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공드리의 최고작은 아직까지 <이터널 선샤인>이다. 그리고 그 공로는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에게 돌아가야 한다. 카우프만이 참여하지 않았던 공드리의 후속작 <수면의 과학>을 보았을 때 그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이 재주꾼의 영화들은 그야말로 비주얼적 묘기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온갖 신기한 잡동사니들로 채워진 비좁은 평행우주에서 라이브 (독립) 애니메이션을 찍는 데 만족하는 게 아닌가? <수면의 과학>의 남자주인공 스테판은 미셸 공드리 그 자체였다. 스테판은 헝겊 봉제인형을 타고 달리고 주먹대장이 되어 미운 상사에게 펀치를 먹이는 꿈을 꾸다가, "꿈에서 너무 열심히 움직였더니 피곤해서 출근 못하겠어요"라고 진지하게 보고할 정도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캐릭터였다. 다시 말해, 두 남자 모두 기본적으로 ‘소년’이다. 자신만의 매혹으로 채워진 세계를 촘촘하게 완성하고자 야심을 품은 소년 말이다. 하지만 미셸 공드리가 또 한번 각본까지 도맡은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이르면, 비로소 만화경 같은 세계에 대한 강박적 집착에서 자유로워진 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근본적인 욕구를 수줍게 고백한다.
제리와 마이크 커플이 대충 리메이크하는 ’sweded’ 영화로는 <고스트 버스터즈> <러시 아워2>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로보캅> <캐리> <라이언 킹> 등이 줄줄이 등장한다(아쉽게도 <백 투 더 퓨처>는 판권이 해결되지 않아 결국 못 썼다고). 그러니까 한국인이라면 <영웅본색>을 떠올리게 될 그 기준으로, 미국인들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80년대와 90년대의 대표작인 ‘그 때 그 비디오’가 줄줄이 등장한다. 제리와 마이크는 이 엉성하고 조악한 작품을 자랑스러워한다. “넌 최고의 감독, 난 최고의 배우. 우리가 뉴웨이브야!” 그건 삶이 쓰레기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도시 전체가 쓰레기 늪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이크와 제리는, 혹은 미셸 공드리는 그 속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쓰레기를 추억과 판타지의 프리즘을 거쳐 아름답게 재창조하고자 한다.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클라이맥스는 지역 주민들이 전부 출연한 영화를 다 같이 관람하는 장면이다. “이건 마음과 영혼이 담긴 비디오에요.” 21세기 버전의 <시네마 천국>이랄까. 결과적으로 미셸 공드리는 더 이상 혼자만의 판타지가 아니라, ‘비디오 대여점 시절’을 함께 한 이들이 공유하는 판타지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점이야말로, 지극히 감상적이며 소박한 동화를 이토록 사랑스럽게 보이게 하는 가장 큰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