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지리산 어귀의 마을 삼매리에서 참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삼매리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전문 사냥꾼 천일만(장항선)은 손녀가 머리만 남은 변사체로 발견되자 이것이 거대한 식인 멧돼지의 짓임을 짐작한다. 이장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을 위한 주말농장 사업에 방해가 될까봐 식인 멧돼지의 존재를 은폐하려 하지만, 결국 멧돼지는 무참하게 마을회관의 사람들을 덮치고 만다. 천일만, 서울에서 교통경찰을 하다 삼매리로 부임한 김 순경(엄태웅), 살인사건 담당인 신 형사(박혁권), 서울에서 온 유명 사냥꾼 백 포수(윤제문), 동물 생태연구가 변수련(정유미)은 우여곡절 끝에 한팀을 이뤄 깊은 산속으로 들어선다.
<차우>는 괴물영화다. 수많은 할리우드 괴물영화 선배들의 유산을 끌어모은 장르영화다. 이 장르의 팬이라면 <조스> <엘리게이터> <쥬라기 공원>(특히 2편!) 같은 영화들의 간접적인 인용을 끝없이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그래도 멧돼지가 괴물인 영화는 처음 아니냐고? ‘식인 멧돼지 영화’라는 장르가 공식적으로 영화 역사에 기록되는 날이 온다면 선구자는 <차우>가 아니라 러셀 멀케이(<하이랜더>)의 출세작 <레이저백>(1984)이다. 상관없다. 괴물영화에서 오리지널리티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괴물만 효과적으로 잘 보여주면 절반의 성공은 이미 성취한 거나 다름없다.
불행하게도 <차우>에서 가장 나쁜 건 멧돼지다. 기본적인 CG의 완성도가 함량 미달이다. 그간 <차우>의 홍보팀이 가장 크게 내세웠던 건 ILM 출신 한스 울리히 등 진보한 할리우드 스탭들의 솜씨였다. 오래전 한스 울리히와 <씨네21>의 인터뷰를 인용해보자. “살아 있는 생물을 CG로 온전히 창조하는 건 언제나 도전적인 작업이다. 굉장히 많은 기술이 요구된다.” 영화를 보고나면 분명해지는 건 도전이고 자시고 간에 할리우드 스탭이라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많은 기술”은 애초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진짜 문제는 허술한 CG가 아닐 수도 있다. 숲이나 탄광처럼 장르적인 공간을 활용했음에도 추격장면의 속도감과 리듬이 영 별로다. 액션 설계에 문제가 좀 많다.
웃기는 건 끔찍한 CG에도 <차우>가 아주 웃기는 영화라는 거다. <차우>는 괴물영화라기보다는 감독의 전작인 <시실리 2km>의 속편에 가깝다. 신정원 감독은 하나의 시퀀스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상황과 감정들을 관객에게 툭 던져놓고 낄낄거리게 하는 재능이 있는데, <차우>에서는 그 정도가 더하다. 괴물영화와 코미디의 혼성이 <플래시드>나 <괴물> 정도에 머무른다는 소리가 아니다(힌트를 흘리자면 <차우>는 포수와 사냥개가 핀란드어로 대화를 하는 영화다). 엄태웅, 정유미, 윤제문 등 메인 캐릭터들은 물론이거니와 반쯤 미친 여자나 순경 등 소소한 배경인물들 역시 기념할 만한 코미디 장면을 하나씩 부여받는다. <차우>는 괴물영화는 아니다. 혹은, 코미디가 많은 괴물영화거나 괴물이 나오는 코미디영화다. 정신나간 불균질함을 낄낄거리며 즐길 준비가 된 관객에게 이 값비싼 멧돼지 영화는 제값을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