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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파장 <조용한 혼돈>
정재혁 2009-08-26

synopsis 해변에서 공놀이를 하던 형제 피에트로(난니 모레티)와 카를로(알레산드로 가스만)는 물에 빠진 두 여자를 구한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며 투정을 부리고 집에 돌아온 둘. 피에트로에겐 예상 밖의 아내의 죽음이 기다린다. 갑작스레 부인을 잃은 그는 회사를 가는 대신 딸의 학교 밖에서 하루를 보낸다. 회사에선 합병 이야기로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지만 피에트로의 마음을 붙잡는 건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가정이란 공간이다.

한 여자의 목숨을 구하는 동안 자신의 아내가 목숨을 잃는다. <조용한 혼돈>의 시작은 이 장난스런 우연의 일치다. 피에트로와 카를로가 별장 근처 해변에서 전혀 모르는 여자 둘에 몰두하던 시간 피에트로의 아내는 집 2층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피에트로는 남겨진다. 딸과 단둘이. 출근을 포기하고 딸의 학교 밖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는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을 마주한다. 매일 같은 시간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 차를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정신지체아와 개와 함께 산책을 나오는 여자. 직접 만든 파스타를 나눠주는 한 노인까지. 영화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남기고 간 어떤 구멍 속에 피에트로를 밀어넣으며 이야기를 꾸려간다. 조용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파장이 피에트로의 마음을 흔든다.

피에트로의 딸은 엄마가 세상을 뜬 바로 다음날 학교에서 회문(回文)에 대해 배운다.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같은 말. 이 장난스런 문장의 어순은 어떤 일이든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은 환영을 안겨준다. 피에트로가 거리를 오가며 머릿속에서 되뇌는 기억들도 회문에 대한 희망과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이용해본 항공사의 이름, 여태 살았던 주소지의 목록, 아내인 라라에 대해 그동안 몰랐던 것들의 리스트,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들. 서슴없이 이어지던 이 리스트는 피에트로에게 가장 치명적 장소가 되어버린 그의 별장 앞에서 멈춘다. 아내의 죽음을 방치한 그곳. 영화는 후반부 딸과의 여행 속에서 회문의 입구를 닫아버린다. 혼돈의 파장이 불러일으킨 무기력한 어리광은 현실적인 치유와 함께 자연스런 평온함으로 제자리를 찾는다.

영화는 이탈리아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안토니오 루이지 그리말디 감독은 책속의 구절을 인물의 나레이션, 표정의 조각들로 차곡차곡 쌓다 음악으로 융합하곤 하는데 그 효과가 꽤 좋다. 라디오 헤드, 루퍼스 웨인라이트, 이바노 포사티의 음악은 더 없이 적절하고 각본 단계부터 참여한 난니 모레티의 정적이지만 임팩트 있는 연기도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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