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키에 구부정한 어깨, 낡은 중절모를 눌러 쓴 채 입에는 항상 담배 파이프를 물고 있는 윌로씨로 대표되는 자크 타티 회고전이 5월19일(화)부터 31일(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데뷔작인 <축제일>(1949)에서 <퍼레이드>(1973)까지 타티의 전작 6편과 단편 3편을 묶어 총 9편이 상영되는 이번 회고전은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 막스 브러더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의 코미디 배우이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대영화의 영역을 개척한 시네아스트였던 자크 타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회고전에서 먼저 관심이 가는 작품들은 마임 배우 시절의 모습에서부터 코미디 감독까지 타티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세편의 단편영화이다. 타티의 첫 영화 출연작으로 직접 각본까지 맡은 <왼쪽을 주의하라>(르네 클레망, 1936)는 스포츠 스타들을 흉내내는 마임 배우로 활약했던 1930년대 타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윌로씨의 휴가>(1953)의 테니스 경기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브를 넣던 윌로의 복싱 버전을 보여준다. 장편 데뷔작이었던 <축제일>(1949)의 모태가 된 <우체부학교>(1947)는 이후 타티 영화의 특징인 작은 소동극을 담고 있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축제일>에 고스란히 옮겨진다. <야간수업>(1967)은 코미디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마임을 강의하는 타티의 모습을 담는다. 타티는 이 강의를 빌려 ‘관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의 개성을 캐리커처한 마임을 직접 실연한다.
코미디의 민주주의
물론 자크 타티 회고전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인물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윌로 아저씨’일 것이다. <윌로씨의 휴가>(1953) 이후 <트래픽>(1971)까지 네편의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윌로는 타티의 분신이자, 타티 영화의 모든 것이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자유롭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윌로는 획일화된 리듬의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고, 타티는 이 두 세계간의 부조화를 작은 소동극을 통해 드러내곤 했다. <윌로씨의 휴가>에서 윌로가 휴양지로 차를 몰고 갈 때 들려오는 앙증맞은 소음들은 이후 윌로의 사랑스런 소동극을 알리는 서곡이다. 윌로로부터 파생되는 소동극들은 기계화된 현대사회의 획일성 속에 내재한 공허함과 지루함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키거나 일탈시키는 해방의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타티의 영화를 두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영화의 코미디 버전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의 독자성은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장 순수한 ‘영화적 형식’을 통해 표현된다는 점에 있다. ‘코미디의 민주주의’라 불리는 그의 영화적 형식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사물, 동물을 공평하게 미장센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화 중심의 영화에서 사라지기 일쑤였던 사물과 자연, 인간 등으로부터 파생되는 조그마한 소리마저 동등하게 다룬다. 타티의 민주주의적 영화 형식은 주변을 배제하던 영화의 구석구석, 순간순간을 순수한 영화적 운동으로 되살려냄으로써, ‘하나의 중심’에 고착되며 획일화되어버린 관객의 눈과 귀에 ‘다차원적인 활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최종 승리자는 그가 비판했던 획일화된 삶이었다. 타티가 전재산을 털어 완성한 70mm영화인 <플레이타임>(1967)은 그의 영화세계를 집약한 작품이었지만, 관객은 좀처럼 이 작품에 눈과 귀를 열고자 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트래픽>과 <퍼레이드> 두편의 영화를 더 완성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의 마지막 영화는 스웨덴에서 TV영화로 제작한 <퍼레이드>다. 코미디 배우로 돌아가 자신의 온몸을 바쳐 연기하는 타티의 모습은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이 함께했던 <라임라이트>의 슬랩스틱 공연을 떠올리게 한다. 웃기면서도 숭고한 슬픔이 느껴지는 그 장면 말이다. 그것이 타티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시간표를 비롯한 영화제 관련 문의는 www.cinematheque.seoul.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