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과 야유가 빗발치는 가운데 칸영화제의 선택이 공개됐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5월24일 저녁 7시에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이 열렸다. 칸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은 오스트리아 감독 미하엘 하네케의 <하얀 리본>이 차지했다. <하얀 리본>은 1차세계대전 직전 독일의 한 마을에서 만연하는 도덕적 공황 상태를 질식할 듯 미려한 흑백 화면으로 그린 작품으로, 영화제 내내 황금종려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어왔다. 시상대에 오른 하네케는 "내 아내는 종종 나에게 행복하냐는 질문을 하곤 한다. 지금 이순간, 나는 행복하다"고 답했다.
프랑스 감독 자크 오디아르의 <예언자>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예언자>는 경찰폭행으로 6년형을 선고받은 순진한 아랍계 청년이 교도소에서의 삶을 통해 점점 무시무시한 마약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감독상은 <키나테이>의 필리핀 감독 브라얀테 멘도사가 받았고, 중국 로우 예 감독의 <스프링 피버>는 각본상을 가져갔다. 남녀주연상은 퀜틴 타란티노의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에 출연한 오스트리아 배우 크리스토프 월츠와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 크라이스트>에 출연한 프랑스 배우 샬롯 갱스부르에게 각각 돌아갔다. 누벨바그의 전설 알랭 레네 감독은 <잡초>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영국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피쉬 탱크>와 공동으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시상대에 오른 박찬욱 감독은 "아무래도 나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에는 멀었나보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건 창작의 즐거움 뿐이다"라고 운을 뗀 뒤 "첫 두편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오랫동안 영화를 못찍고, 세번째 작품을 찍은 이후에는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스토리 구상부터 개봉까지, 인터뷰 할 때만 제외하면 모든 과정이 즐거움이다. 즐거움의 마지막 단계는 칸영화제다. 심사위원에게 감사드리며, 형제와 다름없는 친구이자 동료인 송강호와 영광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시상결과는 최근 칸영화제 역사상 최대의 이변 중 하나였다. 시상식이 생중계되는 칸영화제 드뷔시 극장에는 각국 기자들의 끊임없는 야유로 가득했다. <하얀 리본>과 <예언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상작들이 영화제 내내 극도의 악평에 시달린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브리얀테 멘도사와 로우 예가 감독상과 각본상을 받는 순간 극장은 기자들의 야유가 가장 강하게 빗발쳤다. 특히 각본의 허술함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됐고 감독 스스로도 "영화를 찍으면서 각본을 겨우겨우 써나갔다"고 밝힌 로우 예의 <스프링 피버>가 각본상을 받는 순간 야유는 절정에 달했다. 박찬욱 감독의 이름이 불릴때도 상당수의 기자들이 야유했다. 박찬욱 감독이 "아무래도 나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에는 멀었나보다"라고 말을 시작하는 순간 몇몇 기자들은 "그래!(Yes!)"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각 수상작에 대한 이견과 논쟁이 첨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상식이 끝나고 열린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에서 터키 감독 누리 빌게 세일란은 "많은 경우 만장일치는 아니었다"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키나테이>로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브리얀테 멘도자의 감독상 수상 경위를 묻는 질문에 심사위원들은 각기 다른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이창동은 "이런 종류의 영화를 여기서 보게 된 게 기쁘다"고 말했으나 인도 영화인 하니프 쿠레이쉬는 "이런 종류의 영화를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연인끼리 보러가길 권하지는 않겠다"고 답했다. 논쟁으로 가득했던 제62회 칸국제영화제는 논쟁의 한 가운데 있던 영화들에게 아낌없이 상을 던지며 마무리됐다. 이것은 용감한 선택일까 무모한 선택일까. 수상작들이 개봉을 시작하는 순간 또다른 논쟁이 시작될 전망이다.
수상작 리스트
황금종려상: 미하엘 하네케의 <하얀 리본>(Das Weisse Band) 심사위원대상: 자크 오디아르의 <예언자>(Un prophete) 감독상: <키나테이>(Kinatay)의 브리얀테 멘도자 각본상: 로우 예 감독의 <스프링 피버>(Spring Fever) 남우주연상: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Inglorious Basterds)의 크리스토프 월츠 여우주연상: <안티 크라이스트>(AntiChrist)의 샬롯 갱스부르 심사위원상: 박찬욱의 <박쥐>, 안드레아 아놀드의 <피쉬 탱크>(Fish Tank) 평생공로상: <잡초>(Les Herbes Folles)의 알랭 레네 단편상: 아오 살라비자의 <아레나>(Arena) 황금카메라상: 워윅 쏜튼의 <삼손과 데릴라>(Samson And Delil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