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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형언할 수 없어, 그녀는 울었다
김혜리 사진 이혜정 2009-05-25

<마더> 김혜자

<마더>의 엄마 혜자가 자는 모습은 괴이하다. 아들 도준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는 양말도 벗지 않은 채 부동자세로 누워 있다. 어디선가 바스락 “도준이” 소리만 들리면 뛰쳐나가기 위해서다. 도준이 어디가 그리 예뻤냐는 질문을 받자 김혜자는 사진 촬영 중인 원빈을 향해 몸을 돌려 “도준아” 부른다. 고개를 빼꼼 내밀며 애정을 주체 못하는 목소리로 “뭐 하니?” 하고 묻는다. 의외로 김혜자는 공연하는 동료 배우를 극중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좀체 없다고 한다. <마더>는 달랐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통에 차마 “원빈씨”라는 호칭이 나오질 않았다. 40년이 훌쩍 넘은 연기생활에도 불구하고 김혜자는 <마더>에서 처음 해본 일이 많다. 술도 고기도 여태 먹은 것보다 많이 먹었고 노래방도 평생 가본 횟수보다 더 많이 갔다.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거울도 보지 않았다. 연기가 성에 안 차 울어버린 날도 있었다. 복잡한 터미널에서 촬영이 잘 풀리지 않았다. “지문에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라고 돼 있었어. 그게 어떤 건지 한번 해보라지? 미치겠고 죽고 싶었어요. 아마도 환장한 얼굴로 나왔겠지. 신경이 곤두선 감독이 스탭에게 내리는 날카로운 지시가 전부 다 나 들으라는 말 같았어요.” 배우를 위해 마련된 캠핑카에 들어가 그녀는 울었다.

<마더>에서 김혜자가 보여줄 모습에 좋은 참고가 될 전작은 90년대 초 방영된 MBC 미니시리즈 <여(女)>다. 시대를 앞선 이 수작에서 김혜자가 분한 중년 여인은 유괴한 아기를 친딸로 속여 키우다가 뒤늦게 진실을 안 딸에게 버림받고 미쳐버린다. 그녀는 집요하게 거짓으로 거짓을 덮으며 살아가다가 위협이 닥치면 평소의 자애로운 얼굴을 벗고 새끼를 품은 어미 개처럼 이를 드러낸다. 당시 봉준호 감독은 TV를 보다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그녀의 얼굴에 매혹됐다. “일반적인 드라마 연기를 벗어나는 모멘트가 있었어요.” 유치원생 시절 대학생 연극에 병든 아이로 출연한 다음 김혜자는 늑막염에 걸려 초등학교 입학을 1년 늦춰야 했다. 일곱살 이래 그녀는 모든 출연작이 끌날 때마다 앓았다. 그동안 몸 안에 들어와 사지를 작동해주던 극중 인물을 떠나보내면서 급작스레 살아 움직일 동기가 사라지니 맥을 놓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과거 모든 작품에 대한 그녀의 회상은 예외없이 “그거 제안 받았을 때 난 되게 아팠고 하기 싫었는데…”로 시작된다. 새로운 작품은 그녀에게 “하나님이 매번 반드시 주시는 살아야 할 이유”다.

<마더>의 끝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몰입과 고역의 정도로 미루어 여느 때보다 깊은 마비, 그리고 강렬한 새로운 삶의 이유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전요. 이 엄마를 하면서 항상 벽과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영화를 잘 봐요. 누구와도 말이 안 통해. 나는 계속 허공을 치는 사람이었어요.” 하다못해 그 귀한 아들을 부둥켜안고 맘놓고 울고 부는 장면도 없다.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그치느라 슬퍼할 겨를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이 여자는 도준이가 눈에 보여도 불안하고 안 보여도 불안해. 죽어야만 놓여나.” 잔인하다. 그러나 불안은 김혜자에게 친근한 동숙자이기도 하다. 대가라고 뭇사람이 입을 모아도 그녀는 여전히 잘한다는 칭찬에 목마르고 관객의 환호에 주린다. 감독의 “잘하셨어요”라는 뉘앙스가 성에 차지 않으면 안달이 난다. 그래서인가보다. 이 대배우를 보호하고 싶다는 턱없는 생각이 치미는 것은. 봉준호 감독은 그녀를 아주 지혜롭게 안심시켰다. <마더> 촬영이 끝나던 날, 그는 봉투 하나를 건넸다. 콘티 한장이 한줄의 대사와 함께 들어 있었다. <설국열차> 다음에 만들어질 차기작의 한 조각이었다. “2013년에 찍는대요.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겠냐고 했어.” 그리 말하며 김혜자는 갓난아기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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