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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리] 라멘 국물의 발견
박찬일 2009-02-18

다큐멘터리가 아니고서야 요리를 다룬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사람 얘기의 조연에 그치는 게 영화의 숙명이다. <음식남녀>나 <바베트의 만찬>에 매우 사실적이고 정교한 요리가 등장하지만, 그건 확장된 소품일 뿐이다. 이타미 주조 감독의 <담뽀뽀>(1986)는 유쾌한 정서로 시종일관하는 요리영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담뽀뽀>의 이야기는 매우 익숙한 내러티브 구조를 갖고 있다. 맛없는 라면집 주인 ‘담뽀뽀’(민들레라는 뜻으로 주인공의 이름)가 귀인들의 도움을 받아 각고의 노력 끝에 라면의 달인으로 우뚝 선다는 내용. 감독의 독특한 취향을 반영한 듯, 서부영화 <셰인>처럼 홀연히 나타난 귀인들은 담뽀뽀의 수련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복장조차 셰인처럼 전형적인 카우보이라니.

<담뽀뽀>는 굳이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즐겨볼 만한 구석이 있다. 과장된 음악과 재치있는 편집,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별난 캐릭터의 조·단역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지만 나는 <담뽀뽀>가 ‘레시피’가 있는 아마도 유일한 영화여서 각별한 애정을 느꼈다. 진짜 일본식 라멘 레시피가 생생하게 공개된다. 인스턴트 라면이 고작이던 80년대 중반, 라멘에 돼지와 야채 삶은 물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자못 충격이었다. <담뽀뽀>를 둘러싼 일화가 적지 않은데, 이 영화가 발표된 80년대 중반, 한국은 일본 정통 라멘의 불모지였다. 일본식 라멘이 번지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 이 영화는 라멘 마니아라면 꼭 봐야 할 영화로 통하기 시작했다. 소수의 추종자들에게 열광적 경배를 받는 것이 컬트의 진정한 의미라면, <담뽀뽀>야말로 그 반열에 오를 영화이기도 하다. 그 시절, 누가 돼지기름이 둥둥 뜬 ‘수프’가 진정한 라멘 국물이라고 생각했겠는가 말이다.

고백건대,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직접 라멘 수프, 즉 국물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문자 그대로 구글에 레시피가 둥둥 떠다니는 판에 영화를 보고 요리를 재현한다는 게 별나기도 하지만, 실제 꽤 맛깔스런 국물이 탄생했다. 그런 의미에서 <담뽀뽀>는 리얼리즘 영화다.

영화는 곳곳에 감독의 유머가 배어 있는데, 웃느라 한번, 라멘이 먹고 싶어 또 한번 배를 움켜쥐어야 하는 영화다. 사실, 홍콩에서 건너온 지 얼마 안된 국물 국수를 마치 일본인의 요리 영혼을 담아낸 것처럼 묘사하는 대목이 경이롭기도 하다. 이타미 감독의 사람을 다루는 별난 취향이 시종일관 번쩍이는 대목도 눈여겨볼 것. <쉘 위 댄스>의 야쿠쇼 고지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어 흥미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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