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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스타여, 내 뺨을 갈겨다오

<하녀>의 이은심과 <해피앤드>의 전도연 같은 ‘충격적 변신’이 그립다

<하녀>

1940년대 할리우드의 문근영은 디애나 더빈이었다. 그녀는 십대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달콤하고 감동적인 영화들에 주로 출연한 국민 여동생이었다. 당대의 가장 인기있는 스타였던 그녀가 로버트 시오드막이 연출한 <크리스마스 홀리데이>라는 영화에 출연했을 때 그녀를 보기 위해 극장 앞에 줄을 늘어섰던 관객은 달갑지 않은 놀라움을 맛보아야 했다. 우선 하층 계급의 술집 가수 역을 맡은 그녀의 외양 때문이었다. 게다가 팬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녀의 연기 스타일이었다. 소녀다운 순수함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무뚝뚝하고 무신경한 목소리로 손님들을 위해 노래하는 모습은 그녀의 팬들에게 충격적이었다. 평론가 제임스 하비는 영화 속 그녀의 캐릭터를 “침울하고 불쾌하고 거칠다”고 묘사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많은 관객이 숨을 몰아쉬었다고 한다. 예전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연기를 팬들은 증오했다.

스타는 여러 겹의 대중적인 얼굴들을 갖고 있다. 영화에서 연기하는 역할이 있고 팬들에게 보여주는 개인적인 생활이 있다. 실제 그들의 개인적 성격은 영화 속 역할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 대개 영화 속 역할은 스타의 대중적인 이미지와 겹쳐지지만, 위의 사례처럼 두 이미지가 충돌을 일으키면 그건 불안하면서도 흥미로운 경험일 수 있다.

한국의 영화 홍보사들은 스타가 맡은 새로운 역할이 기존의 스타 이미지로부터 “충격적으로 변신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손예진이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 침울한 TV프로듀서로 출연한 전지현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대개 이런 주장들은 심하게 과장된 경우가 많다. 영화 광고는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어하지만 정말 충격적인 변신으로 영화가 흥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늘날의 영화산업에서 충격적인 변신은 너무나도 드문 경우에 속한다. 정말 충격적인 변신은 5년에 한번 나타날까 말까다. 그러나 영화를 오락보다 예술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리고 영화역사에서 배우의 진정으로 충격적인 변신은 잊혀지지 않을 자취를 남기게 된다. <크리스마스 홀리데이>는 디애나 더빈이 보여준 최고의 연기였고 그녀 역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출연작이라고 한다. 한국영화에서 이런 경우를 찾자면 (그 영화가 첫 출연작이기는 했지만) <하녀>에서 이은심이 보여준 숨막히는 연기가 아닐까싶다. 몇년 전에는 <해피엔드>의 전도연과 <바람난 가족>에서의 문소리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대담한 성적 표현만이 아니라 그 인물들이 보여준, 가족에 대한 의무보다 자신의 즐거움을 앞세우는 태도 때문에.

한국영화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자리를 굳힌 주류 스타들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변신을 할 거라는 기대는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광고 모델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광고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매니저들은 스타가 연기할 수 있는 종류의 배역에 의식적, 무의식적인 한계를 정해놓는다(여성 스타라면 특히 더!). 스타의 변신을 내세워 광고를 할 때도 사실 그들은 자신이 머무르는 안전 지역의 한계점까지만 나아갈 뿐, 그것을 넘어서지 않는다.

모든 영화가 충격적이거나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런 폭풍이 영화산업에 유익할 수 있다. 특히나 지금처럼 한국 상업영화가 너무 뻔해지고 있다 싶을 때 뜨거운 논란은 영화계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2009년의 내 희망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눈부신 것이 아니라 빰을 한대 갈겨버리는 듯한 스타의 연기를 보는 것이다.

번역=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