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중국영화를 만나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적벽대전> 같은 대작이 아니면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는 진지한 영화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9월18일 시작하는 2009 중국영화제는 중국의 대중영화를 한꺼번에 만나는 흔치 않은 기회다. 2006년과 2007년에 이어 CJ CGV와 CJ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는 행사에서 만나게 될 작품은 모두 15편이며, 9월18일부터 22일까지 서울 CGV용산에서 상영된 뒤 23일부터 25일까지는 광주의 CGV광주터미널에서 행사를 이어나가게 된다.
이번 상영작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건 개막작인 닝하오 감독의 <크레이지 레이서>다. 2006년작 <크레이지 스톤>이 중국에서 워낙 대단한 흥행을 거둔 이유도 있지만, 중국사회의 문제를 웃음으로 풍자하는 그의 영화적 역량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적이되 비판의식을 간직한 성향 덕분에 그는 중국판 <괴물> 연출자로 낙점되기도 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15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둔 <크레이지 레이서>는 <크레이지 스톤>보다 더 막 나가는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지지리 운 없는 남자 겅하오(황보)다. 사이클 선수인 그는 대회에서 은메달을 받았지만 음료를 파는 사기꾼에게 휘말려 도핑테스트에서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는 판정을 받는다. 그 일로 감독은 쓰러지고 겅하오는 트럭을 몰며 날품팔이 생활을 꾸려간다. 사기꾼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던 그는 결국 원수를 만나게 되지만, 국제적인 마약 조직과 어설픈 킬러들과 얽히면서 더 재수없는 상황으로 빠져든다. 캐릭터가 서로 꼬이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는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 같은 느낌을 주지만, 돈을 위해 살인을 청부하고 장례에 거액을 쏟는 중국사회의 실상 또한 풍자적으로 묘사된다.
폐막작인 서극 감독의 <올 어바웃 우먼> 또한 흥미롭다. 현대 중국 여성의 삶을 스타일리시하게 그리는 이 영화는 무협액션영화의 대가 서극 감독의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서극 감독의 존재감이 아니더라도 주신, 계륜미, 장우기라는 중화권의 세 인기 여배우가 함께 출연한다는 점 또한 이 영화의 볼거리다. 이들 세 여배우는 여성적 매력이 없는 의사 오판판(주신), 록밴드의 보컬이기도 한 인터넷 소설가 티에링(계륜미), 은행의 촉망받는 간부 탕루(장우기)를 맡아 코믹 연기를 보여준다. 사랑에 굶주린 오판판이 페로몬을 이용해 남자들을 유혹하면서 세 여성이 뒤얽히는 이야기는 다소 산만하지만 지금 중국사회에 대한 감독의 관점을 엿볼 수 있기에 지루하지는 않다. 서극 감독과 친분이 있던 곽재용 감독은 이 영화의 각본을 담당했으며 극중에 잠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중국 흥행영화의 대부 펑샤오강 감독이 만들었고 지난해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비성물요>, 마리원 감독의 로맨틱코미디 <도화운>, 떠오르는 신예 류강 감독의 <즉일계정> 같은 대중적인 영화가 주로 소개될 예정이다. 산세바스티안영화제 신인감독상 수상작인 차오바오핑 감독의 <리미의 추측>이나 고산지대의 소수민족 아이들의 교육을 다룬 <학교가는 길>, 올해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출품됐던 2D애니메이션 <창해상전> 등에서 완성도 높은 중국영화의 세계 또한 만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2009 중국영화제 홈페이지(www.cjcff.co.kr)에서 확인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