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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야스쿠니 오뎅
고경태 2009-08-21

광복절 특사가 되고 싶었다. 국가권력의 은총을 입기를 열망했다. 제발 8월15일을 기해 대규모 특별사면이 남발(!)되기를, 그 명단에 끼게 되기를 빌었다. 그리하여 부자유의 기간이 절반으로 줄었으면 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노무현 정부는 그 ‘비원’을 외면했다. 올해 여름처럼, 그해 광복절에 ‘사면 잔치’는 없었다. 2003년의 일이다. 특별사면에 목매는 처지가 됐던 사연은 밝히기 뭐하지만….

영화 <광복절 특사>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6개월 뒤다. 2002년 11월에 개봉한 영화지만, 나는 2004년 1월 베트남의 중부도시 다낭에서 봤다. 하노이행 비행기 시간을 8시간 남기고 할 일이 없어 주변 극장을 찾았다. 한국인 ‘킴’이 사장이라는 멀티플렉스였다. 베트남에선 외국영화나 TV드라마의 모든 대사를 한 사람이 더빙한다. 일종의 변사다. 베트남어 더빙이 잽싸게 끝나곤 해 한국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알다시피 광복절 특사로 곧 석방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두 죄수가 굳이 탈옥을 감행해 온갖 뜨악한 고초를 겪는다는 스토리다. 설경구와 차승원 때문에 너무 심하게 배꼽을 잡아 잊을 수가 없다. 광복절 특사에 끼지 못한 현실의 한을 영화가 풀어준 셈일까.

물론 <광복절 특사>는 광복절 영화가 아니다. 광복절의 의미에 걸맞은 영화라면 <야스쿠니> 정도는 돼야 한다. 배급사가 개봉일을 8월에 맞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관객의 심장에 천천히, 그러나 깊이 메시지를 박는 다큐멘터리였다. 정리하자면,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반성하지 않는 야스쿠니도의 존재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인은 그 칼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가. 그걸 아는 것은 식민지 국가 출신 아시아인으로서 최소한의 교양이다. 둘째, 대만 출신 2만8천명, 조선 출신 2만1천명의 합사문제다. 어처구니없게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이들이 빨리 풀려나도록(광복절 특사로?) 좀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게 합당하다. 분노를 안고 영화 <야스쿠니>를 관람하실 분들은 이번호 김소영 교수의 전영객잔(98~99쪽)을 참고하시길.

개인적으로는 <야스쿠니>를 보며 전혀 엉뚱한 문제를 떠올렸다. 영화에서는 야스쿠니 신사의 전쟁기념관인 류슈칸(遊就館)을 비춘다. 지난해 1월 도쿄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야스쿠니 신사를 돌아보면서 그곳엔 들어가려다 말았다. 왜? 입장료가 말도 안되게 비쌌다. 다른 박물관의 다섯배는 됐다. 나오는 길엔 신사 안의 어묵 가게에 들렀다. 아이들이 배고프다며 떼를 써서였다. 그곳에서 셈을 치르며 더 뿔이 났다. 본래 일본 물가가 비싸다지만 여긴 도를 넘었다. 가장 악랄한 가격이었다. 군국주의 귀신 기념관의 또 다른 얼굴은 ‘바가지’였다. 내가 뼈에 사무치게 야스쿠니 신사에 분개한다면, 그건 오뎅값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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