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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 외모의 함정을 거꾸로 뛰어넘은…
문석 2009-02-17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오른 브래드 피트

브래드 피트는 미국, 아니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수많은 여배우와의 열애,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와의 결합, 떠들썩한 출산과 입양까지 전세계 매스컴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한다. 대중의 주목도라는 척도만으로 따진다면 그는 현대의 최고 스타임에 틀림이 없다. 그만큼 오랫동안 수많은 파파라치와 옐로 저널리즘의 타깃이 돼온 스타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언젠가부터 그가 배우라는 사실은, 그것도 괜찮은 배우라는 사실은 점점 잊혀져왔다. 그런 점에서 신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브래드 피트의 전환점이 될지 모른다.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처음 올랐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연기도 곧잘 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웠다. 이제 20년을 넘기고 있는 브래드 피트의 연기인생을 되돌아본다.

“말도 안돼.” 1월22일 제81회 아카데미상 후보가 발표된 뒤 미국의 블로그들에는 브래드 피트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사실을 비판하는 글들이 간간이 오르고 있다. 그들의 의견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브래드 피트가 배우라고? 그는 스타일 뿐이지 배우는 아니다. <체>의 베니치오 델 토로 같은 배우가 빠졌는데 허세 가득한 스타인 그가 후보에 오른다는 게 말이 되나?”

배우보다 스타의 광채가 너무 눈부신…

현재 미국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그의 존재감을 따져보면 이런 반발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들의 주장처럼 브래드 피트는 배우라기보다 스타다. 그의 아내(법적 결혼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인 안젤리나 졸리, 여섯명의 아이들, 그리고 전처 제니퍼 애니스톤과 관련된 다채로운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과 전세계의 연예 저널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24시간 그의 주변을 맴도는 파파라치들의 사진과 동영상 또한 인터넷과 종이매체, TV를 도배한다. 따지고 보면 브래드 피트는 오랫동안 미국 연예 저널리즘을 먹여살린 장본인이다. 80년대 말 로빈 기븐스를 시작으로 현재의 안젤리나 졸리에 이르는 그의 여성 편력은 대중의 값싼 관심을 붙들어 왔다. 때문에 스타와 배우를 ‘싸구려’와 ‘고결함’이라는 엄격한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얄팍하고 저렴한 존재일 뿐이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냉정하게 보자면 브래드 피트는 그리 나쁜 배우가 아니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그는 비교적 괜찮은 영화에 출연해왔고, 연기 또한 대체로 호평을 받았다. 상복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12 몽키즈>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같은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으며,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로는 베니스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도 수상했다. 게다가 그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려놓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피트는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물론 그동안 브래드 피트가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건 그가 대중과 평론가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 데서 기인하기도 하겠지만, 스타로서 그의 광채가 너무 눈부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연기는 아름다운 외모 뒤로 숨겨졌고, 잡다한 스캔들 밑으로 가라앉았으며, 그가 함께한 감독과 배우들의 명성에 가로막혔다. 때로는 피트의 과도한 의욕이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번 아카데미 후보 지명은 평가절하된 그의 연기력을 뒤늦게나마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다.

과거 어떤 영화에서보다 성숙해진 느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그의 배우인생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피트의 다양한 영화적 페르소나를 보여주는 쇼케이스”라는 <LA타임스>의 평처럼 가장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준 영화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육체의 나이를 거꾸로 먹는 특이한 사람이다. 태어날 때 80대였던 그의 몸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젊어진다. 피트는 벤자민 버튼의 생애 중 70대에서부터 20대까지를 연기하면서 배우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냈다. 그의 늙어빠진 노인 얼굴과 젊은이의 얼굴이 ‘버추얼 헤드’ 또는 ‘버추얼 마스크’라 불리는 첨단 CG기술과 특수분장 등의 도움으로 완성됐다는 사실을 두고 누군가는 ‘CG의 명연기’라고 비아냥거리지만, 그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피트의 실제 연기에 기반해서 만들어졌다. 그의 미세한 얼굴 근육 움직임이 없었다면 10대의 영혼과 80대의 육신 사이, 또는 20대의 몸과 60대의 정신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불일치와 아이러니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리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에서 브래드 피트가 보여준 연기는 과거 어떤 영화에서보다 성숙한 느낌을 준다. 그건 이 영화의 주제 자체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날수록 어려지는 남자와 늙어가는 여성 사이의 사랑이란 보통의 사랑보다 비극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6살 차이인 벤자민 버튼과 데이지(케이트 블란쳇)가 ‘같이 늙어가는’ 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동년배로 어울릴 수 있는 시간도 찰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브래드 피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란 결국 상실로 이어진다. 그건 비극이다. 사랑이 클수록 상실감도 깊어진다.” 그러나 그의 연기가 성숙한 게 사실이라면 무엇보다 그건 인간 브래드 피트가 성숙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내가 추구하는 바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정리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젠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예전만큼 많이 더듬거리지 않아도 되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지 않아도 된다.”

대학 졸업 포기하고 무조건 LA로 가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라는 바다를 발견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1963년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나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의 보수적인 침례교 공동체에서 자라난 브래드 피트는 머리가 커지면서 이곳을 갑갑하게 느꼈다. 록을 ‘악마의 음악’이라 부를 정도로 엄격한 규율을 내세우는 이곳의 분위기는 한창 반항기를 불태울 10대에겐 굴레에 다름 아니었다. 그때 그는 탈출구를 발견했다. 그것은 고등학생 시절 본 <토요일밤의 열기>였다. “그 영화가 준 충격은 춤이나 의상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거기서 다른 문화를 만났다. 다른 악센트를 가진 사람들과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봤다.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다른 문화를 접하고 싶다는 욕망을 나의 임무로 생각하게 됐다.” 당시의 충격은 저널리즘을 전공했던 미주리 대학을 졸업할 무렵인 1985년 비로소 다시 파동을 일으켰다. “졸업이 다가오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친구들은 직장을 구하고 있었지만, 나는 어딘가에 정착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대신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LA로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학위 취득을 2주 남긴 상태에서 졸업을 포기하고 무작정 LA로 향한 그는 수많은 배우 지망생처럼 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운전, 배달, 담배 판매는 물론이고 치킨집을 홍보하기 위해 닭 인형옷을 입은 채 선셋대로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로이 런던에게 연기강습을 받았다. 엑스트라, 단역을 전전하던 그가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87년 TV드라마 <달라스>에 5주 동안 출연하면서다. 그는 1989년 “심야에 케이블TV에서도 틀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나쁜 틴에이지 호러영화” <폭력교실>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줄리엣 루이스와 인연을 만들어준 TV영화 <투 영 투 다이> 등에 출연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델마와 루이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그가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1991년 <델마와 루이스>다. 그가 연기한 J. D는 애초 윌리엄 볼드윈이 맡기로 돼 있었으나 그가 <분노의 역류>에 출연하는 바람에 공석이 됐고 그는 오디션에서 400명의 지원자를 제치고 역할을 따냈다. 당시 그와 마지막까지 경합했던 후보는 조지 클루니였다. “심사하는 사람이 우리 둘을 부르더니 윗옷을 벗어보라고 하더라. 그리곤 곧바로 피트를 뽑았지.” 클루니의 이야기가 농담만은 아니었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피트는 델마(지나 데이비스)를 유혹하면서 드러낸 빨래판 같은 복근과 날렵한 엉덩이, 그리고 ‘페미니즘을 25년은 후퇴시킬 수 있을 법한’ 살인미소로 단번에 스타에 등극했다. 그 이후로 그는 모든 여성의 판타지 속 연인이 됐고, 이후 <흐르는 강물처럼>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가을의 전설> 등에서 조각 같은 얼굴과 잘 다듬어진 육체를 드러내며 스타덤을 쌓아갔다.

잘생긴 콤플렉스로 추한 캐릭터에 매료?

그를 배우로, 스타로 이끈 첫 번째 원동력은 뭐니뭐니해도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퍼드의 ‘건강한 미국 남성’ 계보를 잇는 뛰어난 외모였다. 하지만 오로지 외모에만 의존했다면 그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멋지게 포장해줄 대형 액션영화나 로맨틱코미디 대신 <칼리포니아>의 지저분한 연쇄살인마나 <12 몽키즈>의 사팔뜨기 정신병자, <파이트 클럽>의 불한당 테러리스트, <스내치>의 얼뜨기 아일랜드인처럼 특이한 캐릭터를 선택했다. 개인적 이유도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잘생긴 외모가 자신에게 특별한 이득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나는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고민을 이야기하자 엄마는 내가 좀더 커다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건 죄책감으로 나타난 것 같다.” 핀처의 표현에 따르면 “잘생긴 데 대한 콤플렉스”는 브래드 피트가 추한 캐릭터에 매력을 가진 이유 중 하나다. 그렇다고 그의 잘난 외모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이 보기엔 가당치도 않은 그의 ‘콤플렉스’와 더불어 영화에 대한 열정 또한 브래드 피트를 배우로 성장시킨 힘이었다. “세상에는 순수한 오락을 위한 영화가 있지만 나는 별로 흥미가 없다. 내가 영화계에 온 건 영화가 다른 문화와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하게 하고, 내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를 인터뷰한 영화평론가 피터 비스킨드는 “그는 최고의 스타이면서도 놀랍게 어둡고 전복적인 취향을 갖고 있다. 토드 솔론즈의 팬이며, 하모니 코린의 <검모>를 사랑하고, 알렉산더 페인이나 웨스 앤더슨도 좋아한다”고 전한다.

<바벨>

<번 애프터 리딩>

외모의 함정을 뛰어넘고 자신의 열정을 꾸준히 따라온 덕분일까. 그의 영화 선택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진중해지고 있다. 좀더 개성 넘치고 예술지향적이며 작은 규모의 영화와 명장급 감독의 프로젝트에 몰두하는 것이다. 최근 몇년 사이 그는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바벨>과 실존주의적인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을 선택했다. 코미디이긴 하지만 <번 애프터 리딩>으로 코언 형제를 만났고, 올해 개봉할 <트리 오브 라이프>와 <인글로리어스 바스타즈>를 통해 테렌스 맬릭과 쿠엔틴 타란티노와 호흡을 맞췄다. 곧이어 <Z의 잃어버린 도시>에서는 제임스 그레이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런 새로운 시도가 혹시 ‘가진 자’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나중에 내 아이들이 봤을 때 자랑스러운 영화를 하고 싶다”는 다소 보수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 글쎄. 브래드 피트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으면 그의 선택이 대배우로 인정받기 위한 헛된 욕망이나 점잖아지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건 아닌 듯하다. “어린 시절 나는 여자를 사로잡고, 모든 해결책을 갖고 있으며,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10초 안에 폭탄을 해체할 수 있는 남자를 연기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젠 오류를 범하는 캐릭터가 좋다. 숨을 쉴 수 있고 인간의 시간이 존재하는 영화가 좋다.”

영화 찍고 함께 살고

이 남자의 사생활

브래드 피트만큼 사생활이 낱낱이 알려진 배우는 흔치 않다.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나 따라붙는 수백명의 파파라치와 연예뉴스 기자들 덕분에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보다 그(와 가족)의 근황을 더 잘 알게 됐다. 가장 유명한 건 그의 여성편력이다. 그는 1989년 TV드라마 <헤드 오브 클래스>를 찍을 때 마이크 타이슨의 전 부인 로빈 기븐스를 시작으로 <폭력교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질 슐로엔, <투 영 투 다이> 당시 여주인공 줄리엣 루이스와 차례로 사귀었다.

3년 동안 사귄 루이스와 헤어진 뒤 피트는 1994년 <쎄븐> 촬영장에서 만난 기네스 팰트로와 결혼 직전까지 가지만 1997년 돌연 이별을 선언한다. 1998년에는 양쪽 에이전트의 주선으로 제니퍼 애니스톤을 만났고, 2000년 두 사람은 결혼한다. 할리우드 커플로서는 매우 드물게 둘의 사랑은 7년 동안이나 지속됐지만, 2005년 1월 별거를 선언한 뒤 이혼절차를 밟게 된다. 이미 당시 연예 매체들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촬영장에서 처음 만난 안젤리나 졸리와 열애설을 제기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은 곧바로 동거에 들어간다. 최근에는 피트가 애니스톤과 부부인 상태에서 졸리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주장이 제기돼 옐로 저널리즘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재밌는 점은 애니스톤을 제외하면 그가 사귄 여성들이 모두 함께 작업했던 배우라는 사실이다.

졸리와의 삶이 안정되면서 황색언론의 관심은 아이들로 넘어갔는데, 두 사람 사이에는 입양아 3명을 포함해 모두 6명의 아이가 있다. 특히 2006년 졸리가 샤일로를 낳을 당시 “예수 이후 가장 기다려져온 탄생”으로 불리면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졸리-피트가 샤일로를 안고 있는 사진은 미국의 <피플>과 영국의 <헬로!>에 각각 410만달러와 350만달러에 팔렸으며, 2008년 졸리가 낳은 쌍둥이 녹스 레온과 비비안 마르셀린의 사진은 다시 <피플>과 <헬로!>에 팔렸는데 이들이 지불한 금액은 1400만달러였다. 이들 부부가 사진을 팔아 얻은 수익금은 졸리-피트 재단을 포함한 여러 자선단체에 기부됐다. 브래드 피트는 허리케인 카타리나로 파괴된 뉴올리언스에 친환경 주택을 건설하기 위한 운동인 ‘Make It Right’ 재단을 설립했고, 소외된 지역의 난민, 기아, 교육을 위해 다양한 기부 활동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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