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기온이 40도를 훨씬 웃도는 코너트 플레이스의 주말 오후. 무더운 날씨 탓인지 플라자시네마 티켓박스 앞은 여느 주말보다 한산한 모습이었다. 자동차 도난과 질주를 소재로 한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과 역시 자동차 도난과 도박을 소재로 한 <99>가 나란히 걸린 간판은 여러 사람을 고민에 빠지게 하게 충분했다. 스펙터클을 택할 것이냐, 마살라향이 물씬 풍기는 발리우드의 소박함을 택할 것이냐라는 고민. 극장 앞 작은 광장에서 만난 오늘의 인터뷰이는 소박함을 택했노라고 주저없이 대답했다.
- 소개를 부탁한다. = 이름은 라만 그로버이고 29살이다. 집은 델리에 있는데 델리의 위성도시라고 할 구르가온의 통신회사에 다닌다. 음… 그리고 인도 사람이다. (웃음)
- 날씨도 덥고 주말 저녁이라 무척이나 혼잡한 것 같은데, 영화를 보러 왔다. = 영화를 좋아하는데 요즘은 한달에 한편이나 볼까…. 회사 일로 시간도 빠듯하고 누군가와 같이 갈까 싶으면 또 그 사람이 시간을 낼 수 없고 하니까… 그런데 오늘은 모든 조건이 맞았다. (웃음)
-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과 <99>가 상영 중인데 어떤 영화를 봤나. = <99>를 봤다. 사실 인도 총선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볼 만한 발리우드영화가 없었다. 현재까지도 톱스타가 주연한 영화는 없고. 지난주에 선거가 완전히 끝났으니 이제 슬슬 나오려나. (웃음) 개인적으로 코미디나 로맨스영화를 좋아한다. 둘이 섞이면 더욱 좋고. 또 논픽션영화도 좋아하는데 <99>가 그런 요소들을 모두 담은 것 같아 보였다. 주인공들이 자동차를 훔쳐 도망가다가 사고를 내고 하필이면 암흑가 보스의 차를 망가뜨려놓으면서 전개되는 영화인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코미디였다. (웃음)
- 사실 <99> 같은 영화는 케이블TV에서 쉴새없이 나오는 영화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티켓박스에 줄을 선 상당수의 사람들이 <99> 티켓을 사는 걸 보고 조금 의아했다. = 케이블TV의 영화들과 별반 다를 게 없긴 하다. 차이가 있다면 좀더 신상품 영화라고 할까. (웃음) 스케일도 좀더 큰 것 같고. 나도 인도에 하루 종일 영화를 방영해주는 케이블 채널이 들어오고 나서는 한동안 극장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극장에서 영화보는 즐거움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아마 극장 안에 있던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이 아닐까 싶은데…. 왜 극장에서 코미디영화 보면서 평소보다 더 크게 웃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그리울 때 있잖나. (웃음) 사람들이 극장을 다시금 찾게 되면서 상당수의 극장들이 산뜻한 멀티플렉스로 변해가고 더불어 주변 식당도 늘어나고 DVD나 음반 전문점도 들어서고…. 이런 것들까지 어우러져 영화관을 찾는 즐거움이 더하는 것 같다.
- 한국에서 인도영화는 여전히 소수가 즐기는 정도다. 한국의 관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 한국 사람들도 아이쉬와라 라이는 알 것 같고. (웃음) 기회가 되면 아미르 칸 같은 배우들이 주연한 영화를 통해서 인도영화를 접해봤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배역도 다 소화해내는 최고의 인도 배우라고 생각한다. 음… 나는 영화 관람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극장에 오곤 한다. 모든 나라의 영화에는 장르를 불문하고 그 나라의 문화가 일정 부분 반드시 담긴다고 생각한다. 역사물의 경우는 문화를 담아내는 농도가 훨씬 더 짙을 것이고. 한국에서 접하기는 힘들겠지만 인도영화를 보는 건 인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솔직히 직접 여행 오는 것보다 훨씬 쉽지 않겠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