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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촛불소녀의 재림
고경태 2009-05-12

<반두비>

‘촛불시위 1주년 기념 영화.’ 아무도 그런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냥 나 혼자 붙여보았다.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영화는 최근 개막된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이다. 아직 전주에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미리 볼 기회가 있었다. 영화의 표면을 구성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와 여고생의 만남은 MB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 시대를 향한 감독의 경멸적 시선이 촛불을 떠올리게 했다. 더구나 주인공인 여고생 민서(백진희)는 영락없는 ‘촛불소녀’다.

신동일 감독은 한결같은 영화 노선을 고집한다. 그는 우직하면서도 직설적이다. 전작인 <방문자>와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보면 그렇다. <반두비>도 그 연장선이다. 곳곳에 정치적인 기호와 메시지가 장착됐다. 학교 앞으로 달려오는 원어민 영어학원 버스엔 ‘MB’라는 글자가 붙고, 편의점의 취객은 “명박이 믿고 뉴타운 믿다가 좆돼버렸다”며 행패를 부린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여고생 민서였다. 그녀는 이주노동자 카림(마붑 알엄)의 월급을 떼먹은 60대 사장의 집에 용감하게 침입해 ‘깽판’을 친다. 딸의 친구로 착각한 사장에게 민서는 막말로 쏘아붙인다. “신만수씨? 만수야 언제 인간 될래?” 또 사장의 뺨까지 때리며 “니들은 잘 먹고 잘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나게 하고 밥이 넘어가?”라고 울부짖는다.

웃음폭탄이 터졌던 장면은 민서가 그 집 거실 탁자의 신문을 집어올린 뒤 내뱉는 대사였다. “이딴 걸 보니까 니가 개같이 살잖아.”(영어 자막은 You read this trash, and live like trash였다.) 이래도 되나 걱정될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 극한적으로 맹랑한 소녀가 집어올린 신문은 무엇이었을까. 내 짐작으로는 <조국일보>다. 전작 <방문자>에서 정액 묻은 휴지를 올려놓던, 제발 그만 보내라고 주인공이 지국에 전화를 걸던 바로 그 신문이다.

안 그래도 요즘 <조국일보>의 모델이 된 그 신문은 촛불시위 되새김질에 한창이다. 오늘 본 그 신문 칼럼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양심의 이름으로 포장된 군중의 독선, 허상에 매달린 광기가 너무도 창피했다.” 웬지 영화 속 민서에 대한 이런 꾸짖음으로 들렸다. “이년아 공부나 해. 어른 말씀 고분고분 잘 듣고….” 한 보수단체에서는 촛불시위를 ‘거짓과 광기의 100일’이라 규정지었다. 그 나쁜 촛불시위의 여진 때문에 환경영화제는 환경부 지원금 2억원을 못 받게 생겼다(26~27쪽 참조).

1년 전 촛불을 점화했던 그 맹랑한 소녀들이 그립다. 개차반 어른들에게 버르장머리 팔아치우고 개기는 소녀들을 어느 거리에선가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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