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나는 며칠씩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에서 보내곤 했다. 영화제 안의 작은 영화제라 명명된 ‘버라이어티 비평가들의 선택’이라는 섹션을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는 공산체제아래서 시작해 소비에트 연방의 주된 행사로 모스크바영화제와 번갈아가며 열렸던 역사를 지닌 체코의 영화제다. 요즘 카를로비 바리는 프라하 북서쪽에서 90분가량 떨어진 작은 온천 도시에서 열리는 젊고 신나는 행사로 변신해 해마다 휴가철 관광객과 젊은이들 그리고 광천수로 건강을 회복하려는 나이 든 사람들로 북적댄다.
해마다 나는 <버라이어티> 평론가들이 선정한 10편의 유럽영화들-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거나 다른 영화제에서 말도 안되게 거부된 영화들- 을 조율해왔다. 대개 감독의 첫 번째나 두 번째 영화를 선호하지만 좋은 영화거나 관객이 지겨워 눈물을 흘릴 정도의 영화가 아니라면 상업영화든 아트영화든 차별하지 않는다. 올해 우리 행사의 폐막작은 헝가리의 복고 뮤지컬 <메이드 인 헝가리>였다. 이 영화는 게르주리 포뇨의 네 번째 장편영화로, 헝가리의 록 뮤지션 미클로스 페뇨의 실화를 바탕으로 7년 전에 만들어진 뮤지컬이 원작이다. <그리스>와 비슷한 이 영화는 헝가리에서 지난 2월 개봉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를 선정할 때 1960년대 복고풍과 동유럽적인 상황의 가벼운 코미디(젊은 록뮤지션이 음악을 통해 꽉 막힌 공산주의 위계질서에 도전한다는 내용이다)가 카를로비 바리의 젊은 관객에게 인기가 있으리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러나 지난 12년간 ‘버라이어티 비평가의 선택’ 섹션의 그 어떤 영화보다 더 뜨겁고 열광적인 반응을 받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영화 상영 뒤 헝가리 영화산업 관계자들은 이런 유의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이 있음에도 이런 영화가 헝가리에서 많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탄했다. 한 여성 관계자는 국가기금을 받기 위해 제출된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보면 “참담한 풍경, 겨울, 외로움, 우울증, 자살”로 시작한다며 이런 시나리오들을 보는 데 지쳤다고 토로했다. 요즘 헝가리영화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관객이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안돼 스스로 머리를 권총으로 날려버리고 싶게 만들 만큼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만든다고 정평이 나 있다.
이런 지경이 된 데에는 영화제도 책임이 있다. 영화제는 영화를 선정하는데 헝가리영화뿐 아니라 특정 나라의 영화적 성향에 영향을 미쳐왔다. 대부분의 영화제는 잘 짜여진 이야기보다는 감정적 소외, 소통의 부재, 단절된 느낌 등을 다루는 유사-아트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관객이 정말 보고 싶어 하는 영화가 그런 영화들인가? 아니면 자아도취에 빠진 평론가와 영화제 프로그래머 집단이 관객이 이런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런 경향은 “독립영화를 지지한다”는 취지 아래 지지되어 왔지만, 한편으로 국제 무대에서는 잘 만들어진 주류영화- 할리우드와 프랑스영화를 넘어서는 주류영화들 말이다- 역시 지원될 필요가 있다.
몇해 동안 나는 카를로비 바리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배워왔다. 프로그래머와 관객 사이에 싹튼 일종의 신뢰감을 바탕으로 ‘버라이어티 비평가들의 선택’이라는 작은 섹션은 지난 10여년간 특정한 관객층을 형성해왔다. ‘축제’는 무엇인가를 즐겁게 ‘기념’한다는 뜻이고 ‘영화제’는 모든 의미에서 ‘영화를 기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적, 정치적 개혁운동이나 반드시 비판적인 것을 선호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지금은 영화제들이 각성하고 그 기본 정신으로 돌아갈 때다. 관객은 그런 노력을 높이 살 것이며 세계 영화도 그로 인해 많은 혜택을 누릴 것이다. 번역 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