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애플 소동> Pineapple Express
2008년 감독 데이비드 고든 그린 상영시간 112분 화면포맷 2.40: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5.1 영어 자막 한글, 영어 출시사 소니픽쳐스 홈엔터테인먼트 화질 ★★★☆ 음질 ★★★★ 부록 ★★★★
‘애파토우 갱’으로 불리는 ‘애파토우 사단’의 영화에서 감독은 주인이 아니다. 피고용자의 위치에 선 감독은 제작자의 기획과 작가의 각본에 맞춰 웃기는 영화를 뽑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런 애파토우 사단이 <파인애플 소동>의 연출자로 데이비드 고든 그린을 선택한 건 뜻밖이다. 미국 독립영화의 희망이자 진지한 예술영화에 능한 그린에게 마약이 소재인 액션영화라니! 자칫 충돌과 붕괴가 일어날 법한 상황이었으나, (그린의 말대로) 제작자, 배우, 작가, 스탭들이 서로 믿고 성의를 다해 협력한 결과는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졌다.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는 미국 안팎에서 1억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거뒀고, 무엇보다 2008년에 등장한 가장 재미있는 영화 중 한편으로 기록됐다.
법률서류를 전달하는 게 직업인 데일은 애파토우 사단 영화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골치 아픈 일은 사양하고, 풋내기 여고생과 연애질이며, 대마초 냄새에 찌든 인생을 사는 그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는다. 대마초 딜러인 사울로부터 희귀한 마약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구한 날, 길에서 대마초를 맛보던 데일은 살인사건을 목격한다. 문제는 살인을 저지른 악당 두목이 그 마약의 공급원이라는 것. 데일과 사울, 그리고 중간공급자인 레드는 삼류 악당들의 살해위협에 맞서 황당무계한 행동을 저지르며 다닌다.
다시 말하건대 그린의 흔적을 애써 찾을 필요는 없다. 함께하던 스탭들이 다시 참여해 우아한 외형을 담았고, (촬영감독팀 오르의 특색인) 당겨찍기가 몇번 쓰였고, (그린 영화의 단골 소재인) 살인과 죽음과 소외된 인물이 나오긴 한다. 그러나 그린은 초라한 자의 상처와 불안을 제거한 자리에 얼치기 영웅의 웃음을 배치해놓았다. <파인애플 소동>은 스릴러와 버디액션영화를 명쾌하게 뒤튼 코미디영화다. 도입부에 1930년대의 군사실험을 삽입해 ‘마약이 엄연히 불법임’을 재확인하는 척하지만, 마약중독자의 멍청한 행동을 메인메뉴로 삼은 영화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생각을 집적거리는 데 더 관심을 둔다.
애파토우는 마약중독자에 관한 영화를 제리 브룩하이머식으로 찍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는데, 사실 <파인애플 소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훌쩍 뛰어넘는 영악한 작품이다.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의 기상천외한 각본은 상당히 잔혹하고 간혹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설정 아래로 미국의 모든 것을 풍자한다. 그들은 얼간이 마약중독자, 멍청한 중산층, 타락한 공권력, 싹수 노란 십대, 아시아(특히 한국)계 갱단, 말랑한 동성애자, 영화상의 폭력은 물론 살인까지 농담거리로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의 성과가 그린의 것인지, 애파토우와 로건의 것인지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애파토우 사단이 지금껏 제작한 영화 중 최고임은 분명해 보인다. 겉보기에 엉성하고 과장된 <파인애플 소동>은 1980년대의 <블루스 브라더스>와 1990년대의 <덤 앤 더머>처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코미디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쉬운 게 있다면 한국에서 개봉하지 못했다는 점인데, 대신 선보인 뛰어난 사양의 DVD가 서운함을 달랜다.
DVD는 극장판과 5분30초 정도 긴 확장판을 함께 수록했으며, 음성해설을 위해 제작진과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외 메이킹필름(21분), 3가지의 확장장면과 다른 결말(10분), NG장면(5분), 부상 리포트(5분) 등의 부록은 부담없이 볼 만한 것들이다. 제작진의 말마따나 정신을 살짝 놓고 보면 더 큰 재미를 찾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