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오는 7월9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이번에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귀를 기울이면’이다. 10회 영화제의 슬로건이었던 ‘볼륨을 높여요’에서 더 나아가 성숙한 소통문화를 이루자는 뜻이다. 이번 영화제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총 56개국 914편이 출품되어 33개국 124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주최쪽은 출품작 수에서 지난해 대비 40%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했으며, 월드 프리미어부터 한국 프리미어까지 80편 이상의 프리미어 상영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열한 번째 청소년영화제의 프로그램은 확대되고, 강화됐다. 드라마부터 스릴러, 공포영화 등 초청작품의 장르가 확대됐다. 개막작인 <아이 노우 유 노우>는 가족을 지키려다 점점 미쳐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언뜻 보기에는 휴먼드라마지만, 스릴러적인 긴장으로 가득 차 있는 영화다. 컬트감독으로 추앙받는 일본의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 특별전을 마련한 것도 장르 확대의 연장선상에 있는 선택이다. 원한을 풀고자 젊은 여자들을 잡아먹는 이모에게 시달리는 아이의 이야기인 <하우스>, 선생님과 아이들의 사막탈출기인 <표류교실> 등이 상영된다. 예년에 비해 영화의 표현 수위가 확대된 것도 특징이다. 특히 성적 표현의 수위가 지난해보다 높아졌다. 단편의 경우, 성에 관련된 영화만 따로 묶어 상영하는 등 청소년의 성담론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시도가 눈에 띈다.
‘아름다운 청춘’ 섹션에서 상영되는 <가슴 배구단>은 선생님의 가슴을 보는 조건으로 배구시합에 뛰어든 중학생들의 소동극이다. 신앙생활에 전념하던 소녀가 도시를 찾아 성과 사랑에 눈을 뜨는 <금지된 젊음>이란 영화도 있다. 청소년의 성담론은 장편보다 단편에서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출산을 앞둔 17살 소녀의 이야기인 <아기 낳기>. 성관계에 관한 10대의 생각을 인터뷰한 <지수의 성에 관한 보고서>. 엄마의 남자친구를 남자로 느낀 딸의 심리를 다룬 <어른 되기>. 오르가슴을 궁금해하는 소녀들을 그린 <오 마이 갓> 등의 단편들이 마련됐다. 이번 영화제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청소년에 관한 영화들에서 벗어나 청소년을 위한 영화들이 대거 포진됐다는 점이다. 덕분에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도 즐길 만한 작품들이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문여송, 김응천, 석래명 등 1970년대 한국 하이틴 영화감독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한국 성장영화 회고전은 부모와 자녀의 흥미로운 소통이 될 만한 행사다.
제11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이 밖에도 다양한 시도들이 눈에 띈다. 청소년 영화인으로 제한됐던 경쟁부문을 일반에도 개방했다. 권칠인, 변영주, 김태용, 이해영, 윤성호 등 국내 감독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토론하는 자리도 있다. 가장 독특한 시도는 변사의 기용이다. 관객층을 어린이, 가족까지 확대하면서 어린이 관객의 편안한 영화관람을 위해 변사가 직접 대사를 들려주는 관람 환경을 마련한 것.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만의 프로그램인 서울국제청소년영화캠프도 10개국 80여명의 청소년이 참여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씨네21>이 강추하는 영화 4편
아이 노우 유 노우 I Know You Know 개막작 | 영국·독일 | 2008년 | 78분 | 감독 저스틴 케리건
아빠가 미쳤다. 제이미는 아빠와 단둘이 사는 11살 소년이다. 아빠의 일이 끝나면 큰돈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 생각에 부풀었던 제이미는 어느 날, 신경질적인 증세를 보이는 아빠의 모습에서 불안을 느낀다. 자신이 미행당한다는 생각에 총을 가지고 다니던 찰리는 심지어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돈을 내놓으라며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아이 노우 유 노우>는 이런 아빠를 둔 아들의 이야기다. 아빠는 왜 미쳤는가, 그에게는 어떤 일이 생겼는가. 눈물겨운 부자의 감동 스토리가 떠오르지만, 영화는 이중첩자의 삶에서 비롯된 스릴러적 긴장을 품는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생각이 성장과 함께 변해가는 과정을 오락적으로 그린 이야기일 수도. 제5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상영작이다.
홍당무 맥스 Max Embarrassing 천국의 아이들 | 덴마크 | 2008년 | 93분 | 감독 로테 스벤센
엄마는 짜증난다. 소년 맥스는 엄마가 자신의 천적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사랑은 왜 나를 부끄럽게 하는 걸까. 맥스는 엄마의 모든 행동이 싫고, 엄마의 모든 말들이 듣기 싫다. 어느 날, 맥스에게 미션이 떨어진다. 같은 반 친구 오필리아를 좋아하게 되면서 그녀에게 무엇이든 잘 보이고 싶어진 것. 역시나 걸림돌은 엄마다. 맥스는 매번 자신을 홍당무로 만드는 엄마의 개입을 막으려 애쓴다. 하지만 엄마는 우연히 만난 오필리아에게 온갖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덴마크에서 날아온 이 영화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공감할 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끝이 없는 부모의 사랑만큼이나 부모와 자식간의 애증도 끝이 없으니 말이다.
가슴 배구단 Oppai Volleyball 아름다운 청춘 | 일본 | 2009년 | 102분 | 감독 하스미 에이치로
소년들은 가슴이 만지고 싶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손을 들고 자전거를 타는 이들의 모습이다. 80Km 이상으로 달리면 손에 느껴지는 바람의 감촉이 가슴의 감촉과 같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들 앞에 임시교사로 부임한 선생님 미카코가 나타난다. 그녀의 임무는 배구를 하지 않는 배구부를 배구부답게 만드는 것. 미카코는 아이들에게 시합에서 우승한다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아이들은 그 말을 덥석 문다. <가슴 배구단>은 오로지 가슴을 보겠다고 배구에 매진하는 아이들과 마지못해 약속을 해버린 선생님의 이야기다. <워터보이즈>의 소년들이 <몽정기>를 겪는 소동극이라고 해도 어울린다. 자신의 가슴을 걸고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미카코의 내면적인 고민은 교육의 방식에 대한 과격한 고찰이기도 하다.
상속자 Inheritors, The 낯설지만 괜찮아 | 멕시코 | 2008년 | 90분 | 감독 유지니오 폴고브스키
다른 나라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속자>는 멕시코 시골 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가난을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일을 해야 하는 아이들은 양치기, 벽돌 만들기, 옥수수 재배, 조각 등 못하는 게 없다. 가난을 상속받았지만, 노동의 방법과 기술도 상속받은 것이다. <상속자>는 화장터와 쓰레기 매립지에 사는 제3세계 아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감독은 고발하려 들지 않고, 아이들의 풍경을 그린다. 자연과 동물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그들 나름의 건강한 웃음을 드러내 보인다. 노동에 숙달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선한 다큐멘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