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틸다 스윈튼이 60대 즈음의 벤자민과 키스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녀의 기분이 어땠을까 매우 궁금했다. 배우도 인간이라 키스장면을 찍으며 가슴 떨리지 않을 리 없을 텐데 그 상대가 늙은 브래드 피트라… 브래드 피트와 키스하는 느낌이었을까. 아님 노인과 키스하는 느낌이었을까.
늙은 브래드 피트는 어쩐지 먼 훗날 내가 요실금 팬티를 입는 것보다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의 나이 올해로 마흔일곱. 도대체 아저씨라고 불러 손색없는 나이임에도 그가 아저씨로 보이는 건 애들 업고 메고 안고 안젤리나 졸리에게 질질 끌려가는 파파라치 사진에서뿐이다. 그것도 직관적으로가 아니라 아, 그에게 저렇게 많은 아이가 있으니 아저씨가 맞지라는 지극히 설명적인 이해를 통해서다.
단지 잘생겨서는 아니다. 사실 잘생기고 섹시하기로 따지면 피트 저리 가라인 조지 클루니나 원조 꽃남이시며 ‘킹 오브 더 월드’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조차 이제는 완연한 아저씨 필이 줄줄 흐른다. 그런데 여전히 브래드 피트는 주름이 조금 늘어난 청년이다. 그래서 브래드 피트 승? 글쎄….
아저씨 필이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언젠가 왜 젊은 여자들이, 것도 나름 나 잘났다고 자부하는 젊은녀들이 부나방처럼 아저씨들과의 연애, 그니까 결국 상처투성이 파국을 불보듯 뻔한 불륜 연애에 부나방처럼 뛰어드는가를 이야기한 적 있다. “경제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안정돼 있지, 그러니까 말투나 행동이나 20대 땟국물 벗었지, 오래 살았으니 어디서 주워들은 거라도 많지, 싫어할 이유가 없잖아?” 이거 웬 ‘50자 내외로 기술하라’는 학력고사 사회과목 25번의 서술형 정답인가.
아저씨 필은 단순하게 비유하자면 기름기다. 하지만 어디 콜레스테롤이 꼭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만 있더냐. 기름종이 두장 흥건히 적시는 개기름이나 허리를 공고하게 둘러싼 비어벨트도 있지만 푹 팬 노안 얼굴 동안으로 개조해주는 지방도 있고 동맥경화 막아주는 콜레스테롤도 있는 거다. 아저씨 필이 과해지면 와인바 가서 부르고뉴만 찾는(아는 단어 이것뿐임) 졸부의 아이콘 되지만 적당한 아저씨 필은 여유와 품위를 후광으로 얹어준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때까지만 해도 테스토스테론 넘치는 사내애 같기만 하던 디카프리오가 <블러드 다이아몬드>나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아저씨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 더 섹시하다. 넘치는 성 호르몬보다는 그것의 능수능란한 조절이 더 관능적으로 보이는 건 당연하니까.
물론 브래드 피트가 철없는 수컷처럼 보이는 건 아니다(한국 배우도 아닌데 이렇게 조심스러운 건 역시 절대복종 초강력 외모 때문?). 하지만 근육과 핏줄 사이로 조금은 스며 있어도 괜찮을 기름기가 너무 안 느껴지는 건 보는 이를 좀 불편하게 한다. 만약 단독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조지 클루니는 특유의 농담으로(이거 기름기 맞다) 기절 직전의 나를 안정시켜주겠지만 브래드 피트는 냅둘 거 같다. 친절하게 119는 불러주겠지. 그래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저씨에게는 아저씨 필이!’라고 외치고 싶은 사람이다. 물론 지금 이거 보면서 코털 뽑는 거, 그거 아닌 건 아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