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조명 시스템을 열 것이다.” “아니다, 그저 또 다른 조명기기의 추가일 뿐이다.”
얼마 전 한국영화조명감독협회에서 개발한 LED(Light Emitting Diode)조명 100W급을 둘러싼 충무로의 엇갈린 반응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예측에도 대부분의 촬영, 조명감독들은 그것의 장점만큼은 한목소리로 인정했다. LED조명이 얼마만큼 산업적인 영향력을 선보일 수 있을진 몰라도 기존의 것과는 다른 조명기기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에서도 최근 들어서야 상용화한 LED조명기기가 무엇이기에 현재 충무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일까.
<극락도 살인사건> 창고신에서 처음 사용
LED는 전압을 순방향으로 가하면서 빛을 발생시키는 원리의 차세대 조명이다. 발광 다이오드라고도 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지하철 안내표시화면이나 휴대폰을 열 때마다 나오는 빛, 자동차의 방향표시등 모두 LED조명이라 보면 된다. 이처럼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LED조명이 촬영현장의 조명기기로 쓰이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주생 조명감독이 <극락도 살인사건>(2007)의 창고신에서 LED조명 60W급 6개를 사용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0.3W짜리를 200개 이어붙여 만든 것으로 <씨네21> 크기와 비슷하다”는 이주생 감독의 조명기기는 최근 <김씨표류기> 등 여러 영화현장에서 부분적으로 활용되어왔다.
새로운 조명기기의 가장 큰 장점은 “HMI, 텅스텐, 키노플로와 같은 기존의 것에 비해 전력소비가 적다”는 것이다. 지난 2월 LED조명기기인 ‘그린 릿’(Green Lit)을 개발해 시장에 출시한 미국 게코(Gekko)사의 데이비드 암플렛 사장은 “40%가량의 전력을 절약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뿐만이 아니다. 다른 조명기기가 현장의 발전차에 전기코드를 연결하여 전력을 끌어들이는 데 반해 LED는 카메라처럼 본체에 배터리가 연결되어 있어서 세팅, 정리를 비롯해 촬영 중간마다 이동할 때 기동성이 뛰어나다. 이는 감독과 촬영감독이 현장에서 배우와 좀더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음을 의미한다. 촬영 도중 조명을 수정하는 시간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가 끊기는 상황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발열현상이 없고 자외선을 배출하지 않아 배우들의 신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자유롭게 세팅할 수 있다.
실제로 충무로의 촬영, 조명감독들은 이런 장점들을 현장, 특히 실내장면에서 십분 활용한다. <뚝방전설>의 주성림 촬영감독은 “크기가 작고 얇아서 차량 안과 같이 조명을 설치하기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쓰기도 좋고 다른 조명과 달리 열을 내지 않아서 배우들의 눈에 포인트를 줄 때 이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주생 조명감독은 “아직까진 LED조명의 광량이 롱숏을 담아낼 만큼 풍부하지 않아서 실내장면을 위주로 사용한다”면서 “현재 개발된 100W가 1kW, 10kW까지 상용화된다면 조명 시스템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1kW나 10kW급의 LED조명이 똑같은 광량의 HMI나 텅스텐을 대체하면서 전기와 발전차에 들어갈 석유를 절약할 수 있고, 현장의 제작 진행이 좀더 빨라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제작비 절감 효과와 함께 한국영화의 조명 시스템이 새롭게 정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조명마다의 고유 색감은 절대 대체 불가”
LED조명은 처음으로 키노플로 대용으로 쓰이다가 크기가 커질수록 기존의 조명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LED조명과 그것의 상용화로 인한 산업적인 영향력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도 많다. 충무로에서 조감독으로 활동 중인 L씨는 “LED조명이 상용화되어 기존의 큰 광량을 대체한다고 해도 각각의 조명마다 표현할 수 있는 색온도가 있다”며 “조명마다의 고유한 색감은 절대로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참고로 실내조명의 기본이라 불리는 텅스텐은 차갑고 백열등 느낌의 조명으로 필름의 질감과 가장 어울린다. 그리고 데이터가 많이 구축되어 있다. 키노플로는 차갑지만 형광등의 느낌을 낸다는 점에서 텅스텐과 다르다. HMI는 자연광 느낌을 낼 때 주로 사용하는 조명이다. 이처럼 각각의 조명은 고유한 색온도를 가지고 있어 저마다 내는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현장에서 맡은 역할 역시 다르다. “영화는 LED조명 하나로 만드는 게 아니다”라는 <친구> <형사> <김씨표류기>의 신경만 조명감독도 “광량이 풍부해도 아직까진 조명감독들이 원하는 색감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해 실사로 보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 LED는 실내장면에서 주로 사용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촬영전문잡지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 2월호의 ‘새 장비’ 코너에서는 “LED가 특히 스튜디오와 다큐멘터리에 적합한 조명”이라고 따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의견들로 분분한 가운데, 이번 조명에 대해 원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LED의 장점은 인정”하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의 정정훈 촬영감독은 “이것은 촬영, 조명감독들이 더 나은 화면의 질을 위한 선택지가 넓어진 것을 의미할 뿐이지 조명 시스템, 한국영화산업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섣부른 예측”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떤 장비든지 그것을 선택해야 하는 미학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 다른 촬영감독은 “10년 전 디지털카메라가 필름카메라를 대체한다던 예상은 깨지지 않았나. 그런 것처럼 아무리 경제적인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조명기기들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현재 영화를 준비하는 제작자나 투자자가 LED조명이 가진 경제적인 이점 때문에 선택하는 ‘어리석은’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LED조명기기 덕분에 한국영화의 촬영, 조명에 미학적인 선택의 폭이 넓어졌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1kW나 10kW급이 상용화될 경우 현재 조명 시스템과 한국영화산업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아직까지는 LED조명이 전체 조명을 대신할 것이라고 말할 때는 아닌 듯하다.
“프로듀서나 제작자에 매력적인 장비”
이주생 조명감독 한국영화조명협회 이사장
-LED조명을 직접 개조했다고 들었다. =2007년 <극락도 살인사건> 때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LED조명은 일상생활에서는 쉽게 볼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거의 안 쓰는 조명이었다. 우연히 0.3W짜리를 나란히 이어붙이면 광량이 커져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용산과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재료들을 사서 개조해봤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극락도 살인사건>의 창고장면에서 처음으로 쓰이게 됐다.
-현재 개발됐다는 100W급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달라. 그리고 미국, 일본에서의 LED조명 개발은 어떤 단계에 있나. =그 뒤 한국영화조명협회 차원에서 100W급을 시작으로 1kW, 10kW급을 개발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100W급 역시 60W급을 만들 때와 비슷한 원리다. 하지만 문제는 1kW, 10kW급이다. 이것들이 개발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 상용화하기 위해서 일본쪽 조명회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단계다. 그리고 미국, 일본 역시 이제 시작단계이고, 아직 상용화하지 못한 걸로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가. =가장 큰 변화는 전력을 절약할 수 있어 비용이 절약된다는 것이다. 발전차에 들어가는 적지 않은 석유비도 여기 포함된다. LED는 자체 배터리가 내장됐기 때문에 배터리 보급 업체와 같은 새로운 파트도 생겨날 것이다. 또한, 작고 가벼워 조명 세팅이나 정리할 때 시간이 적게 걸린다. 즉, 프로듀서나 제작자에게 매력적인 장비인 셈이다.
-LED조명기기로 인한 시스템 변화라는 주장은 성급하다는 의견들도 많은데. =물론 처음 단계라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나올 때 많은 사람들이 산업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지 않았나. 조명은 카메라에 비해 변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시간은 좀 걸리지만 차차 제작 현장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