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영화제 라인업에 별다른 흥분을 느끼지 못하는 건 비단 나뿐일까? 코히누르 다이몬드를 본다는 데 들떠 궁금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크든 작든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일 뿐 정말 궁금한 건 너무 실망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것뿐이다.
올해의 칸영화제는 질 제이콥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칸이 선호하는 작가 감독들의 영화를 많이 모았다. 현재의 프로그래머 티에리 프리모는 <버라이어티>의 동료 기자에게 “올해 세계의 모든 주요 작가 감독들이 칸에 영화를 몰아주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이건 라이벌인 베를린과 베니스영화제를 겨냥한 의미없는 발언일 뿐이다.
올해 칸은 세계 영화의 “위대하고 훌륭한” 감독들의 최근작을 섭렵해 볼 수 있는 ‘미인 콘테스트’가 될 듯하다. 이미 그 영화들을 볼 만큼 본 감독들의 익숙한 작품들의 축제. 영화계의 기차 이름 알아맞히기 행사? 물론 이것도 영화제가 해야 할 일이라면 일이겠지만 그것만이 영화제가 할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칸영화제는 중반으로 접어들어 세계 언론은 이미 올해 칸에 대한 평결을 내렸을 것이다. 어떤 기자들은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모두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거장 라스 본 트리에의 최근 영화(<안티 크리스트>)를 보고 내가 새삼 충격을 받기라도 해야 하는가? 호주 감독 제인 캠피언(<브라이트 스타>)은 이제 다 가라앉아가는 경력에 뭔가 새롭게 내놓을 것이 있단 말인가? 대만에서 영화를 만드는 차이밍량(<페이스>)은 요란한 게이 폼잡기를 넘어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켄 로치, 쿠엔틴 타란티노, 리안, 알랭 르네는 이만큼까지 온 경력에서 또 다른 놀라운 그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영화제에 가는 유일한 이유가 이 거장들의 이름이 가라앉는가를 지켜보기 위해서라니, 슬픈 일이다. 영화제는 발견의 여행- 바라건대 뭔가 반짝이는 빛을 발견하는- 이어야 하지 별들이 떨어지는 걸 지켜보러 가야 할 이유는 없다. 박찬욱 같은 젊은 감독들에게는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다. 박 감독은 지난번 <올드보이>로 칸의 후광을 얻었다. 일군의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환영했지만 다른 이들은 탐탁지 않아 했다. 따라서 <박쥐>는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위험이 큰 도박인 셈이다.
지난해 프리모는 칸을 발견의 장이 되는 영화제로 되살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보수노선을 택했고 칸은 세계의 가장 부르주아적 영화제로서의 위치를 더했을 뿐이다. 10년 넘게 그 자리에 있으면서 프리모는 그가 정말 세계 영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칸의 행보를 가장 관심 갖고 지켜볼 이는 베니스영화제 프로그래머인 마르코 뮐러일 것이다. 지난 몇년간 프리모는 칸과 친밀한 감독들의 최근작을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하지 않으면서 칸을 정말로 되살리려고 노력했었다. 뮐러는 칸이 거절한 영화들을 베니스에 초청하며 프리모의 실수를 이용했다. 그러나 4년간의 성공 이후 뮐러는 세계 최고의 영화제가 아니라 이류의 전문화된 영화제 정도의 프로그래밍으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를 말아먹었다.
가장 큰 영화제조차 경제적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영화제들은 시대 착오적 선정 기준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언론들은 영화제 보도 예산을 줄이고 있다. 이런 때에 뮐러는 올해 베니스영화제를 되살려야 한다. 칸이 성공적이든 아니든 프리모가 뮐러가 해야 할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