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이 평소 박찬욱 감독 영화에 비해 적은 느낌이다. = 평소보다 많지는 않다. 그러나 다른 영화에 비해 아주 크게 적지는 않을 거다. <올드보이>는 음악을 많이 썼고, <친절한 금자씨>와는 비슷한 것 같은데.
- 그래도 <친절한 금자씨>는 메인 테마가 반복적으로 쓰인 게 느낌상 영향을 준 것 같은데. = 반복적이라는 점도 있을 것이고 귀에 들리는 음악이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레코딩 분량을 따져보니까 50분이 좀 넘던데, 그 정도면 많이 적은 것은 아니다.
- 전체적인 음악을 놓고 박찬욱 감독과 조율했을 텐데. = 박 감독과 조율한 것은 <올드보이> 때는 음악이 감정을 리드했고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음악을 썼다면, 이번에는 감정의 치우침 없이 중도적인 음악을 많이 쓰자는 것이었다.
- 중도적인 음악이라… 상당히 어려운 컨셉 같다. = 태주가 부활하는 장면 같은 데서는 과잉되게 쓰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중도적인 음악을 썼다. 중도적인 음악이 더 힘들기는 하다. 아주 미묘한 차이인데, 감정을 고양시키기보다는 분위기를 잡아준다고 할까. 살인하는 대목에서도 음악이 많이 쓰였다. 불협화음도 많이 썼다.
- 칸타타 82번은 사실상 메인 테마라 볼 수 있는데 어떻게 선택됐나. = 박 감독이 선택했다. 부제가 ‘나는 만족합니다’인데, 박 감독이 글을 쓰면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쓴 것일 거다. 이 음악은 처음에 메인 테마로 설정했는데 결과적으로 봐서는 쓰인 횟수나 극중에서의 역할을 따져보면 메인 테마라고 하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영화 시작과 끝에 나오고 송강호가 연주하는 장면에서 다시 들리고, 그것의 변주곡도 있으니 메인 테마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 리코더는 왜 선택됐나. = 그건 내가 잘 모르겠다. 감독이 설정한 거고. 아마 극중 인물이 직접 악기를 연주한다는 설정 때문 아닌가 싶다. 리코더가 가장 쉽게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오보에나 클라리넷은 일반인이 잘 불지 않잖나. 사실 리코더가 의외로 불기는 어렵다.
- 송강호의 연주 모습은 정말 감쪽같더라. = 훈련을 굉장히 많이 했다. 송강호에게 리코더를 가르쳐준 선생이 있는데 O.S.T에서 실제로 리코더 연주를 한분이다. 그래도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운지는 완벽하더라. 역시 노력하는 배우다.
- <박쥐>는 보면서 음악을 덜 의식하게 되더라. 영화적 긴박감에 묻혀서 그런 것 같았다. = 그건 칭찬인데.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음악이 리드를 했다면 이번에는 리드를 하지 않았다. 그건 박 감독 주문이기도 했다. 이 영화는 음악이 리드하게 되면 과잉적인 감정이 될 것 같아서. 편집본을 봤을 때 이 영화가 굉장히 좋았다. 개인적으로 박 감독의 최고작이 아닐까 생각했다. 미학적으로나 완성도 면에서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영화가 아닌가. 나도 거기에 걸맞은 음악을 해야 할 텐데 하는 점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음악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고 하면 굉장히 성공이다.
- 어떤 시도였나. = 불협화음이나 코러스를 거의 시도한 적이 없는데 개인적으로 만족스럽다. 전형성을 피하기 위해서 스피카토 같은 현 주법도 썼다.
- 사실 <박쥐>에 대해 막연히 생각할 때 영화 자체도 그렇지만 음악도 종교성이 짙을 거라고 예상했다. . = 그런 것은 일부러 피했다. 그레고리안 성가 같은 곡을 썼다면 너무 뻔해 보이지 않을까. 박쥐나 흡혈이라는 문제는 삶과 죽음과 관련있고 게다가 신부가 흡혈귀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전형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거기에 그레고리안 성가 같은 게 나오면 재미가 없어진다.
- 칸타타는 종교적인 음악 아닌가. = 바흐 시대는 다 종교음악이다, 모든 음악도 신을 경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으니까. 그런데도 종교적인 색채가 덜 나는 것은 덜 종교적으로 보이도록 노력했기 때문이다. 만약 파이프 오르간을 썼다면 더 종교적 색채가 났을 거다. 그런데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영화에 종교적 색채를 넣는다면 재미있겠지만, 이 영화는 일단 주인공이 신부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거라서 거기에 덧칠을 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음악이 가장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는 화면에서 보여지지 않는 것을 음악이 건드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마작할 때마다 나오는 뽕짝음악도 박찬욱 감독이 선택했다던데. = 궁금해서 왜 이걸 선택했냐고 물어보니 박 감독은 김옥빈의 환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하더라. 만날 가족들에게 구박을 받는데 그 와중에 뽕짝음악이나 흘러나오고 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얼마나 답답해할까. 만날 사람들이 구박하고 중간에 뽕짝이나 흘러나오고 하는 설정에서 그렇게 나온 거다.
- 왜 하필 그 노래들인가. = 그것도 잘 모르겠다. 이난영씨 노래는 이번에 처음 들어봤는데 너무나 훌륭한 보컬이더라. 남인수씨도 굉장히 좋고. 이런 음악들이 이 기회에 잘 알려졌으면 좋겠다.
- 뽕짝이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음악을 서구식으로 푼 것 같다. = 사실 내 음악이 서구적이다. 어릴 때부터 서구 문명 지향적이라서 그런 경향이 있나 보다. 지난해 독일에서 영화를 같이 하자는 팀이 왔는데 그 친구들이 그러더라. <올드보이>의 음악가와 <친절한 금자씨> 음악가를 두고 누구에게 맡길까 고민했단다. 그런데 알고보니 같은 사람이라는 거다. (웃음) 그 친구들 말이 네 음악은 굉장히 서구적이다. 그래서 서구인에 굉장히 잘 맞는데 그러면서도 할리우드 방식과는 굉장히 다르다고 하더라.
- 또 어떤 영화가 잡혀 있나. = 지금 <백야행>을 하고 있고, 강우석 감독님의 <이끼>. 변영주 감독의 <화차>도 대기 중이다. 그런데 시간은 많다. 당장 하는 건 <백야행>뿐이니까. 앞으로 몇편 한다 이런 건 너무 소문내지 말아달라. (웃음)
- 당신은 박찬욱 감독과 강우석 감독의 영화에 동시에 참여하는 유일한 스탭일 것이다. 그 비결은 뭔가. = 강 감독님과는 <공공의 적> <실미도> <강철중: 공공의 적1-1>을 함께했다. 사실 영화들은 내게 다 똑같다. 물론 박 감독과 함께 일할 때 더 신나는 건 취향도 비슷하고 둘 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전혀 부담감이 없으니까. 하지만 로맨틱코미디 작업을 했는데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멋진 일이다.
- 개인적으로 취향이 분명하고 명쾌한 감독과 일하는 게 좋은가, 아니면 취향이 뚜렷하지 않아서 스스로가 일할 여지가 많은 감독이 좋은가. = 일장일단이 있다. 그래도 내게 많이 맡겨주는 감독이 좋다. 박 감독이야말로 내게 정말 많이 맡겨주는 편이다. 그 어떤 감독보다. 굉장히 까탈스럽게 할 것 같지만, 처음부터 내게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그런 적은 없다. “아, 그냥 자기가 알아서 해”, 이런 스타일이다. 스탭들을 믿어주는데, 그게 스탭들의 능력을 잘 뽑아먹는 것 같다. 진짜 흡혈귀 같은 사람이다. (웃음) 나는 박 감독의 미덕 중 하나가 그것 같다. 사람의 능력을 최대치로 뽑아내는 것, 그것이 능력 아닌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