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가석방된 바비(제시 브래퍼드)는 죽은 엄마가 살던 아파트로 향한다. 음산한 건물에는 혼잣말하는 할머니와 초점이 없는 노인, 장난감 피아노의 녹슨 건반을 치는 꼬마가 복도를 배회한다. 집도 끔찍하다. 곳곳에 핏자국이 남은 벽은 금이 갔고, 배관에 물 지나가는 소리도 또렷하다. 어느 날 밤 옆집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부부싸움의 수준을 넘어 가정폭력이 의심되는 상황.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경찰 남편이 아이와 엄마를 때린다. 참다 못한 바비는 신고하지만 출동한 경찰이 열어본 집에는 사람이 사는 흔적이 없다.
3년 전 여자친구 알리사(아멜리아 워너)를 구하려다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바비는 출소하기가 무섭게 사회의 냉대를 맛본다. 벽을 타고 전해지는 옆집 부부의 다툼소리나 배관을 흐르는 수도의 차가운 비명을 혼자 참아야 하는 이유는 따로 없다. 오랜만에 찾아간 알리사는 그를 밀어내고, 친구는 그의 전화를 피한다. 어렵게 자동차 수리점에 취직하지만 도난사건이 일어나자 주인은 가장 먼저 그에게 따져 묻는다. 심지어 아파트 관리인도 바비의 구원요청을 외면한다. 그렇기에 바비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아파트에서 홀로 죽어간 그의 엄마가 그랬듯 자신의 귀와 머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에코>라는 제목대로 영화에서 ‘소리’의 비중은 크다. 낡은 문이 닫히는 소리, LP판이 지직거리며 토해내는 멜로디, 걸레질하는 소리 등 다른 장르였다면 대화에 묻혀 지워졌을 소음들은 바비의 고독과 만나며 각별히 부각됐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쾌한 상상력은 이렇게 소리를 통해 자극받는다. 하지만 <그루지> <링> 등 J-호러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들이 남긴 인상과 전반적으로 비슷한 느낌은 영화의 덜미를 잡는다. 필리핀 감독 얌 라라나스가 전작 <Sigaw>(2004)를 직접 리메이크한 <에코>는, 주거공간에 남은 원혼의 저주라는 점에서 <주온>을 연상시키고, 사방에서 기어나오는 시체의 손은 <링> <검은 물 밑에서>의 그것들과 유사하다. 장면과 장면 사이 로앵글로 잡아낸 뉴욕의 모습이 없었더라면 배경이 굳이 미국이 아니어도 상관없겠다는 의구심도 든다. 다시 말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했을 뿐 특색이 없다. 원혼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는 결말은 오히려 동양적이다. 억지스럽지는 않지만 이제는 지겨워진 할리우드의 아시안 호러 리메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