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당판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의 오랜 정설이 적용된다고 믿는다. 시쳇말로 소금간도 잘 못 맞추는데도 바람몰이하듯 인기를 얻는 식당이 워낙 많아서다. 특히 까다롭고 정확한 감식가가 널려 있는 한식이나 동양식보다는 서양식에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영화 <빅 나이트>에서 뉴저지 변두리 동네에 이탈리아 식당 ‘파라다이스’를 연 형제의 고민도 여기서 시작된다. 이탈리아 전통 요리를 탁월하게 잘하는 형 프리모는 주방을 맡고, 비즈니스 감각이 있는 동생 세콘도는 홀 영업을 챙긴다. 그러나 영업은 고전한다. 맞은편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이 손님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요리 솜씨는 형편없지만, 미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내놓아 인기가 높다. 눈치 빠른 세콘도는 형을 압박한다. 우리도 좀 만만한 요리를 내놓자고,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싸구려 메뉴를 팔자고. 형 프리모는 단칼에 거절한다. “나보고 미트볼 스파게티 따위나 만들라는 거지? 어림도 없어.”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니 식당은 파산할 지경에 이른다. 자본은 냉정하고, 진실은 외면받는다. 이게 세상의 이치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때 경쟁식당 주인 파스칼이 계략을 꾸민다. 인기 재즈가수를 초청해서 연회를 열고 공연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권유다. 솔깃한 세콘도는 재즈가수 출연을 내걸고 지역의 명사들을 초청해서 한판의 ‘빅 나이트’를 벌인다. 끊임없이 나오는 요리의 향연에 사람들은 ‘오리지널 요리의 참맛’에 흠뻑 빠진다. 카메라가 <바베트의 만찬>처럼 친절하게 요리 설명을 해주지는 않지만, 푸짐하고 주재료의 맛을 강조하는 이탈리아의 전통 요리가 군침을 삼키게 만든다. 이탈리아 와인과 음식에 빠진 참석자들이 모두 취해가지만, 재즈가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형제는 이것이 모두 가게를 망하게 하려는 파스칼의 의도임을 알아차린다.
형제는 절망의 새벽을 맞이한다. 그리고 크게 다툰다. 사생결단의 결투도 벌어진다. 그래도 형제는 형제, 둘은 서로를 깊이 아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유린당한 영혼은 싸움의 뒤끝에 처량하게 배가 고프다. 그리고 주방에 돌아와 형 프리모가 만든 프리타타(fritata, 오믈렛)로 배를 채운다. 요리가 등장하는 영화지만, 마지막 요리는 뜻밖에도 소박하기 그지없는 프리타타다. 소금간만 맞으면 얼마든지 맛있는 요리, 어머니가 해주시는 전통의 요리가 프리타타다. 프리타타는 아무 기교가 필요없다. 그러나 끈기있게 불을 낮추고 프라이팬을 들여다봐야 망치지 않는다. 인생이든 요리든 본질은 프리타타처럼 소박한 것에 깃들어 있다고 감독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복구된 형제애와 재기의 희망이 프리타타 한 접시에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