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 미국판 <워낭소리> 2009년 최고 흥행기록!” 지난 2월, 아웃룩으로 날아온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잠시 생각했다. 제목만 보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고집불통 할아버지를 늙은 일소에 빗댄 것이고, 다시 말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늙은 소와 동급으로 놓은 것이다. 어딘가 그럴싸해 보였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세계 안에서 관록을 자랑하는 노장 아닌가. 또 한편으로는 피식 웃음이 났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기가 한국에서 소와 비교된다는 사실을 알까? 심지어 짠해지기도 했다. 그래, 이스트우드 할아버지도 언젠간 세상을 뜨시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워낭소리>가 다른 영화들과 엮일 줄은 생각도 못한 게 사실이다. 규모로서나 소재 면에서나 다른 아이템들과 엮일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워낭소리>의 관객이 증가할수록 또 다른 <워낭소리>를 자처하는 영화들의 보도자료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페넬로페 크루즈의 <엘레지>, 할리우드의 <워낭소리>?!” “전세계를 감동시킨 <더 레슬러> vs <워낭소리>!!” 제목만 봐서는 연관성을 찾기 힘들었다. “<워낭소리>를 잇는 가슴 뭉클한 감독 <24시티>!”나 “<워낭소리>에 이은 가족 관객의 선택 <문프린세스: 문에이커의 비밀>!” 같은 제목도 있다. 도대체 ‘제2의 <워낭소리>’는 어떻게 포장된 걸까.
<그랜 토리노>를 홍보하는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팀장은 <경향신문>에 난 한 칼럼이 힌트였다고 했다. 보도자료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 <경향신문> 2월17일자 ‘<워낭소리> 흥행의 비밀’에서 필자인 이홍우 PD는 “영화를 보면서 플랜더스의 개가 떠올랐다가 얼마 뒤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퇴역군인의 보물 1호 1972년산 그랜 토리노(Gran Torino)에 마흔살 소가 디졸브됩니다”라고 적었다. 또한 흥행의 형태가 비슷한 것도 이유였다고 한다. 작게 개봉했다가 스크린이 넓어져 결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는 신화를 두 작품이 공유하는 것이다.
<엘레지> 또한 흥행추이 면에서 공통점을 발견해 <워낭소리>에 빗댔다. <엘레지>를 홍보한 이노기획의 유재선 팀장은 “일반관객에게 ‘리미티드(Limited) 개봉’의 개념을 알리는 게 쉽지 않다”며 “<워낭소리>처럼 흥행했다고 알리는 게 관객에게는 훨씬 직관적으로 인식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더 레슬러>는 ‘감동코드’에 초점을 맞춘 경우다. 영화사 하늘의 김종욱 팀장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워낭소리>의 관객 가운데 10%라도 <더 레슬러>의 감동코드에 공감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그 시대의 가장 핫한 아이템을 엮어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은 분야를 막론하고 벌어지는 일이다. 방금 아웃룩에 <꽃보다 남자>를 검색해보니 다음과 같은 제목들이 등장했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판타지 열풍! <잉크하트: 어둠의 부활> & <꽃보다 남자>” “<라스트 프로포즈> & <꽃보다 남자>가 선택한 로맨틱 아일랜드 마카오!” “<보이 걸 씽> <하이스쿨> <꽃보다 남자> 스크린, 브라운관을 사로잡은 하이틴 로맨스 열풍!!” 등등. 그런가 하면 연관성이 있는 아이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과 엮는 방식도 있다. 영화 마케팅에서 노출이 센 영화들이 <색, 계>를 거론하고,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가 <매트릭스>나 <300>을 계승하려고 하는 것이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러니 <워낭소리> 같은 화제작이 있는 이상 연관성을 발견한다면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심한 억지만 부리지 않는다면야, 문제될 건 없다. 마케팅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마냥 고마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이런 현상도 화제작이 있고 흥행작이 있어야만 가능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