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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는 시나리오] <킹콩을 들다>

역도복에 두근두근

베이징올림픽 여자 역도 53kg급.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왠지 모를 먹먹한 느낌에 침이 바짝 말라왔다.

‘자, 심호흡을 깊게 하고.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엉덩이는 바싹 당기고.’

단상으로 올라서며 탄산마그네슘 가루를 손과 목덜미에 잔뜩 털어 발랐다. 운동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결심한 뒤부터, 그는 승패가 결정되는 이 순간의 숭고함에 대해 생각해왔다. 그를 발굴한 고 이지봉(이범수) 코치의 가르침대로 역도는 ‘자신’을 상대로 한 외로운 싸움이었다. 역기 앞에 서면 ‘바벨’과 그것을 꼭 들어올리고 말겠다는 역사의 순정한 정신만이 남았다. 그는 자주 실패했고 이따금 선수 생명을 위협할 만한 부상을 입기도 했다. 지역 유지이던 그의 아버지는 자주 가슴을 찍었다.

“얍!”

바벨로 다가서며 기합을 외쳤다. 지금까지 이지봉 코치 외에 그의 가능성을 알아봐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주변엔 너무나 많은 라이벌이 있었다. 한살 아래인 보영(김민영)은 천하장사였다. 역도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출전한 전라남도 첫 대회에서 역기를 거꾸로 든 채 마구 휘둘러댔다. 기술이 아닌 힘의 승리였다. 그러나 같은 무제한급에는 장미란이 있었다. 보영은 장미란이라는 거대한 산맥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졌다.

한때 팀의 에이스였던 영자(조안)에게는 인내심과 정신력이 있었다. 바벨을 잡으면 놓지 않았다. 그러나 중앙여고 때 코치를 잘못 만나 허리를 다친 뒤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는 영자의 허리가 온전했다면 같은 체급인 그가 올림픽에 나가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호흡을 고르고, 바벨을 잡았다. 그리고 날쌔게 끌어올렸다. ‘끄으응.’ 잇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바벨이 짓누르는 중량감이 장딴지를 지나 허벅지 근육으로 전해져왔다. 근육은 팽팽하게 긴장돼 터질 듯했다. 갑자기 정신이 맑아오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역시 그가 사랑했던 것은 역도가 아닌 역도복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를 ‘4차원’이라 놀려댔지만, 그런 것은 어찌됐든 좋았다. 역도복을 입을 때 드러나는 아름다운 허리 곡선과 그곳을 힐끔거리는 남자들의 시선만 있으면 좋았다. 그는 역도라는 힘든 운동을 하며, S라인을 유지하는 삶의 고달픔을 사람들은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마지막 ‘저크’. 손을 번쩍 치켜드는 순간 그는 말 못할 해방감을 느꼈다. 그의 눈앞에서 잇따라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송민희(이미소)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아깝게 금메달을 놓치고도 웃음을 잃지 않네요. 그런데 아까 실패했는데 왜 계속 손을 번쩍 들고 계셨나요?”

“호호호. 머 그런 걸 물어보세요. 제 허리나 잘 나오게 잘 찍어주세요. 어머머, 여기도, 여기도요. 근데 저한테는 왜 ‘어떤 연예인 제일 좋아하냐’ 그런 거 안 물어보세요? 저 동방신기 왕 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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