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즈> <청연>의 장진영이 세상을 떴다. 지난해 가을 갑작스럽게 위암 판정을 받은 이후 투병생활을 해온 장진영은 드물게 소식을 접할 수만 있었을 뿐, TV드라마 <로비스트>를 끝으로 공식적인 연예계 활동을 접었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 동안 장진영은 우리의 기억 속에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건강이 호전되리라는 모두의 바람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하지만 지난 9월1일 장진영은 헌 책방에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차가운 요플레를 좋아하고, <산타루치아>를 좋아하던 <국화꽃향기>의 ‘희재’처럼, 밀려 있던 시나리오들을 어느 것 하나 완성하지 못하고 떠나갔다. 아직은 더 보여줄 것이 많던 배우였기에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고인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다시 <국화꽃향기>를 봤다. 위암으로 인한 투병, 한 남자를 떠나간 짧은 결혼생활이라는 점에서 현실과 지나치게 겹치는 영화라 보는 내내 너무 불편했다. 영화 속 희재(장진영)와 인하(박해일)의 대사 하나하나 그대로 옮겨 써도 지난 얼마간의 상황과 딱 떨어지는 말들이라 눈시울이 뜨거워온다. 너무 소름끼치는 장면도 있었다. 사고로 가족을 다 잃고 홀로 폐인처럼 살아가는 희재에게 친구가 다그쳐 묻는다. “사는 거니 이게!” 그러자 희재는 담담하게 “죽진 않았잖아”라고 대답한다. 가족들 다 죽고 혼자 살아남은 게 오히려 더 미안한 일이라는 듯 무심코 내뱉는 그 순간의 표정과 한숨이 어찌 그리 심란하게 만드는 건지.
홀로 된 희재의 일상은 늘 같았다. 술은 차가운 맥주 반잔 혹은 콜라와 얼음과 레몬을 넣은 진 한잔 정도만 마셨고, 술을 마시면 배가 고파져 밥이나 빵보다 바나나로 배를 채웠다. 그런데 바나나란 게 과일답지 않게 먹으면 목이 메어 늘 생수와 같이 먹었다. 그리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싱싱한 요플레를 많이 먹는 것이라며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게 일이었다. 그렇게 장진영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다른 누군가와 호흡을 맞추며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이 아니라, 늘 프레임에 혼자 남아 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소름>에서 아파트 복도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던 장면, 혹은 연못가에서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는 장면, <국화꽃향기>에서 절대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녀가 못된 어린 학생과의 약속을 굳이 지키기 위해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 있던 모습, 혹은 싱크대 옆에 홀로 앉아 고통에 못 이겨하던 모습, <청연>에서 너른 비행장에서 목청이 터져라 울부짖던 모습,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반지하방의 침대에서 홀로 웅크리던 모습 같은 것들 말이다.
맑은 눈망울 당차고 씩씩한 모습
<자귀모>로 데뷔한 장진영이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반칙왕>이었다. 맑고 선한 눈망울에 당차고 씩씩한 모습, 그건 이후로도 변하지 않는 그녀만의 무엇이었다. 그리고 장진영이 맨 처음 하나의 작품을 책임지는 주연배우로 등장한 <소름>에서 그녀의 첫신은 편의점에서 병을 깨트리는 장면이었다. 뭔가 불만이 가득 차 있고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위태로운 상태의 그 모습은 그녀가 배우로서 어떤 확고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외면과 내면 모두를 갈아엎는 경험, 그 과정은 혹독했지만 ‘배우 장진영’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소름> 역시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지나치게 고통스런 영화다. 한국영화에서 여배우가 그렇게까지 맞아서 멍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느 순간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만큼 처절하고 잔인했다.
다시 분위기를 전환한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는 다른 이의 첫사랑을 찾아주려 노력하는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싱글즈>. 장진영의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이면서 여전히 많은 관객이 가장 기억에 남는 그녀의 작품으로 꼽는 영화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받으며 답답해하던 그녀는 밤하늘을 보고 맥주를 마시며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불렀다. 역시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무척 쓸쓸하고 슬프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이어 출연한 <국화꽃향기>는 현실과 겹쳐지는 부분을 떠나 장진영 특유의 씩씩한 면모가 하나의 아우라로 새겨진 영화다. 지하철에서 대자로 드러누운 아저씨의 몸을 밀쳐내며 임신부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던 그녀는 남자 후배의 정강이를 걷어찰 정도였다.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휘날리는 머릿결에 ‘국화꽃 향기’를 맡았다는 인하는 평생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장진영은 영화에서 늘 ‘오버’하면서까지 강해 보이려고 했던 배우다. 그것은 늘 뭔가 감추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면서 상대에게 관습적인 애교를 부리거나, 괜한 일로 기대지 않는 자존심이 강한 배우였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도 그녀는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먼저 다가가 휘어잡는 여자였고, 그 남자친구를 괴롭히는 남자에게 식칼을 들고 달려드는 여자였다. 세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청연>은 가장 짙은 안타까움과 억울함이 배어나는 영화다. 어쩌면 그런 장진영의 이미지와 개성이 집약된 영화였음에도 작품 외적인 구설수에 휘말리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쓸쓸히 간판을 내렸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여류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그린 <청연>은 개봉 10일 전,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제국주의의 치어걸, 누가 미화하는가’라는 제하의 기사가 게재됐고, 박경원의 친일행각을 고발하며 <청연>을 친일영화로 몰아간 것이다(그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해석은 여전히 분분하다). 그 글의 작성자가 조선 최초의 여류비행사로 공인된 권기옥 여사의 평전을 집필 중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문제의 기사에 자료를 제공한 학자(그는 박경원의 평전을 집필한 저자였다)가 자기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이미 인터넷은 박경원과, 그를 영화로 만든 윤종찬 감독과 장진영에 대한 반감으로 얼룩진 뒤였다. ‘치어걸’이라는 표현에다 ‘<청연> 안 보기 운동’까지 어지럽게 뒤엉키면서 영화의 진정성은 완전히 희석돼버렸다.
늘 강해보이려고 했던 배우
장진영은 과거 인터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 적 있다. 그것도 무척 단호하게 말이다. 그 두 작가를 성향과 스타일 면으로 엄격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건 내 능력 밖이다.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그 둘에게서 받는 인상은 미묘하게 다르다. 둘 다 기본적으로 무척이나 ‘쿨’한 사람들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상 그 모든 것에 무심한 나르시시스트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단절을 즐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무라카미 류는 좀더 퇴폐적이고 비관적이고 그보다 더 몰인정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희미하게나마 간절히 다른 이와의 소통을 원하는 아이처럼 느껴진다. 위악을 즐기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장진영에게서 그런 대답을 들었을 때 그녀를 향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우리는 아직 그녀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모습이 더 많고, 그녀 역시 이렇게 떠나가기엔 보여주지 못한 게 훨씬 더 많다. ‘주연급 여배우 기근’, ‘30대 여배우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떠도는 충무로에서 장진영은 확실한 주연의 존재감을 지녔던 몇 안되는 여배우였다. 그녀는 처음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도 전혀 어려 보이지 않았고 작아 보이지 않았으며 연약해 보이지 않았고 귀여운 척 칭얼대지도 않았다. 성숙하고 고전적인 풍모의 옛날 여배우가 떠오르는, 그리고 진짜 아름답고 맑은 ‘눈’을 가진 얼마 안되는 배우였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영화들을 보면서 참 많이 생각날 것 같다. 장진영이 있었으면 딱 어울리는 역할일 텐데, 하고 나지막하게 얘기하면서 말이다.
“이젠 통증의 사이사이 찾아오는 평안함을 소중히 여기려 합니다. 웃으며 그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아직 허락되고 있음에 감사하고 그의 손끝에서 전해져오는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내 몸이 사랑스럽습니다. 시간이 영원히 이어질 줄만 알고, 충분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충분히 고맙다 말하지 못하고 지나온 시간들을 가슴 아프게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 지금일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보다 행복했습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사랑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국화꽃향기>에서 희재(장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