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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레드원카메라는 필름을 삼킬까
김성훈 2009-01-06

화질 비슷하고 비용과 완성도에서 한발씩 전진, 제작 시스템 변화의 핵으로 떠올라

레드원 4K카메라로 촬영 중인 <국가대표> 촬영현장

충무로에 괴물이 나타났다. 작고 날렵한 몸집의 이 괴물은 같은 과인 HD카메라를 먹어치우는 것도 모자라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힘도 센 필름카메라까지 단숨에 삼킬 기세다. 영화인들도 이 괴물이 궁금해 여기저기서 모여들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괴물을 만져보려고 나서지 않는다. ‘처음’이라 두렵다는 게 그 이유다. 그리고 누가 먼저 시도할 건지 눈치작전도 치열하다. 도대체 이것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충무로가 이처럼 술렁일까. 이 괴물은 바로 ‘레드원(Red One)카메라’다.

<국가대표>가 처음으로 촬영 시작

레드원은 HD카메라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HD카메라와는 다르다. 상업영화로선 국내 처음으로 레드원카메라 촬영을 시도하고 있는 <국가대표>(감독 김용화)의 박현철 촬영감독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영진위 보고서(<디지털카메라의 진화, 레드원 4K카메라>)에 따르면, 레드원과 기존 HD카메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필름과 대등한 화질’이다. 그는 ‘기존의 HD카메라가 2K크기로 촬영한다면, 레드원카메라는 4K방식’이라고 말했다(K는 영상, 색 정보를 저장하는 단위다. 단위가 클수록 화질이 좋다). 필름 역시 4K방식인 점을 감안하면, 레드원카메라는 디지털이면서도 필름과 유사한 화질을 구현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필름카메라의 깊은 심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기존 HD카메라의 약점을 보완한 것도 레드원의 강점이다. 기존의 HD카메라에는 필름카메라에 사용되는 렌즈를 장착할 수 없었던 것과 달리, 레드원은 렌즈 호환이 가능하도록 제작됐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레드원은 자체 저장장치(기존의 HD카메라가 영상을 테이프에 사용했다면 레드원은 파일 형태로 저장한다)가 가벼워 현장에서의 기동성이 뛰어나다. 이것은 필름카메라는 물론이고, 바이퍼카메라(디지털카메라의 한 종류로 박찬욱 감독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들 때 사용한 카메라다)와 차별되는 점이다. 지난해 한 기업광고를 통해 국내 최초로 레드원을 사용한 주성림 촬영감독(<뚝방전설> 촬영, <박쥐> B카메라)은 “바이퍼는 외장하드와 연결하는 선이 너무 두꺼운데다가 저장장치가 무거워 현장에서 기동성이 떨어졌는데, 레드원은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기동성은 물론이고 핸드헬드(카메라를 들고 찍는) 촬영이나 스테디캠(카메라를 몸에 부착하여 찍는)이 용이하다”고 말했다. “현상할 때까지 그림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었던 필름카메라와 달리, 찍은 당시의 그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변형 가능성들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도 레드원의 장점이다. 정리하자면, 레드원카메라는 현재 필름카메라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HD카메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레드원 4K카메라 테스트숏

HD카메라(XDCAM EX-1) 테스트 숏

하지만 무엇보다도 충무로가 레드원을 주목하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영화인들은 레드원카메라가 현장에 도입되면 제작 시스템과 제작비 운영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가대표>의 정주균 프로듀서는 “일단 필름 구입비를 비롯한 카메라 대여, 현상, 텔레시네(필름으로 촬영한 영상을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과정), 사운드 작업비용 등에서 2억~3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필름에 비해 노출범위가 넓은 점도 제작비 절감에 한몫한다. 광량이 부족한 초저녁까지 많은 분량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진행속도가 빨라지고 자연히 전체 회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후반작업업체 C-47스튜디오의 이진 편집기사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현상에서 텔레시네로 이어지는 필름과 관련된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후반작업에 드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을 꼽는다. “레드원의 후반작업은 현재 어려운 영화산업에 적합한 시스템이다. 앞으로는 이처럼 후반작업에서도 비용을 절감한 형태가 상용화될 것이다.”

데이터 부족과 필름업체 저항이 변수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는데도 레드원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촬영감독들은 데이터가 부족한 점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다. HD카메라의 데이터란 일종의 촬영매뉴얼을 뜻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노출수치가 얼마일 때 색감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통용되는 레드원카메라의 데이터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의 빛에 맞춰진 데이터다. 당연히 한국의 상황에 맞는 데이터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데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다른 이유로 레드원카메라의 정착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필름업체들이다. 국내 거대 필름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초부터 상황을 계속 주시 중”이라며 “올해부터 필름카메라를 쓰는 현장이 예년에 비해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엄살처럼 들리겠지만 (레드원카메라로의) 시스템 변화는 필름 판매업체부터 관련 장비업체, 필름 후반업체까지 필름산업의 위기가 걸려 있다”고 걱정했다. 필름 판매업체인 태창 엠피필름의 주영대 이사는 “레드원이 아무리 필름과 화질이 비슷하다고 해도 필름만의 질감이 있다. 이 미묘한 차이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현장의 프로듀서, 촬영감독을 대상으로 한 (필름 관련) 세미나를 꾸준히 열고, 테스트 촬영시 촬영기자재를 지원해주는 등” 필름산업도 레드원카메라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가운데,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국가대표>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레드원카메라로 촬영하기 시작한데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체>가 레드원으로 촬영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카메라에 대한 영화인들의 호기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레드원카메라의 한국 수입사인 디지로그시스템의 임희완 대표는 “지난해 봄에는 국내에 3대뿐이었는데, 현재는 주문량이 계속 늘고 있다. 최근 환율 때문에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많은 영화인들이 꾸준히 주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과연 이 작은 괴물이 한국영화산업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2억∼3억원 절약… 결과물에도 만족”

레드원 4K카메라로 촬영 중인 <국가대표> 정주균 프로듀서

-레드원카메라가 필름과 비교해서 제작비 운영 측면에서 어떻게 다른가. =아무래도 필름과 관련된 비용이 절약된다. 현재 레드원카메라 3대로 촬영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필름 구입, 현상, 텔레시네, 사운드 작업비용 등 2억~3억원 정도를 절약하고 있다. 물론 디지털로 작업한다고 해서 후반작업이 다 공짜는 아니다. 디지털에 따른 D.I.(디지털 색보정), 키네코(디지털로 찍은 영상을 극장에 상영하기 위해 필름프린트로 변환하는 과정) 작업은 따로 해줘야 하니까. 하지만 필름으로 찍을 때보다 확실히 비용은 절감된다. 특히 <국가대표>는 컷 수가 많아 3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레드원카메라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충무로에서 최초로 사용하는 만큼 부담감이 크겠다. 지금 다들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 눈치보고 있는데. =처음 사용하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다. 주위에서 많이 기대하고 물어보기도 한다. 박현철 촬영감독이 촬영 전에 많은 테스트들을 거치면서 데이터에 대한 노하우와 감을 잡아갈 수 있었다. 이제는 익숙하다. 그리고 결과물들을 보니까 만족한다. 이 정도 퀄리티면 충분한 것 같다.

-단순히 비용문제 외에 현장진행에 있어서도 다를 텐데.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함으로써 진행비용도 절약된다. 필요에 따라 2대 이상을 쓸 수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촬영시간도 짧아지고 회차도 줄일 수 있다.

-프로듀서로서 매력적이겠다. =종전의 HD디지털은 필름과 퀄리티의 차이가 컸다. 그래서 상업영화에서는 높은 수준의 퀄리티를 보장해야 하는 측면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카메라는 필름과 거의 유사할 정도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