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인은 어디서든 금세 알아볼 수 있다는 토니 카로네
레알레 극장은 로마의 옛날 거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트라스테베레의 중심부에 위치한 극장이다. 하루 네번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앞 거리는 추위에 옷깃을 여미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관광객만이 잠시 스쳐지나갈 뿐 한산했다. 특히 관람객이 뜸한 화요일 밤 10시30분, 이미 3주 동안 극장에 걸린 조반니 베로네시 감독의 <이탈리아안스>를 보러온 관객은 4명밖에 없었다. 항상 이 정도냐는 질문에 매표원은 “영화가 걸린 지 꽤 오래된데다 사람들은 새로 개봉한 이탈리아 코미디영화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답한다. 4명의 관객 중 은행원으로 일한다는 토니 카로네(58)를 잠시 멈춰 세웠다.
-관객이 너무 없다. =아무래도 경기가 안 좋으니까. 1월에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돈도 부족하고 건강도 안 좋고…. 그래서 다 연기하고 영화를 보러왔다.
-왜 <이탈리아안스>를 선택했나. =특별히 이 영화가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친구들이 같이 가자고 해서 왔다.
-영화는 어땠나. =토토 그리고 알도 파브리지오의 영화가 생각났다. 그들은 이탈리아인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연기로 유명했던 배우들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이탈리아인들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또 그걸 정당화할 수 있는 어떤 인간적인 이유가 있다면 규칙을 지키지 않는 행동이 미덕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든 인간적인 행위를 했다고 해서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회에 혼란이 오지 싶다.
-근데 친구가 가자고 영화를 다 보러가나. =아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 카를로 베르도네는 아주 신뢰하는 배우다. 내가 우디 앨런이나 더스틴 호프먼이 나오는 영화를 눈감고도 볼 수 있는 것과 동일한 신뢰다.
-카를로 베르도네는 조반니 베로네시 감독의 전편에 출연했다. =그랬다. 베르도네는 이탈리아인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진솔하고 코믹한 배우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전 영화에 비해 그다지 새롭지도 않았고….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넘어 욕심을 부리다보면 영화가 산으로 가지 않나.
-왜 <이탈리아안스>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이탈리아의 풍속에 대해 또 그 현상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이탈리아인은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메이드 인 이탈리아’임이 금세 드러나잖나. (웃음) 아니면 어떻게 불러야 할까….
-이 영화는 이탈리아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탈리아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뭐가 다른가. =기본적으로 이탈리아인은 ‘나는 다르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탈리아인을 보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뭐 다를 게 하나도 없네’라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주인공은 페라리를 두바이에 파는 불법판매상이면서도 자신이 목숨을 걸고 번 돈을 오랜 친구 딸의 병을 고치는 데 쓰라고 준다. 그리고 불법판매상 주인공을 잡으러 온 경찰은 오히려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준다. 도둑이면서 남을 돕고, 경찰이면서 도둑을 도망치게 해준다. 함께하기에는 불편한 이 두 요소가 동거하는 모습이야말로 무척 이탈리아인답다고 하겠다.
-이탈리아영화를 자주 보는 편인가. =꼭 이탈리아영화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별로 영화를 보지 않았다. 작가영화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창적이면서 대중적인 영화를 찾기가 힘들다.
-당신이 영화를 볼 때 가장 기대하는 건 뭔가. =다른 예술과는 달리 영화는 한 시대의 새로운 현상에 섬세하게 반응한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문화를 갖는다. 영화에서 쓰이는 언어도 달라진다. 예를 들면 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랍어 ‘샬라’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시대가 어둡고 힘드니까 이런 말을 쓰는 게 아닐까? 영화는 새로운 문화적 현상들을 포옹하며, 그런 현상들을 보여주는 재미가 있다.
-그럼 이탈리아영화에 바라는 것이 있나. =이탈리아영화는 결코 다시는 전성기 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사람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요즘 영화는 중량감이 부족해서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도 적다.
-이탈리아영화 중에서 한국 관객에게 개인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영화가 있나.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한국영화는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었다. 동양 냄새가 풀풀 풍기는 영화다. 이탈리아영화는 뭐가 있을까.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고모라>나 <일 디보>가 정보 면에서 본다면 훌륭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 관객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 다큐멘터리도 보고 싶은데 기회가 전혀 없어 아쉽다. 한국 다큐멘터리 좀 보여주세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