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 퀸스대학교(Queen’s University Belfast) 영화학과 대니얼 마틴 교수는 세계 내 한국영화의 특정한 좌표를 읽게 해주는 좋은 대화 상대다. 홍상수 감독과 임권택 감독, 이창동 감독과 이명세 감독의 작품 세계를 사랑하는 그는 그동안 영화진흥위원회 해외 통신원 리포트를 통해 영국 내 한국영화의 배급과 마케팅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지난 4월 셋쨋주 한국 대학과의 교류를 위해 내한한 마틴 교수와 만났다.
-최근 영국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현황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영국 내 한국영화 열기는 2003년과 2004년에 정점을 찍었다. 그때 김기덕 감독과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 김지운 감독 등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현재로선 예전만큼은 아니다. 그래도 지난해에 <추격자>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일정 정도의 관심을 모았다.
-한국영화가 영국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을 전반적으로 정리한다면. =아직까진 <올드보이>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통해 한국인 혹은 한국이라는 나라까지 한꺼번에 폭력적이고 섹슈얼하게 받아들이는 오리엔탈리즘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정체를 규명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친숙한 무언가로, 인식 가능한 무언가로, 익숙한 스타일의 ‘코리언 버전’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 <올드보이>를 설명하는 수식어로는 셰익스피어라든가 그리스 비극, 자코비언 비극(Jacobean tragedy) 같은 단어들이 동원됐고, <괴물>은 코리안 스타일의 몬스터물로 소개됐다. 익숙하지만 다르다는 것, 그 지점이 한국영화의 매혹적 요소였다. 아직까지 한국영화를 보는 영국 관객은 한정되어 있다. 문화적인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무언가, 오로지 한국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무언가를 일부러 찾는 다른 입맛의 관객이다.
-<웰컴 투 동막골>처럼 외국 관객에게는 거의 소통되지 않았던 경우도 있다.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영화’로 홍보되었다. 한국쪽 포스터와 달리 영국 포스터에선 총을 든 군인이 전면에 등장한다. 제목도 <Battle Ground 625)>로 바뀌었다. 관객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를 기대하고 왔다가 실망했다. 영화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정보를 준 셈이다.
-영국에서 한국영화 화제작을 도맡아 배급하던 ‘타탄’의 레이블 ‘아시아 익스트림’에선 그 영화들을 ‘문화적 수류탄’이라고 호칭했다. =‘아시아 익스트림’의 성공은 매우 영리한 마케팅 전략에서 기인했다. 김기덕 감독의 <섬>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을 때 일부 관객이 구토하고 기절했다는 보도는 이 영화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후 영국에 수입됐을 때 BBFC(영국영화등급위원회)는 ‘동물학대 금지조약’ 때문에 생선의 회를 뜨는 장면 등을 삭제했다. 배급사 타탄이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동물학대 부분은 쏙 뺀 채 삭제장면들이 온전히 인간의 폭력 때문인 것처럼 홍보했다. 보기도 전부터 사람들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대체 어느 정도로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기에! 그러니까 ‘아시아 익스트림’의 마케팅 방침은 이것이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상관없다, ‘수류탄’처럼 충격을 안겨주면서 화제의 중심이 된다면 상관없다.
-타탄 이외에 한국영화가 영국 관객에게 소개되는 다른 통로라면. =안타깝게도 <친절한 금자씨> <지구를 지켜라!> 등을 배급했던 타탄과 <웰컴 투 동막골> <형사 Duelist> <태풍>을 배급했던 ‘콘텐더’가 파산했다. 현재 타탄쪽 인물들이 새로 차린 회사 ‘아이콘 필름 디스트리뷰션’에서 <놈놈놈>을 소개했고, <괴물>을 배급한 ‘옵티멈 릴리징’에서 ‘옵티멈 아시아’라는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영화에 관심있는 DVD 회사로는 ‘서드 윈도 필름’이 있다. 특이하게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 ‘노컷 버전’ DVD가 전세계 최초로 이곳에서 출시됐다.
-영국 관객에게 소개하고 싶은 한국영화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퀴어시네마가 영국에서 오히려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기보다는, 한국의 퀴어시네마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라든가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영화들도 흥미롭게 읽혔지만, 최근 한국 퀴어시네마는 10년 사이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후회하지 않아> <로드무비> <욕망> 등은 매우 직접적이고, 젊어지고 있다. <쌍화점>은 아직 못 봤지만 매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