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감은 호감이다. 발음이 ‘맛있는’ 몇 가지 외국말을 골라본다. 첫째, 사이공이다. 베트남 남부지방의 도시 이름이다. 어원은 불분명하다. 맨 뒤 ‘공’자를 길게 늘여뜨려주면 더 좋다. 입에 착 달라붙는다. 향락의 거리를 거니는 아오자이 입은 여인이 떠오른다. 아마도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에 가끔 등장하던 옛 남베트남 수도의 영화(榮華)가 오버랩돼서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호찌민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베트남인들은 ‘사이공’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말엔 야릇한 울림이 있다.
둘째, 안나푸르나다. 아득하지만 당당하게 버티고 선 히말라야 설산의 고봉들이다. 두 번째 음절 ‘나’와 세 번째 ‘푸’ 사이에 호흡을 한번 쉬어주는 게 좋다. 여러 번 되씹어 불러도 새록새록 참신하다. 쉽게 갈 수 없으나, 죽기 전에 언젠가는 꼭 한번 발을 디디고픈 이상향 같은 지명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수확의 여신’이라는 뜻도 심상치 않다.
셋째, 바캉스다. 휴가의 프랑스어다. ‘캉’에 악센트를 넣는 것이 좋다. 여름 해변의 안락의자가 머릿속에 펼쳐지고, 뭔가 기분 좋은 섬싱이 벌어질 것 같은 설렘을 선사한다. 올여름 바캉스 계획은 잡으셨는가. 이번호 <씨네21>의 화두는 바캉스다. 문화적인 바캉스다.
넷째, 킹콩이다. 알다시피 영화 속 고릴라다. 뒷음절 ‘콩’을 느긋하게 발음해보자. 킹코옹~. 귀여운 발음이다. 킹콩은 사납지만 순정으로 가득한, 슬픈 이름이다. 영화 <킹콩을 들다>의 보성여중 역도부 코치 이지봉(이범수)도 그런 순정남이다. 심장이 조여오는 고통으로 자주 가슴을 두드리는 그를 어린 선수들은 ‘킹콩’이라 부른다. <킹콩을 들다>의 킹콩은 <킹콩>의 진짜 킹콩처럼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이 지점에선 어쩔 수 없이 노무현이 연상된다. 박건용 감독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킹콩을 들다>는 현재의 한국사회가 처한 상황을 은유한다. 전 코치 이지봉을 부정하며 아이들에게 무자비하고 모멸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새 역도코치 심상환(김산)은 꼭 누구 같다. 그래서 더 슬프다.
마지막으로는 ‘비호감’ 외국어다. 사이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싸이코’라고 발음하면 더 음산해진다. 그냥 기분 나빠진다. ‘킹콩’이 죽은 뒤 ‘싸이코’처럼 바뀌어가는 대한민국이다. 시국선언을 이유로 전교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건 쌍팔년식 사이코 공권력의 대한늬우스적 포즈였다. 심지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시국선언에 참가한 관계자가 사표를 던졌다. 사이공으로든, 안나푸르나로든, 평생 바캉스라도 떠나야 시름이 풀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