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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마더> 탐험기

“스토리와 벌거벗고 정면대결한 느낌”

봉준호 감독과 그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건 모험심 가득한 탐험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과 비슷하다. 이미 그 영화의 여정 속을 수십, 수백번쯤 다녀갔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여정이 시작되면 그는 다시금 진지한 자세가 돼 그곳을 탐험하며 생생한 설명을 덧붙여준다. 그는 의례상 던진 질문에도 진지한 고민을 거듭하며, 답변을 하는 중에도 자신의 영화가 가진 함의를 새롭게 분석한다.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가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자신의 영화를 객관화하고 그 안을 끊임없이 후벼파는 그의 본성 때문이다. <마더>에 관한 대화 또한 비슷했다. <마더>에 관한 그의 생각 혹은 그와 함께한 <마더> 탐험 기록을 소개한다.

-칸영화제는 잘 다녀왔나. =5월15일 떠났다가 어제(19일) 오후에 돌아왔다. 16일 저녁에 영화 상영을 한 뒤 17일 내내, 그리고 18일 칸을 떠날 때까지 계속 인터뷰만 했다. 물론 배우들에게는 흔치 않은 기회였을 것이다.

-내심 경쟁부문 진출을 바랐을 것 같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진출해 섭섭하지는 않았나. =음…. 이창동, 홍상수, 박찬욱, 김지운 감독님은 다들 50대 아니면 40대 후반 아닌가. 나는 그쪽 나이로 39살이고. 그분들에 비해 나는 너무 젊은 거다. (웃음) 제발 나를 류승완, 김태용, 장준환 이런 감독들과 묶어달라. (웃음) 물론 칸 경쟁 진출을 목표로 영화를 찍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기회가 많다는 얘기다.

-촬영을 할 때 이런저런 일로 연락을 했는데, 엄청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다. 몸도 아팠다고 들었고. =아무래도 쉽지 않은 영화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괴물> 때는 CG 핑계라도 댈 수 있었는데, 이건 정말 나와 주제, 나와 스토리가 완전 벌거벗고 정면대결하는 느낌이라 더욱 어려웠다. 촬영 때는 육체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후반작업 때도 굉장히 예민한 상태라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아무래도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만들어가는 게 가장 힘들었던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연기에 가장 중점을 뒀다. 혜자 선생님을 중심으로 계속 인물들이 등장하고 퇴장하기 때문에 어디 하나만 삐긋해도 굉장히 치명적일 수 있다고 봤다.

-당신이 여러 차례 말했듯이 <마더>는 김혜자라는 배우에서 출발한 영화다. 당신은 김혜자의 ‘국민엄마’ 이미지가 아니라 오히려 이상야릇한 측면에서 이 모성과 광기의 이중주라 할 수 있는 영화를 떠올렸다고 말해왔다.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의 생각이나 내적 동기가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인물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음으로써 캐릭터나 인간들을 더 확연하게 표출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괴물>에서 가족은 괴물에 잡혀간 현서를 구해야 하고, <살인의 추억>의 형사들은 벼랑 끝에 내몰린 채 수사를 해야 한다. <마더>에서는 혜자 선생님의 어두운 면이나 광기어린 면을 밀어붙이려는 의도가 있었는데 그것이 ‘엄마와 살인사건’이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과 맞아떨어지면서 이런 이야기가 된 것 같다. ‘평온한 한강과 괴물’이나 ‘시골(형사)과 살인사건’처럼 도무지 조화될 것 같지 않은 두 요소를 충돌시키는 것이 내 적성인 것 같다.

김혜자는 신인보다 더 악착같은 배우

-김혜자는 오랜 경험을 통해 공력을 쌓아온 배우다. 감독은 그 배우를 컨트롤하려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충돌 같은 것은 없었나. =없었다. 어떤 장면을 놓고 해석이 다르거나 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설사 그런 게 있어도 테이크를 거듭하면서 합일점을 찾았다. 예를 들면 혜자가 공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는 장면 있잖나. 거기서 혜자는 사무장의 말을 듣다가 “네, 그런데요…” 하면서 마구 쏟아붓듯 이야기를 한다. 그 장면에 관해서는 나와 혜자 선생님의 해석이 달랐는데, 혜자 선생님의 버전이 더 좋았다. 영화에 들어간 버전이 그것이다. 또 혜자가 미선에게 농약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잖나. 그 장면을 보면서 많이들 웃던데, 혜자 선생님은 좀 스탠더드하게 슬픈 느낌으로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나는 좀 재미있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나중에는 혜자 선생님도 “아, 이런 느낌으로 하니까 재밌네”라고 얘기했다. 그 정도의 공력을 가진 배우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신 적은 한번도 없다. 사람들은 쉽게 상상 못하겠지만, 혜자 선생님은 자기 연기에 대해 항상 불안해한다. “내가 잘한 거야? 나 텔레비전처럼 했지? 나 이상하지?”라면서 한번 더 찍자고 말하기도 한다. 신인배우들보다 더 악착같다. 나는 그런 면에서 행복했다.

-김혜자의 장면을 30테이크 넘게 찍은 적도 있다던데, 체력적으로 힘들어하지 않았나. =혜자 선생님의 첫 촬영날 18테이크를 찍었는데, 그건 복잡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움직임에서 실수가 있거나 단역 연기자의 동선이 잘못 됐거나 해서였지 혜자 선생님이 잘못해서는 아니다. 그런데 10테이크 넘어가니까 선생님은 본인 탓이라면서 걱정하셨다. 어떤 스탭들은 내가 어쭙잖게 선생님과 기싸움을 벌인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웃음) 30테이크 이상 찍은 날에는 내가 “오케이”라고 말하자 선생님이 “힘들까봐 억지로 오케이낸 것 아니에요?”라고 물으시더라. “이건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니까 더 찍어도 된다”면서. 그 정도로 열정과 프로정신이 충만한 분이다, 선생님은.

영화의 주제를 암시하는 오프닝 시퀀스

-혜자가 갈대밭을 배경으로 등장해 춤을 추는 첫 시퀀스는 굉장히 강렬하다. =이 영화는 <마더>잖나. 아주 거칠게 말한다면 혜자 선생님을 찍는 영화다. 첫 장면부터 혜자 샘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 여자는 미친 여자일 수도 있고 미쳐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준 거다. 혜자는 넓게 펼쳐진 서정적인 공간에서 춤을 추는데, 더 중요한 건 춤을 출 때의 표정이다. 이상한 고통이 느껴지기도 하고 유체이탈된 사람 같기도 하고. 어쩌면 그것 자체가 광기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혜자를 비추면서 제목이 뜨는데, 그때 혜자는 왼손을 옷 속으로 감춘다. 그야말로 뭔가를 감추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장면을 거기에 붙였다. 이 영화에서 손은 죄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것을 암시하는 장면도 여럿 넣었는데, 오프닝의 두 장면에서 이 영화에 관해 어느 정도 알려주는 것 같다.

-첫 장면의 춤은 인상적이었다. 어떤 주문을 했나. =라스트신의 춤은 실제로 관광버스도 태워드리고 해서 익힐 수 있었다. 아줌마들이 “아이고 총각” 하면서 나와 제작부 친구들의 티셔츠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고 하는 것까지 다 보시면서. (웃음) 그런데 첫 장면의 춤은 혜자 선생님의 가장 걱정 중 하나였다. 결국 여자 연출부 2명과 함께 방에서 매일 연습하며 익히셨다. 선생님은 이 장면을 촬영할 때 모든 스탭들이 함께 춤을 췄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춤을 춘 건 나와 서우식 프로듀서뿐이었다. (웃음) 아마도 메이킹필름을 보면 우스꽝스러울 거다.

-사건 현장에 출동한 형사반장이 “웬일로 이렇게 현장 보존이 잘됐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살인의 추억>에 대한 자기반영 같더라. =어찌하다보니 배경도 지방이고, 살인사건과 형사가 나오니까 자연히 나도 <살인의 추억>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차라리 <살인의 추억> 때와 뭐가 같고, 뭐가 다를까, 어떻게 변주해볼까,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됐다. 80년대 형사인 송강호나 김뢰하는 용의자를 직접 구타했는데 현대가 배경인 여기서는 사과를 차는 것으로 설정했다. 폭력은 쓰지 않되 폭력의 분위기를 조장한달까. CSI 운운하는 점도 비슷한 차원이다. 물론 나른하면서 여전히 아둔한 분위기는 <살인의 추억>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웃다가 슬프다가 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형사가 세팍타크로 자세로 사과를 차는 장면이나 혜자가 미선에게 농약 이야기를 할 때 보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둡고 심각하면서 무거운데도 거기에 짓눌리지 않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많았다. 처음부터 호흡조절을 위해 미리 장치한 것인가. =그런 것을 계산하지는 않는다. 시나리오 쓰거나 찍을 때 본능적으로 나오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어두운 분위기에서 갑자기 웃기고 하니까 걱정을 하는데, 내게는 웃다가 슬프다가 하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일본 관객은 고지식해서 그런지 소심해서 그런지 (일본어투로)“웃어도 되는 것입니까?”식의 반응이다. (웃음)

-<괴물>에서처럼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개인의 자위권 문제가 등장하더라. =<괴물>에서 가족들은 사회와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사회가 괴물이다’라는 주장이 영화의 주제라고까지 할 수 있지만, <마더>에서는 그저 출발점인 것 같다. 엄마는 어차피 고립하게 되어 있고. 그 다음에 엄마가 어떻게 움직이나를 관찰하는 게 핵심이니까.

-그럼에도 그것이 당신의 이 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아, 난 한국사회를 사랑한다. (웃음) 복지도 잘돼 있고, 너무 많은 혜택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웃음)

억눌린 성적 욕망은 히스테리의 기본

-혜자와 도준이 같이 자는 장면이 몇 차례 나오는데, 굉장히 불안한 느낌이 조장된다. 오이디푸스적인 모티브 또한 확실하게 느껴진다. =한국 관객은 혜자와 도준이 섹스를 했다는 생각보다는 도준이 모자란 아들이다 보니 성인인데도 엄마 젖을 만지면서 잘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 사실 오이디푸스 모티브나 모자간의 성적 관계가 있다, 없다를 떠나서 좀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마더>는 섹스에 관한 영화 또는 섹스라는 서브텍스트를 품은 영화다. 많은 대사와 장면에서 계속해서 섹스를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엄마와 아들이라는 틀을 벗으면 좀더 잘 보일 수도 있다. 결국 그 좁은 집에 남녀 단둘이 사는 것이잖나. 엄마는 도준의 섹스를 통제하려 하고. 영화 전체를 누가 누구를 지배하려고 하나, 라는 관점으로 봐도 재밌을 거다.

-도준은 엄마의 통제에서 빠져나가려 하는 듯 보인다. 엄마가 약을 먹이는 도중 오줌을 싸는 장면이나 술집을 찾아가고 여성들에게 껄떡거리고 하는 것도 그렇다. =사건이 나던 밤 도준의 여정은 성욕에 이끌린 것이다. 대사에도 나오지만 “발정난 개”의 여정이다. 그야말로 배설을 한 뒤 술집 마담에게 집적거리다가 나중에는 마담 딸에게 집적거리고, 살해당한 아정이까지 쫓아가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엄마 젖을 만지면서 잠든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는 비극이 감춰져 있다. 혜자의 여정에도 성적 요소가 강하다. 혜자는 진태 집에 몰래 들어가는데 커튼 뒤에 갇혀서 진태와 미나의 섹스를 보게 된다. 그 다음에는 그 진태가 웃통을 벗은 채 등장해 뭔가 성적으로 위협적인 이야기를 한다. 얼마 뒤에는 마을 전체의 섹스도 엿보게 된다.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가면 혜자에게 성적으로 공격성을 띠는 남자까지 등장한다.

-정말이지 이 영화 속 모든 사건의 이면에는 억눌린 성욕이 존재하는 것 같다. =억눌린 성적 욕망이야말로 인간 히스테리의 기본인 것 같다. 도준은 섹스를 하고 싶은 데 못하는 아이다. 아정이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고, 마을 남자들의 욕망은 뒤틀려 있고. 그런 가운데 섹스로부터 차단된, 생리대를 쓴 지 아주 오래된 혜자가 그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사회적인 풍자를 많이 배제해서인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성적 히스테리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그 섹스라는 서브텍스트가 지금 당신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실체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마을 남자들이 소녀 한명을 능욕한 사건이 몇번 있었는데 그런 게 영감을 주기는 했지만 그것을 고발하려는 차원은 아니니까. 아까 내가 서로 다른 요소를 뒤섞거나 충돌시키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엄마와 살인사건’이 그렇듯이, ‘엄마와 섹스’도 정말 안 어울리는 요소잖나. 특히 한국사회에서 엄마는 섹스의 반대말 아닌가. 엄마들이 그렇게 억눌려 있기 때문에 고속버스에서 아저씨들과 부비부비를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웃음) 따져보면 엄마이기 때문에 섹스가 나온 것 같다. 가장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뒤섞는 내 본능에 따라서.

과도한 자식사랑은 숭고한가, 광기인가

-후반부 혜자의 “우리 아들 발톱의 때만도 못한 새끼가…”라는 대사는 당신이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 있다. 그것을 모성이라 불러야 할지 광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부모들은 짐승이 되기 쉬운 것 같다. 자식으로 인해서 미쳤을 때 그게 숭고한 사랑이냐 야만적인 광기냐, 이 영화는 그 이야기인 것 같다.

-이 영화는 혜자가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는 여정이기도 하다. 혜자의 거듭되는 1:1 대결인 셈인데, 그 과정이 <사망유희>까지는 아니더라도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혜자 선생님도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인물들의 대사는 일상적이고 리얼한데 전체를 보면 몽환적이고 아련한 데가 있다고. 혜자는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쳐서 결국 마지막엔 아들과도 대결하는데, 어차피 이 영화는 엄마가 사건을 헤집고 들어가는 이야기이니까 시각적으로도 혜자가 어디론가, 그것도 우군도 없이 홀로 걸어가는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강조하려 했다. 그것이 핵심 이미지 같기도 했다.

-이 영화 전반에 걸쳐서 특징적인 것은 극단적인 빅 클로즈업이다. =미묘하게 불안정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빅 클로즈업을 사용했다. 화면비율을 2.35:1로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턱이나 이마가 많이 잘리는데, 그 느낌이 중요해서 2.35 : 1을 썼다. 또 빅 클로즈업으로 보이는 혜자 선생님과 원빈의 눈 때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거짓이나 무언가를 감추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누군가가 거짓을 행하는가는 눈을 보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혜자 선생님이나 원빈은 눈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도 해서 눈에 가깝게 들어가고 싶기도 했다.

-당신은 어떤 영화든 스스로 만들고 싶어 하는 특정한 장면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마더>에서 꼭 만들고 싶었던 장면은 무엇인가. =라스트신이다. 혜자가 아줌마들과 어울려 버스 안에서 춤추는 장면 말이다. 2004년에 혜자 선생님에게 출연 제의를 할 때도 이미 그 장면은 있었다. 어릴 때 오대산에 갔는데, 버스가 입구에 도착했는데도 아줌마들은 그 자리에 차를 세워놓고 1시간 넘게 춤을 추더라. (웃음)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추태라고 생각했다. 근데 나이가 드니까 좀 달리 보이더라.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각자에게 다 사연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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