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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 떠나긴, 내가 배우 안 하면 뭐 먹고살려고

4년 만에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온 최민식

“이제 세상으로 나가는 건가?” 인터뷰가 끝난 뒤 냉면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켜던 최민식이 매니저에게 말했다. “출산(出山)하시는 거죠.” 매니저의 말에 최민식은 “야, 남자가 무슨 출산(出産)이야?”라며 농담으로 답했다. 그렇게 눈에서 핏발보다는 웃음기가 더 많이 보이고 입에서 독설보다는 농담이 더 흘러나왔던 것으로 미뤄볼 때, 은둔의 산에서 나와 영화 세상으로 돌아오는 최민식의 기분은 유쾌한 듯 보였다.

6월11일 개봉하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이하 <히말라야>)은 최민식이 2005년 <친절한 금자씨>에서 백 선생 역할을 맡은 이후 처음 출연한 영화다. 그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아주 조금씩만 우리에게 얼굴과 이름을 내비쳤다. 2006년 그는 한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했고,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2007년에는 연극 <필로우맨>에 등장했으며, 2008년 초에는 <히말라야>에 출연했고 10월에는 이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그리고 이 영화가 1년 만에 개봉하면서 그는 마침내 명백한 ‘복귀’를 선언하게 된 셈이다.

전수일 감독이 연출한 <히말라야>는 한 남자가 네팔에서 잠깐 동안 지내면서 겪는 일을 그리는 영화다. 여기서 최민식은 동생 소유 공장에 다니던 네팔 노동자의 유해를 가족에게 전하기 위해 무작정 네팔로 향하는 남자 최 역할을 맡았다. 최는 어떤 대단한 목적을 갖고 네팔로 향한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의 텅 빈 내면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던 중이었고, 때마침 네팔로 갈 기회가 생긴 것뿐이다. 영화는 히말라야 산맥 아랫자락의 마을 풍경과 자연, 바람, 소리,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 그리고 최의 쓸쓸한 모습을 비춘다. 네팔의 산악마을에서 자신의 황폐한 내면을 달래는 최의 모습을 보다보면 자연인 최민식이 그 위에 겹친다. 그는 거기서 울부짖거나 표효하는 대신 묵묵히 어슬렁거리기만 하는 탓에 연기를 하지 않는 듯 보이며, 그냥 자신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선 듯한 착각을 만들어낸다. 혹시 그는 <히말라야>를 빌려 스스로의 헛헛한 내면을 달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히말라야>는 <친절한 금자씨> 이후 처음 출연한 영화다. 3년이라는 꽤 긴 시간 만에 출연을 결정한 영화로는 의외라는 생각도 든다(<히말라야>는 2008년 초 촬영했다). = 애초에 A4용지 3장 정도의 트리트먼트를 받았는데 좋았다. 또 거긴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혼자 가는 것보다는 떼로 가서 영화도 찍고 하면 좋잖나. 이번에 안 가면 다시는 못 가겠다는 이런 생각이 딱 들었다. 내용도 마음에 들었고. 그때까지 왜 영화를 하고 싶지 않았겠냐.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꽤 있었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없었을 뿐이다.

- 전수일 감독과는 원래 친분이 있었나. = 몰랐다. 그저 <검은땅의 소녀와>를 본 정도? 그걸 보면서 이 양반도 답답하게 사시는 분이구나, 생각했다. (웃음) 나쁜 표현이 아니라, 오직 한길만 참 진지하게 가시는 분이구나, 했던 거다. 만나니까 의외로 재밌으시더라. 그래서 순식간에 여기까지 흘러왔다. 애초 이 역할은 가수 김C가 하려던 것이었단다. 전수일 감독님이 네팔 가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김C를 만났고, 바로 출연 제안을 했다더라. 그걸 알고나니 괜히 남의 밥상에 숟가락 올려놓는 것 같아서 ‘내가 출연하는 것에 김C가 동의하면 하겠다’고 했고, 제작사에서 얘기를 잘했다고 했다.

- 전수일 감독은 고집이 셀 것 같은 인상의 소유자다. 대립 같은 것은 없었나. = 오히려 내가 제안하는 것을 잘 받아주시더라. 애초 감독님은 현지인 역할에 티베트 출신 배우들을 기용하려고 했다. 그곳에 한달 전에 미리 들어가 준비를 하겠다면서 출연에 의욕을 보인 한국 여자배우도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게 그래서 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화려한, 테크니컬한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움을 보여주는 영화잖나. 네팔의 바람, 산, 흙먼지, 그런 것들이 그대로 전달돼야 하는데. 그래서 그냥 현지인들을 기용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영화를 보면 이분들은 딱히 분장을 안 해도 옷이나 가구나 환경에 촥 밀착돼 있잖나. 하여간 감독님이 그 말을 받아주셔서 현지인을 출연시켰다.

- 워낙 다른 환경인데 헌팅을 따라가서 준비도 하고 했나. = 헌팅은 일부러 함께 가지 않았다. 어떨 때는 스탭들과 친해지고 밤에 술도 마시려고 헌팅을 함께 가곤 하는데 이 영화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배우가 이 낯선 곳에 처음으로 딱 가서 접해야 했다. 그곳에 가서 숨을 들이마셨을 때의 그 느낌이 중요한 거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느낌이 중요했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느낌이기 때문에 미리 가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 그동안 정교하게 계산하는 연기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즉각적인 느낌에 의존해 연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 그렇다. 일단 어떤 이야기인지 흐름은 다 알잖나. 동생 공장에서 죽은 네팔 노동자의 유골을 전달해준다. 그건 동생 일을 형으로서 마무리해준다는 차원도 아니고, 이 사람을 측은히 여겨서 책임지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 사람은 직장에서 해고도 당했고, 가족과도 소원하고. 그러니까 어디든 간에 그냥 떠나고 싶었던 거다. 거기에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또 다른 느낌을 받은 뒤 또 어디론가 가는 거다. 그런 이야기니까 나는 그냥 툭 가면 되는 거다. 그래서 내 오감을 열어 거기를 느끼고, 거기 있는 사람들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보통 영화의 경우 드라마의 맥락에 따라 배우의 육체가 힘들지 않은데도 힘들어 보이게 연기하거나, 실제로는 힘든데 안 힘든 듯 보여야 하잖나. 그런데 여기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진짜 고산증세가 오면 고산증세를 앓으면 됐다.

- 실제로 고산병에 걸렸나. = 한 일주일 가더라. 심각했던 것은 아니고, 거기 갔던 사람들도 다 걸렸다. 어떤 느낌이냐면, 술 왕창 먹고 그 다음날 안 깨서 아무 생각 없는 것 있잖나. 밥도 못 먹고, 머리도 아프고, 누가 말 시키면 대답하기도 귀찮고, 누우면 머리 빙빙 돌고, 딱 그거다. 그러다 좀 지나니까 주변이 슬슬 눈에 들어오더라. 사람들이 왜 그런 데를 가는지 알겠더라. 뭐 거기서 대단한 것을 얻어온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건 분명하다.

- 영화 초반에 멀리 앞서가는 셀퍼를 따라가다 헐떡거리는 장면도 실제 상황이었나. = 진짜로 힘들었다. 특히 내가 기관지가 약하다. 기침이 그렇게 많이 나더라. 사실 평소에도 기침을 많이 하는데, 남들은 윗몸일으키기로 복근을 단련하지만 나는 기침으로 복근을 단련한다. (웃음) 기침하면 배에 힘이 들어가잖나. 나뿐 아니라 스탭들도 모두 감기에 걸렸다. 고산지대다 보니 일교차가 장난이 아니다. 낮에는 엄청난 뙤약볕이지만 해가 지면 영하권으로 곤두박질치니까. 게다가 건조하기까지 했으니 오죽했겠나.

- 실제로 많이 지친 것 같아 보였다. = 정말로 후회 많이 했다. (웃음) 야 내가 여기 왜 왔지, 뭐 빨아먹을 게 있다고 여기 온 거야. 한 일주일 동안 그랬다. 죽을 것같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척박했다. 셀퍼를 따라가다 내가 푹 쓰러지는 장면 있잖나. 그건 물론 연기지만, 나도 모르게 선인장 덤불에 푹 쓰러진 거다.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는데 나는 속으로 으악 하고 있었다. (웃음)

- 그렇게 실제 느끼는 대로 연기한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 예전에 연극할 때 그런 느낌의 연기를 한 적 있다. 소리를 듣고 그것에 따라 내가 반응하는 식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좀처럼 시도되기 힘든 연기인 것은 틀림없다. 하여간 굳이 연기를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 그래서인지 영화 속 최와 자연인 최민식이 겹쳐 보이더라. = 그렇게 보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나는 그 영화를 통해서 지금의 내 심사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굳이 히말라야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냥 작업을 하는 것 자체를 즐기려고 했고, 이런 연기도 굉장히 신선한 기분이었다.

-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 중에는 ‘<히말라야>는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 무슨 전환점이냐. (웃음) 그런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고마운데 나는 진짜 편하게 작업한 거다. 공백기간이 있어서 무슨 오작지게 마음먹고 나온 것도 아니고. 심심하기도 하고, 먹고살기도 해야 해서. 와이프 눈치 보여서 집에 못 있는다. (웃음)

4년의 공백기 동안 그는 꽤 많은 시나리오를 받았다. 그건 그의 말이 아니라 충무로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다. 그는 대다수의 영화 출연 제의를 거절했다. 그중에는 그와 인간적으로 매우 가까운 감독의 작품도 있었고, 적지 않은 예산의 영화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 시나리오는 단호하게 잘라냈다. “특별히 까다로워진 게 아니다. 예전에도 그렇게 선택했다”고 그는 말하지만, 어쩌면 짧지 않은 공백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높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그 사이에 2편의 영화에 출연할 뻔했다. 그중 하나에서는 제작사와 감독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면서 스스로 빠져나갔고, 다른 하나는 감독과 소통이 잘되지 않아 포기했다. 다행스런 일은 그가 지금 2권의 시나리오를 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 그동안 어떤 시나리오들이 들어왔기에 선택할 영화가 없었다는 건가. = 종류별로 많이 들어왔다. 내가 감독을 따진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없더라. 잘되려다가 이상하게 잘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뭐 그것을 안타까워하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내가 맞추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맞춰서 될 일이 있고 아닌 게 있잖나. 시나리오부터 안 와닿는데 어렵지 않겠나.

- 거절한 영화 중 만들어진 영화도 있나. = 만들어진 것도 있고 만들고 있는 것도 있고. 그런데 안 만들어진 게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런 부담이 생기더라. 내가 쉬기 전에는 그런 게 없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내가 거절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놀게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 그런 데 따른 부담도 생기고. 물론 내가 한다고 한들 착착 잘 만들어지는 거야 아니겠지만, 내가 안 한다고 하니까 아예 와해되는 경우를 보면서 미안하더라. 그렇다고 마음에 안 와닿는 것을 억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 그러다보니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영화에서 마음이 떠난 게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 떠나긴. 내가 이거 안 하면 뭐 먹고살려고 떠나겠나. (웃음)

- 쉬는 동안 영화 제작 환경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실감하고 있나. = 예상은 했지만… 뭐 예전에도 비슷하긴 했다. 사실 지난해 어떤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투자사에서 이 영화를 할지 안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라. 그 투자사 고위 간부가 그러면서 다른 작품을 골라도 무방하다는 거다. 나는 ‘아, 내가 까였나’ 하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게 구설이 많으니까. 이 영화가 안 돌아가는 게 나 때문인 것 같아서 그만뒀다. 부담주고 싶지 않더라. 나중에 가서 그런 게 아니라는 오해가 풀렸지만, 내가 실제로 까였더라도 기분 나빠할 일은 아니다. 각자의 입장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대본이 많이 고쳐져 있더라. 비단 그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투자하는 곳에서 신인급 감독이나 시나리오작가를 너무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있다. 한동안 혼자 있다가 최근 들어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좀 답답하다.

- 여전히 술을 많이 마시나보다. = 당분간 금주령이 떨어졌다. (웃음) 금주령은 의사가 내린 게 아니라 내가 내렸다. 난 자가진단한다. 좀 심하게 달렸다 싶으면 한동안 자제하고 그런다. 이젠 나이도 있고 군대 가는 것도 아닌데(웃음), 아직도 기절할 때까지 먹으니까. 나 스스로가 추접스러운 것 같아 안되겠더라. 무엇보다 몸이 죽겠다. 여명808을 3개씩 먹어도 안되는 거다. (웃음) 이건 간이 ‘나 힘드니까 그만 먹어라’, 이 신호거든. 아, 말 나온 김에 끝나고 한잔…?

- 신작 계획은 있나. = 아주 재미있는 무언가가 하나 있다. A 감독의 영화다. 배우도 결정됐다. B다. (일동 ‘와아!’) 그 친구와 아주 오랜만에 의기투합했다. 아주 골때리는 작품인데 올여름쯤 들어가는 게 목표다. 그런데 투자가 돼야 할 것 아닌가. 요즘은 투자가 오래 걸리고 실패하는 경우도 많아서 딱 이거다 하고 밝히기가 너무 조심스럽다.

- C 감독과도 영화를 준비 중이라던데. = 그렇다. 실화에 기반한 영화인데, 곧 C 감독이 초고를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일종의 다윗과 골리앗 싸움을 벌이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인데, C 감독과 의논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논픽션에 기반한 드라마지만 그 인물을 미화하거나 영웅화는 경계하자는 점이다. 본인의 동의를 구해야겠지만 그 인물을 진실하게 표현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잘되면 올해 하반기쯤 촬영에 들어갈 것이다.

최민식은 대부업체 광고를 한 뒤 ‘서민 등쳐먹는 기업 광고를 하면 되냐’는 비판을 받았고, 스크린쿼터 투쟁 때는 2005년 강우석 감독의 ‘스타 개런티 때문에 한국영화 망한다’는 발언과 맞물리면서 ‘돈 많은 배우들이 자기 밥그릇 싸움에는 앞장선다’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대부업체 광고는 그에게 멍에가 됐고 스크린쿼터 투쟁은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스크린쿼터 투쟁이 그의 진심에서 비롯됐음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이라크 파병 반대 등 사회적 사안에서 물러서지 않았던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스크린쿼터 제도의 당위성과 이를 축소하려는 정부 방침의 부당함을 알렸다. 심지어 칸영화제에서도 1인 시위를 벌이다 프랑스 경찰에게 봉변을 당할 뻔도 했다. 그런데 2006년 당시 한-미 FTA 협상을 위해 스크린쿼터를 축소한다고 했던 바로 그 정부의 수장이 갑작스레 사망했다. 한때 최민식이 “맞장을 뜨겠다”고 공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 지난 3년 동안 개인적으로 가장 고통을 받았던 계기는 대부업체 광고 출연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 =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건 내가 잘못한 거다. 이제는 광고나 뭐나 들어오지도 않겠지만, 광고의 공익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계기가 됐다. 내가 아무리 모르고 했다 해도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다. 굳이 변명하자면, 집에도 돈을 가져다줘야 하고 사무실에도 입금을 해야 하니까, 이자율이 몇 퍼센트이고 이런 것을 미처 따지지도 못했다. 하고 나니까 아차 싶더라. 예전에 <넘버.3> 찍을 때 얘기인데, 내가 ‘광고는 가려서 출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까 송능한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야 최민식, 고상 떨지마, 새끼야. 농약 광고면 어떻고 무좀약 광고면 어떠냐. 네가 삼지창 들고 발가락 사이에서 무좀균 역할을 하면 어떠냐. (일동 폭소) 광고해서 좋은 작품 하면 되지.” 일리가 있더라. 그 이후 그런 생각으로 해왔던 거다. 내가 앞으로 살면서 정치적 사안이나 영화계 권익을 위해서 다시 목소리를 낼지 모르겠지만, 그런저런 것을 다 떠나서 배우가 광고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 계기였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스크린쿼터 투쟁 당시 대립각을 세웠던 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이 인터뷰는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기 전날인 5월28일 이뤄졌다) = 참 쓸쓸하더라. 우울하더라. 내가 한때 그분의 정책에 대립각을 세웠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노무현이라는 인간 전체를 통틀어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그의 정치철학이나 살아온 과정 같은 것들 말이다. 오히려 그를 사랑했던 게 사실이고. 사랑했다는 말이 좀 낯뜨겁게 느껴진다면 그분을 열렬히 지지했던 것은 확실하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반발심이 컸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정책에 반대하고 대립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 전체를 통으로 부정했던 건 아니다. 참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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