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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는 시나리오]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존이 운명을 깨닫던 순간

“생각해보면, 참으로 지겨운 인연이 아닌가.”

기계 군단과의 기약없는 싸움에 지쳐가던 인류의 지도자 존 코너(크리스천 베일)는 수십년 만에 다시 마주하게 된 ‘그 남자’를 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아버지이자, 결국 그가 사지로 내몰게 되는 부하 카일 리스(안톤 옐친)를 구하기 위해 스카이넷의 심장부로 잠입할 때까지만 해도 존은 ‘그 남자’와의 조우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기계인간’ 샘(마커스 라이트)의 도움으로 카일을 구한 뒤 스카이넷의 심장부를 벗어나려는 존을 가로막은 것은 강렬한 턱선과 근육질의 얼굴을 가진 ‘그 남자’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이었던 것이다.

“이봐, 기억이 안 나? 나야 나, 존이라고!”

입을 앙다문 T-800의 무심한 얼굴을 바라보며, 존은 안타깝게 외쳤다. T-800은 별다른 동요없이 존과 카일에게 무차별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T-800은 존의 몸을 번쩍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카일을 향해 뒤돌려차기를 날렸다. 복부를 맞아 내장이 파열된 카일은 쓰러지며 각혈을 했다. 존은 수십년 전 T-1000(로버트 패트릭)의 손아귀에서 그의 목숨을 구해냈던 충직했던 그 T-800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T-800은 존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수십년 전 그를 죽음의 수렁에서 구한 T-800은 2029년식 개량형이었다. 이제 막 개발이 끝난 2018년식의 T-800에게는 아직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읽어낼 만한 인공지능이 탑재되지 않았다. 존은 옆에 있던 라이플을 들어 방아쇠를 당겨대기 시작했다. 기계는 태연히 총알을 받아내며 존의 목덜미를 낚아채 다시 한번 바닥을 향해 내리꽂았다.

존은 기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등 뒤에서 그를 쫓는 T-800의 기계음이 들려왔다. 코너를 돌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에서 존의 기억 속의 그 남자와 똑같은 억센 턱선과 근육질의 얼굴, 우수 어린 눈빛을 가진 T-800들이 조립되고 있었다. 결국, T-800이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대량생산 제품이었던 것이다.

존을 따라 잡은 T-800은 존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고 했잖아.” 존이 울먹이며 외쳤다. 기계는 혼란스러운 듯 잠시 행동을 멈췄다.

“존, 내가 왔어요.” 무사히 임무를 마친 샘이 T-800에게 달려들어 이단옆차기를 날렸다. 비틀거리던 T-800은 이어진 샘의 ‘당수치기’ 공격에 목이 꺾였다. “아일 비 백.”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던 T-800은 존을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그때, 존은, 깨달았다. 그는 자신을 구해내고 용광로 속으로 뛰어들었던 그 차분하고 위엄있는 기계들과 생사를 건 치열한 전쟁을 수행하는 운명에 몰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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