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의 칼럼에서 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여성감독에게만 초점을 맞추면서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오히려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여성 시나리오작가, 여성 편집자와 프로듀서들은 왜 인정해주지 않는 걸까? 지난해 여성영화제는 남성감독들의 영화를 상영하는 ‘오픈 시네마’ 섹션을 신설했다. 그러나 영화제는 영화 뒤에서 일하는 창의적인 여성들을 인지하는 데는 여전히 인색하다.
유독 여성영화제만 감독들을 중시하는 건 아니다. 모든 영화제가 작가주의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화감독들이 주된 게스트로 초대되고 영화제 프로그램에는 그들의 사진, 소개, 경력 등이 소개된다. 프로그램에는 공간적 여유가 없어 그렇다치고 영화제 웹사이트에라면 아트 디렉터, 촬영감독, 작곡가 등에 대해 소개할 수 있다.
아시아를 통틀어, 혹은 전세계를 통틀어, 여성영화제들은 매해 뛰어난 여성감독의 영화들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로듀서나 세일즈 에이전시, 배급자들이 훨씬 효과가 큰 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게이영화제, 장르영화제, 어린이영화제 등 모든 ‘소수’ 영화제들이 공통적으로 처한 문제다. 영화감독들 역시 자신의 영화가 특화된 영화제를 통해 ‘게토’ 안에 갇히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전통적 영화제 모델을 재고하는 대신 여성영화제는 점점 자신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다. 여성영화제가 잘나가는 여성감독의 영화를 확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면 언론·산업과 관객의 관심이 줄어들고, 그 다음해로 넘어가면 최고의 선택일 수 있는 영화들의 확보가 더 어려워진다. 새로운 세대의 관객을 끌 수 없다면 영화제는 역사적 유물이 되고 만다.
올해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남성감독이 만든 네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두편은 대만영화로, 리치위엔의 <뷰티풀 크레이지>와 쳉시오체의 <먀오먀오>였다. 영화제 프로그램은 이 남성감독들의 영화가 “타자와의 공감 능력과 윤리적인 감각이 높아” 선택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타자”가 “여성”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것은 오히려 두 감독의 약점을 강조하는 셈이다. 두편의 영화가 갈채를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영화의 여자 프로듀서들과 여배우들에게 돌려져야 할 것이다.
<뷰티풀 크레이지>는 연기를 배우는 학생들을 캐스팅한 뒤, 그들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놓고 촬영 과정에서 마음대로 바꿔가는 등 리 감독의 재미있고 실험적인 캐스팅으로 시작되었다.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다. 영화가 젊은 여성들에 대한 진실들을 풀어놓고 있다면 그것은 감독이 아니라 그 여배우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리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쳉 감독의 <먀오먀오>는 유럽계 혼혈인 산드린 피나의 연기가 돋보인다. 쳉 감독은 영화 박스오피스 성적이 저조하자 이 영화는 진정한 자기 영화가 아니라고 선언한 바 있다.
여성영화제가 <먀오먀오>를 위해 일했던 세명의 여성 프로듀서 중 하나인 재키 팡- 왕가위 영화를 성공시킨 바 있는- 이나 <뷰티풀 크레이지>의 여성 프로듀서 치엔리펜 또는 아트 감독 탕웨이슈안에 초점을 맞췄더라면 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올해는 21살인 여배우 피나가 출연한 다섯편의 장편영화와 여성감독이 감독한 단편 <니르바나>를 모아 특별 프로그램으로 상영하기에는 최적기였다. 어쨌거나 또 한번의 기회를 놓치고 여성영화제는 경직된 방향으로 한발을 더 내디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