의사>(1999), <와니와 준하>(2001)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