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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어웨이크닝> 10대여 잠자는 폭풍을 깨워라
김용언 2009-07-30

토니상 11개 부문 휩쓴 브로드웨이 화제의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한국에서 본다

1990년대 초반 한국 10대들에게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있었다면, 2000년대 10대들에겐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있다. 전교조 사태가 처음 터지고 수많은 교사들이 학교를 떠날 때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며 책상 위에 올라서는 것조차 엄청난 저항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와, 일상에 넘쳐흐르는 섹스와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해진 시대의 간극은 이렇게 크다. 혹은 <하이스쿨 뮤지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역겨움을 느꼈고 <가십걸>의 셀러브리티 흉내에 짜증이 났다면, 독하고 낯선 <스프링 어웨이크닝>로부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는 사랑에 빠지고 말 것이다. 지난 7월4일부터 시작, 내년 1월1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되는 국내 초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21세기에 맞닥뜨린 가장 중요한 문화적 아이콘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제도에의 반항·자살·자유로운 섹스…

1891년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 <스프링 어웨이크닝: 청소년기의 비극>이 발표되었을 때 독일사회는 경악했다. 10대 중반 소년, 소녀들이 노골적으로 사회와 학교, 교회와 부모에게 저항하고 자살을 시도하거 섹스를 감행하는 이 작품은 전체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독일을 발칵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생각해보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출간된 건 1900년이다. 프로이트는 심지어 유아기에도 잠재된 성욕이 있으며 그것을 억압하는 것이 인간의 모든 증상을 규정짓는다고 선언했다. 그 이전에 나온 <스프링 어웨이크닝: 청소년기의 비극>이 스캔들이 된 건 당연했다.

1999년 작사가 스티븐 세이터는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유지해온 록 뮤지션 던컨 시크에게 10대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스프링 어웨이크닝: 청소년기의 비극>을 소개했다. 시크는 즉시 이 작품에 매혹되었다. “저녁 시간대 방영하는 가벼운 엔터테인먼트 10대물이 아니었다. 여기엔 희극과 비극, 사랑과 정욕, 배신과 고통이 공존했다. 삶의 풍성하고 충만한 측면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작품이었다.” 한편 연출가 마이클 메이어는 오랜 친구 세이터를 우연히 만났다가, 시크와 함께 <스프링 어웨이크닝: 청소년기의 비극>의 뮤지컬 버전을 구상 중이라는 말을 듣고는 껑충 뛰어올랐다. “맙소사, 나 18살 때 처음 읽고 완전 반했던 작품이었어!”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느슨하게 작업을 시작했고, 8년 동안 수차례의 워크숍을 거치며 조금씩 다듬어갔다. 심지어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2006년 6월15일 처음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날까지도 수정은 거듭됐다. 다들 조금씩 불안해했다. 관객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차츰 입에 입을 타고 호평이 흘러나왔다. 공연 오픈 2주 뒤, 마이클 메이어는 “그날 처음으로 배우들이 작품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노래가 극장 벽을 뚫고 나갈 것 같았다. 갑자기 처음으로 165석의 애틀랜틱 극장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그날 밤, 제작진들은 조심스럽게 브로드웨이 진출을 거론했다.

메이어는 처음엔 “이 작품이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아닐뿐더러 브로드웨이에서 받아들여주지도 않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2004년부터 프로듀서를 자청했던 톰 헐스(<아마데우스>의 그 아마데우스) 역시 조심스러웠다. “<렌트> 이후 10년이 지났다. 브로드웨이 신작들은 대부분 관객에게 익숙한 영화를 기반으로 한다. 오히려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10년 전에 왔더라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6년 12월 강행한 브로드웨이행은 결국 기적을 낳았다. <뉴욕 타임스>는 “그동안 젖비린내 나는 궤변과 진부한 로맨스로 일관하던 브로드웨이는, 더 이상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고 했으며, <뉴욕 옵저버>는 “보아야만 믿을 수 있는 기적”이라는 찬사를 퍼부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2007년 제61회 토니어워즈에서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그중 8개 부문을 휩쓸었다. 최우수 작품상, 대본상, 작곡상, 연출상, 안무상 등이 망라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우리의 수치심은 전부 교육 때문이다”

가장 놀라운 점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100여년 전 희곡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음에도 21세기와 동시대성을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19세기 말 독일 김나지움의 10대들이 겪는 뼈저린 성장통은, 놀라울 정도로 현재 10대의 질풍노도를 선명하게 잡아챈다. 점점 성인이 되어가는 자신의 몸이 신기한 소녀 벤들라는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 거냐”며 묻지만, 얼굴이 벌게진 엄마는 벤들라의 호기심을 나무란다. 악몽에 시달리는 섬약한 소년 모리츠는 은행가 아버지와 엄한 선생님 모두에게 바보 취급을 당한다. 총명하고 자립심 강한 소년 멜키어는 “우리의 수치심은 전부 교육 때문이다”라는 급진적인 생각을 설파한다. 소년들은 몸에 꼭 맞는 교복에 니삭스를 신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 라틴어 원문을 낭송한다. 소녀들은 치렁치렁한 원피스를 입고 현모양처 교육과 사회봉사활동에 전심전력한다. 그러나 첫 순간 느껴지는 낯섦은 잠시, 그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는 순간 관객은 몰입하기 시작한다.

그 공은 전적으로 스티븐 세이터와 던컨 시크, 그리고 안무가 빌 T. 존스에게 돌아가야 한다. 던컨 시크는 <스프링 어웨이크닝> 사운드트랙을 얼터너티브 록, 혹은 포크록의 리듬과 선율로 작업했다. 주인공들이 품속의 마이크를 꺼내며 노래하는 순간, 그 노래는 그/녀의 독백이자 욕망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비밀스런 통로가 된다. 그것은 관객을 바로 자신들의 10대 시절로 ‘존트’시키는 마법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몇 십년 동안, 아이들이 고통과 열망과 성적 좌절과 분노를 분출할 수 있는 통로는 록 뮤직뿐이었다.”(스티븐 세이터) 메이어 역시 동의를 표했다. “19세기 시대극과 가라지 밴드 느낌의 병치 같은 형태를 상상했다.” 메이어는 마이크야말로 캐릭터들에게 ‘힘을 부여하는’ 도구임을 강조했다. “벤들라가 혼자 노래하는 오프닝신을 보자. 그녀는 거울을 보면서 혼자 읊조리는 듯 노래한다. 그러다가 다른 소녀들이 등장한다. 그들 중 하나가 벤들라에게 마이크를 건네고, 그순간 벤들라는 섹스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는 엄마를 향한 분노를 제대로 표현할 길을 찾게 된다. 그녀는 ‘진짜로’ 노래를 시작한다. 교실의 소년들이 <The Bitch of Living>을 부를 때도 마찬가지다. 소년들에게 욕실에, 침실에서 혼자 있는 순간을 상상하라고 요구했다. 그럴 때 너희들은 빗을 집어들고 자신만의 록 스타가 된 기분에 도취되지 않느냐라며. 그들 마음속의 록 스타가 되어, 아무도 자신을 지켜보고 있지 않다는 해방감에 취해 말이다.”

또한 존스의 안무는 10대 주인공의 억압된 육체적 충동에 생명력을 주는 몸짓이다. 대사 없이, 배우들의 몸만으로 전달되는 어떤 격렬한 감정들이 있다. 메이어는 브로드웨이 출신 안무가가 아니라 실험적인 현대무용 안무가 빌 T. 존스를 선택했다. 본격적인 안무에 앞서, 존스는 배우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동작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The Bitch of Living>을 위해, 존스는 남자배우들에게 “‘비치’라는 단어가 네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물었다. 그리고 배우들로 하여금 자신을 마주본 채 ‘비치’라는 단어를 연거푸 소리지르도록 했다. 그러면서 존스는 배우들의 몸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를 관찰했다. 그것이 안무의 기본이 되었다. 한국 공연에서 멜키어 역을 맡은 배우 김무열도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춤이 굉장히 다른 차원이라며 동의했다. “배우 입장에선 연기인지 춤인지도 모르겠다. 연기를 하면서 움직이는 동작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때문에 춤을 추면서 신이 난다. 다들 감정이 격해져서 끓어오르는 걸 표현하니까, 배우들 모두 담에 걸렸다. 이렇게 파스 붙이고 춤추는 게 정말 오랜만이다.” 모리츠를 연기하는 배우 조정석은, “내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게 아니라 누가 내 얼굴을 만진다고 느낀다. 내 가슴을 내가 어루만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 나를 꼭 안는다고 느낀다. 그런 상상을 하는 안무다. 그 정확한 뉘앙스와 뜻이 관객에게까지 전달되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어쩌면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지금 10대들을 사로잡기 위해선 더이상 (역시 10대들이 주인공이었던) <그리스>나 <토요일밤의 열기>처럼 달콤한 올드팝이나 경쾌한 디스코여선 안된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관객의 압도적인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노래 <Totally Fucked>에 등장하는 춤은 조이 디비전의 ‘데드 플라이 댄스’를 연상시킨다. 조이 디비전의 보컬 이언 커티스는 결국 자살로 끝을 맺기까지 경험한 격렬한 심적 갈등을, 마치 감전된 듯한 몸부림으로 표출했다. 그러니까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조이 디비전의 이언 커티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엘리엇 스미스처럼 부서지기 쉬운 영혼을 사랑했던 10대들, 혹은 그런 10대였던 이들을 위한 작품이다.

한국의 12개 회사가 덤벼든 최고 화제작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한국 공연을 진두지휘한 곳은, 그동안 <쓰릴 미> <김종욱 찾기!> <스위니 토드> <씨 왓 아이 워너 씨> <마이 스캐어리 걸> 등을 제작한 뮤지컬헤븐이다. 뮤지컬헤븐의 박용호 대표는 2006년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처음 접했다. “10대 소년 소녀가 실제 (어느 정도) 노출을 감행하며 섹스를 연기한달지, 자살장면이 노출된달지, 비속어가 난무한달지에 대해선 미국 역시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다. 그럼에도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엄청난 화제였다. 그래서 보러갔고, 나 또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뮤지컬 일을 오래 했음에도 몇번 느끼지 못한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박 대표는 곧장 메이어쪽과 한국 공연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메이어쪽이 브로드웨이 진출을 시도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박 대표와 연락을 두절하다시피하면서 모든 사안을 토니상 이후로 미뤘고, 결국 토니상을 휩쓸고 난 뒤 문제는 커졌다. “무려 12개의 한국 회사가 덤벼들었다. 그중 서너 군데는 뮤지컬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초짜였다. 그러면서 돈이 엄청나게 올라갔다. 미친 짓이다. 약이 올라서 끝까지 싸웠다. 이 작품을 너희들이 가져가도 제대로 못 만들걸 하는 오기가 생겼다.” 그러면서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뮤지컬헤븐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6개월짜리 장기공연이라는 조건으로 시작되었다.

박 대표는 처음부터 ‘레플리카(replica, 복제) 프로덕션’을 염두에 두었다. 그는 오리지널 작가와 작곡가와 연출가가 애초에 의도한 바를 그대로 한국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선, 정말 ‘똑같이’ 봐야 한다는 생각을 밀어붙였다. “일단 무대가, 의상이, 무대 소품이, 조명이 똑같아야 했다. 연출의 선이, 음악과 대사가 오가는 가운데 배우들의 동선이, 안무가 똑같아야 했다.” 그는 소설 번역을 예로 들면서, 원작자의 모든 문장을 가능한 한 원문의 의미에 가깝게 번역하는 건 당연하게 여기면서 왜 뮤지컬에선 그게 안되는지를 되물었다. “한국에서 외국 연극이나 뮤지컬을 공연할 때, 윤색을 많이 한다. 맘에 안 들거나 이해 안되는 부분을 창작 수준으로 바꾸거나, 1막과 2막을 합쳐버리기도 한다.” 연출자를 비롯한 스탭들은 미국과 영국쪽 워크숍에 직접 참여했고, 미국의 안무팀이 한국 공연팀 크리에이터 역할을 담당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코워크’를 진행시켰다. 대사와 가사의 경우는 더욱 공을 들였다. 스티븐 세이터의 다의적 가사를 일대일 한국어로 옮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국 스탭들은 일단 그 가사를 직역한 다음, 완전히 해체하여 한국말로 뜻이 통하게 다시 다듬고, 그것을 영역하여 세이터에게 보냈다. 세이터가 그것을 보고 오케이 사인을 내고서야 작업은 진행될 수 있었다. 그 작업에만 6개월이 걸렸다.

배우 선정 과정도 까다로웠다. 일단은 15살 소년 소녀를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어려 보여야 했다. “한마디로 내추럴한 배우들을 뽑으려고 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 오디션장에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몰려들었지만 대부분 탈락한 이유는 “꾸미려고 하는 마음이 강해서”였다. “스킬이 매우 유용한 순간이 있지만, 이 뮤지컬은 특히나 가슴으로 연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후보 중에서 걸러진 배우들은 또다시 기나긴 워크숍 과정을 거치며 최종 오디션에 합격해야 했다. “이 작품에선 모두가 유기적으로 그림을 구성해줘야 한다. 소년 소녀 배우가 11명, 어른 역 배우들이 2명, 그리고 무대 양옆 코러스가 4명, 총 17명의 배우들이 모두가 공연 내내 집중해야 한다. 모두 똑같이 자기의 미션이 있고, 하나라도 놓치면 다 깨진다. 이런 공연은 한국 배우들이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무대장치나 특수효과의 도움 없이, 현대적인 록뮤직과 배우들의 연기로만 철저하게 진행되는 진검승부다.” 뮤지컬계의 최고 스타 김무열과 조정석 역시 그렇게 정식 오디션과 워크숍을 거쳐 선발되었고, 벤들라 역의 김유영은 생짜 신인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1200 대 1의 경쟁률을 이겨냈다. 이들 모두, 제작진의 기대에 부응하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호연을 펼친다.

그 노래가사에 긴장을 늦출 수 없네

이 작품은 여타의 뮤지컬들처럼 음향효과를 ‘빵빵하게’ 키우거나 배우들의 열창(처럼 들리는)을 최대한 강조하는, 그리하여 아이돌 스타 콘서트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순간의 노래, 한순간의 춤이 중요한 공연이 아니다. 대사는 빡빡하고 지적이며 정교하고, 거의 시처럼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구조를 띤다. 가사 역시 대사의 연장선상이자 일부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노래에 무척 주의깊게 귀기울여야 한다. 적당한 볼륨에서, 자연스럽게 독백하듯 나오는 노래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배우들은 그 어려운 미션을, 오로지 자신의 몸과 목소리를 통해서 두 시간 동안 팽팽하게 재현한다. 관객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통해,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억눌려 있고 잠들어 있던 10대 시절의 그 감수성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모든 10대이자 10대였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절대적인 찬가다. 놓치지 않길 권한다.

ps.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진행중이다. 감독으로는 <미녀 삼총사> <터미네이터4: 미래 전쟁의 시작>의 맥지가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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