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코미디의 폭력성과 장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관객에게 여전히 승인받을 만한 요소들과 장르적 특징들,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조폭코미디, 그리고 조폭코미디의 거의 동시적인 침체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계속되어야 할 질문이다.

조폭코미디 장르의 짧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는, <신라의 달밤> <달마야 놀자> <조폭마누라> <두사부일체>가 연이어 개봉했던 2001년일 것이다. 이들 중 <조폭마누라>가 5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신라의 달밤>은 400만명, <두사부일체>와 <달마야 놀자>의 관객이 350만명을 넘었으니, 2001년은 조폭코미디영화의 전성기였던 셈이다. 물론 최고의 코미디영화 중 하나인 <넘버.3>나 <주유소 습격사건>처럼 조폭, 또는 조폭과 유사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코미디영화가 그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폭코미디’가 하나의 장르로 범주화될 수 있었던 데는 이들 영화의 성공이 결정적이었다. 이들 작품에 6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던 <가문의 영광>을 추가한다면, 그것으로 조폭코미디의 계보는 거의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폭이 고딩이 돼도 한번만 돼야지

조폭코미디 장르는 너무도 빠르게 흥망성쇠의 사이클을 완성한 조로증이거나 혹은 너무 빨리 일을 끝내버려 머쓱한 조루증이거나 둘 중 하나처럼 느껴진다. 왜 이렇게 빨리 조폭코미디영화의 인기가 시들해졌는지를 생각해보면서, 내가 봤던 조폭영화를 하나둘씩 정리해보기로 했다. 얼핏 많은 작품들이 등장했던 것 같은데, 실제의 조폭코미디영화는 <달마야 놀자> <조폭마누라>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의 언저리를 반복해서 맴돌았을 뿐이었다. 민족의 명절이 찾아오면 이들 영화는 후속편을 선물로 들고 극장으로 귀향했고, 그렇게 조폭코미디 장르는 완성되었다. 물론 <라이터를 켜라> <보스상륙작전> <4발가락> <목포는 항구다> <거룩한 계보> 등의 작품도 있긴 하지만, 이들 작품은 기억에서 사라졌거나 조폭코미디로서가 아니라 특정 감독의 영화로만 가끔 언급될 뿐이다.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

조폭코미디는 기본적으로 전도된 상황 속에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전략을 구사하곤 했다. 실제로 이들 영화는 조폭을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위치시키곤 했는데, 절에 숨어든 조폭이 스님 앞에서 쩔쩔 매다 이내 불심에 감복되는 <달마야 놀자>나 학교로 간 조폭이 학교 폭력에 시달리게 되는 <두사부일체>의 제1원칙은 조폭에 어울리지 않는 공간 속에서 조폭의 역할을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역할을 전도시킴으로써 웃음을 발생시키는 전략은 여성이 조폭의 형님이 된 <조폭마누라>나 조폭 같은 선생과 엘리트 같은 깡패를 등장시킨 <신라의 달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론이지만, 그러한 전도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충무로는 이러한 성공을 가장 안일한 방식으로 지속시키고자 했다. <라이터를 켜라>와 같은 새로운 조폭코미디를 발굴하는 대신(이 영화는 최고의 조폭코미디영화다), 흥행에 성공한 조폭코미디를 동어 반복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전도된 상황에서 비롯된 웃음은 익숙함 앞에서 힘을 잃게 마련이다. 조폭이 고등학생이 될 때 벌어지는 상황은 한번은 통용될 수 있지만, 두세번은 아니다. 물론 그 속편들이 흥행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는 장르의 생명력을 단축시킨 대가로 얻어진 결과였다.

조폭코미디 장르의 인기가 지금은 시들해졌다 하더라도, 그 부활의 가능성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상업적으로 보자면’, 조폭코미디는 관객의 호응을 얻을 만한 여러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주요 길목에 스펙터클한 화면을 배치할 수 있는 액션영화의 장점과 (전도된 역할이 주는 웃음과 함께) 조폭 특유의 외양을 극단적으로 과장하여 희화화한 코믹함과 독특한 캐릭터들(1차원적 사고를 지닌 단순무식한 조폭이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이 주는 웃음은 조폭코미디영화가 관객의 말초신경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궁극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조폭코미디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조폭이 행사하는 폭력으로부터 조폭의 흔적을 지우는 방식이다. 조폭코미디영화는 폭력을 ‘좋은 폭력’과 ‘나쁜 폭력’으로 구분한 뒤, 조폭이 계몽주의적 가치관을 각성하는 과정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곤 했다. 즉, 조폭코미디 장르의 제2원칙은 계몽적 가치 속에 폭력을 정당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달마야 놀자>는 불심을 깨달은 조폭이 사찰을 인수하려는 나쁜 조폭을 응징하는 과정에서, <두사부일체>는 부당하게 해고된 선생을 지키는 과정에서, <가문의 영광>은 금지옥엽 같은 고명딸의 결혼식을 사수하는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폭력이 행사된다.

나는 왜 <조폭마누라>를 보며 웃지 못했나

이처럼 조폭코미디 장르의 조폭들은 조직의 사리사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관객에게 승인받을 수 있는’ 대의명분을 걸고 폭력을 행사한다. 물론 <가문의 위기>와 <가문의 부활>은 조직을 지키기 위한 폭력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는 그들이 범죄 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린 이후의 일이다. 이러한 대의명분이 필요한 것은, 그것을 목적으로 폭력이 행사됐을 때만이 조폭의 흔적이 지워진 폭력으로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이는 조폭의 폭력이 아니라, 사회적 정의를 위한 폭력인 셈이다. 조폭이 어떤 윤리적 각성을 하는 상황을 반복하고 이를 통해 계몽적 가치를 피력하려는 이들 영화의 강박적 태도는 조폭에 의존하면서도 또한 조폭의 흔적을 지워야 하는 장르적 딜레마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서사적 불완전성은 조폭코미디가 자신에게 쏟아질 비판에 대한 방어막을 작품 속에 반영한 흔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면에서 보자면, 조폭코미디영화는 상업적으로 꽤 똘똘한 측면이 있었다.

고백하자면 난 웃음이 많은 놈이지만, 조폭코미디영화를 보며 많이 웃지 ‘못했다’. 특히 <조폭마누라>는 주변 관객에게 왕따를 당한다고 느낄 만큼 웃지 못했다. 그럼에도 <조폭마누라>는 보란 듯이 흥행에 성공했다. 이러한 흥행에 힘입어, 이들 영화가 흥행 장르로 자리잡게 된 요인을 사회적 차원에서 찾으려 하거나 그 전복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는 비평적 시도가 이어지기도 했다(물론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IMF 구제금융 이후 사회적 혼란기에 조폭 소재의 영화가 광범위하게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대공황 시절의 혼란을 투영하며 하나의 장르로 정착된 할리우드 갱스터영화나 아나키스트 코미디영화의 형성 과정과 비교되기도 했고, <조폭마누라>는 성역할의 전복이 영화의 흥행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분석되기도 했다. 또한 사학 비리를 고발하고, 학력에 대한 집착을 조롱하며, 허풍떠는 조폭의 모습 속에 한국사회의 허위의식을 까발리는 조폭코미디의 풍자성에 주목한 비평도 있었다. 이들 비평이 조폭코미디 장르의 성공 요인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해도, 분명한 사실은 조폭코미디 없이 2000년대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그것은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었다는 점이다.

흥행코드가 저급함의 증거 되는 아이러니

사족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조폭코미디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반응은 평론가 집단이 아닌, 이들 영화를 즐겼던 대중에게서 비롯되었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반대 운동이나 극장요금 인상의 필요성 등 영화계 현안이 발생했을 때, 조폭코미디는 한국영화의 ‘저급함’에 대한 증거로 거론되곤 한다. 2000년대 최고의 흥행 코드가 한국영화의 저급함의 증거가 되는 아이러니. 그렇다면 그 저급함의 대상은 조폭코미디를 양산한 한국영화계인가, 이를 즐겼던 관객인가. 만약 조폭코미디를 저급하다고 불러야 한다면, 이러한 장르의 성립을 가능하게 한 대중 역시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영화 장르는 관객의 승인(또는 호응) 없이는 결코 완성되지 못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