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리즈 테론 의상 지수 ★★★ 유럽 풍광 멋있음 지수 ★★★ 대서사시 목록에 남을 지수 ★
<잉글리쉬 페이션트>나 <진주만>이 떠오르는 걸 보니 실로 오랜만의 대서사 러브 스토리다. 격정의 시절을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 그들을 둘러싼 사랑과 운명, 전쟁, 우정, 죽음…. 이 모든 카테고리들이 뒤섞인 이야기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혹과 감흥을 전달하게 마련이다. <러브 인 클라우즈>는 정확히 이 지점을 목표로 달려온 영화다.
학교 교수와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는 거침없는 여성 길다(샤를리즈 테론)는 어느 날 모범생 가이(스튜어트 타운센드)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지만 곧 헤어진다. 몇년 뒤 파리에서 사진작가가 된 길다의 초청으로 둘의 사랑은 다시 시작되고, 그곳에서 길다와 동거 중인 스페인 망명자 미아(페넬로페 크루즈)를 만나 셋은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 그러나 현실적인 길다와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가이, 종군 간호사가 되려는 미아는 각자 갈 길이 다르다. 2차대전의 화염에 휩싸인 유럽, 레지스탕스의 첩보원이 되어 파리를 되찾은 가이는 길다를 찾지만 길다는 나치 장교의 연인으로 변절한 채 살아가고 있다.
세 인물의 캐릭터가 트라이앵글처럼 구성돼 있지만 <러브 인 클라우즈>의 중심인물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길다라는 여성이다. 한번 보면 빠져들 것 같은 미모, 시대를 앞서가는 모험심. 부유한 집안을 경멸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그녀는 영화의 배경이 된 1930년대 여성들의 이상향이다. 그러나 도드라진 길다의 캐릭터로 인해 삼각형의 균형은 깨져버렸다. 길다의 남자친구도 애인도 아닌 가이의 포지션과 동성애를 암시하지만 변변한 캐릭터를 드러내지 못한 미아의 존재는 이 영화를 휘청거리게 한다. 헐거워진 플로 앞에 시대극의 동인이 될 현실의 격정과 운명의 소용돌이는 커다란 영향을 행사하지 못한다.
결국 이 영화에 남은 것은 실제 커플인 길다 역의 샤를리즈 테론과 가이 역의 스튜어트 타운센드의 정사신이라는 화제, 그리고 무려 5천만달러라는 엄청난 제작비다. 전자의 경우, 앞서가는 여성상을 상징화하려 알몸으로 타이를 걸친 샤를리즈 테론이 다소 안쓰럽기까지 하며, 후자의 경우 고풍스러운 유럽 저택이나 소품, 의상들에 눈길이 가지만, 알다시피 플롯이 튼튼하지 못하다면 이런 호기심은 금세 잊혀지게 마련이다.
tip/각각 크리스찬 디올과 랄프 로렌의 모델인 샤를리즈 테론과 페넬로페 크루즈. 의상감독 마리오 다비뇽의 지휘 아래 두 여배우는 인형 옷을 갈아입듯 1930년대의 복고 의상을 소화해낸다. 코코 샤넬 등 당대를 풍미한 디자이너 작품을 부활시킨 의상은 그 수만도 수백벌에 이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