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많은 영화들이 극장 개봉을 했지만, 극장에 걸리지 못한 영화들도 부지기수다. 이들 미개봉 영화 중 올해 국내와 해외에서 DVD로 출시된 영화 10편을 소개한다. 2007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부터 애덤 샌들러의 배꼽 빠질 코미디까지 연말연시 당신을 즐겁게 할 리스트다.
소설 <백야>와 발리우드가 만나면
<사와리야> Saawariya 2007년/감독 산제이 릴라 반살리/138분/출시 소니픽쳐스
노래와 춤에 열광하거나 어색함에 치를 떨거나. 인도영화의 고유한 특징과 마주한 대다수 한국인의 반응은 그럴 것이다. 수입과 개봉은 물론 홈비디오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은 한국에서 인도영화가 차지하는 위치를 잘 말해준다. 일전에 <라간>을 선보였던 제작사에서 <사와리야>를 출시함으로써 몇년 만에 인도영화의 DVD 한편이 추가됐다. 고작 DVD 한장에 반가움과 신기함이 교차하는 경우다. <사와리야>는 <데브다스>(2002)를 연출해 인도 안팎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산제이 릴라 반살리의 신작이다.
사라트찬드라 차테르지의 고전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리메이크된 <데브다스>와 달리 <사와리야>는 특이하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 <백야>를 원작으로 선택했다. 언뜻 북구의 밤과 인도영화의 궁합을 상상하기 힘든데, <사와리야>는 그것이 기우였음을 증명한다. 일찍이 루키노 비스콘티가 각색한 <백야>(1957)가 공인된 걸작임이 분명하지만, <사와리야>의 환상적인 분위기 또한 원작의 몽환적인 성격과 몽상가의 이야기와 썩 어울리는 게 사실이다.
<사와리야>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옛 연인이 빚는 사랑 이야기를 노래와 춤으로 해석한다. 시리도록 푸른 색감을 기조로 한 세트는 이국적이고 비현실적인 미술로 채워져 있으며, 배우들은 꿈과 사랑과 약속을 마음 깊은 곳에서 내뿜는다. 인도의 전통음악과 팝과 현대음악을 적절하게 섞은 노래는 중독성이 너무 강해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다. 영상과 소리의 재현이 A급인 DVD는 음악의 제작과 프리미어 시사 관련 영상(20분, 22분)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화장실 코미디
<조한> You Don't Mess With The Zohan 2008년/감독 데니스 듀간/109분/출시 소니픽쳐스
애덤 샌들러와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로 빅히트를 친 주드 애파토우 감독이 만났다. <조한>은 애덤 샌들러가 극중에서 분한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 최고 요원의 이름이다. 조한은 인간 능력을 가볍게 뛰어넘는 슈퍼히어로에 가깝다. 격투의 달인이며 날아오는 총알을 가볍게 피할 정도로 재빠르다. 심지어 총알을 잡아내기도 하며, 엄청난 정력을 자랑하는 섹스머신이다. 이런 겉모습과 달리 그의 진짜 꿈은 커트 기술을 배워 최고의 미용사가 되는 것.
<조한>은 대단히 유쾌한 코미디영화다. 조한이 섹스머신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코미디 성격은 정해졌다. 마치 벤 스틸러의 음란 코믹영화처럼 저질 대사를 남발하며, 툭하면 허리를 휙휙 돌리며 강렬한 디스크 춤을 선보인다. 그리고 흡사 아이큐 두 자리 수를 가진 관객을 배려한 것처럼 이야기는 헐렁하다. 바로 이 점이 <조한>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강점이다. 진지하게 영화를 보며 고상을 떨기보다 술을 마시며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즐기기에 그만인 영화! <조한>은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액션 코믹물로 포문을 연 <조한>은 동네 미용실을 배경으로 할머니 손님들에게 음란 서비스를 행하는 질펀한 섹스코미디를 지나, 훈훈한 로맨틱코미디로 마무리 한다. 애덤 샌들러의 다시 없을 음란, 저질 만점의 연기도 압권이지만 미국 퍼스트레이디와 그 자녀들을(부시와 클린튼, 심지어 오바마까지) 두고 벌이는 음탕한 성적 농담들이 저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수위가 높아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화장실 코미디 스타일을 고수하기 때문에 취향을 많이 탈 수 있으니 참고하길.
2007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천국의 가장자리> Auf der anderen Seite(The Edge of Heaven) 2007년/감독 파티 아킨/116분/ 출시 대경DVD
2004년 <미치고 싶을 때>가 베를린영화제를 포함한 수많은 영화제를 휩쓸면서 파티 아킨은 독일영화를 이끌 주자로 나섰다. 이후 3년, 다큐멘터리와 단편 작업에 이어 연출한 <천국의 가장자리>가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자 아킨은 예술영화를 주도할 차세대 작가의 위치에 오른다. <천국의 가장자리>의 복잡하면서도 농밀한 이야기와 성숙한 연출 그리고 대중적인 화법은 전작을 확실히 뛰어넘는 것이다.
터키계 독일인인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의 정체성에 뿌리를 둔 이야기를 계속한다. 여섯 사람- 육체의 만족을 얻으려고 매춘부를 집에 들인 터키계 노인,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못마땅한 지식인 아들, 딸의 교육 때문에 독일에서 매춘부로 일하는 터키의 중년 여자, 반정부활동을 하다 독일로 피신한 그녀의 딸, 의지할 곳 없는 터키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독일 여자, 딸의 자유분방한 삶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엇갈린 운명에 관한 이야기인 <천국의 가장자리>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테르의 죽음, 로테의 죽음, 천국의 가장자리’라는 소제목대로 두 사람의 죽음이 벌어진 뒤에야 남은 자들은 천국의 가장자리로 겨우 진입한다.
아킨은 인터뷰에서 사랑이 용서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천국의 가장자리>는 사랑하기 위해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화다. 세대간, 민족간, 국가간, 계급간의 날이 쉬 무뎌질 리 없겠지만, 이야기와 연기의 힘이 적잖은 호응을 얻어낸다. DVD 부록인 메이킹필름(57분)이 마음에 든다. 감독의 아내인 모니크 아킨이 영화의 시발점, 주제, 캐스팅, 리허설, 로케이션, 영화제 현장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털이 거뭇거뭇한 래드클리프
<디셈버 보이즈> December Boys 2007년/로드 하디/105분/출시 워너브러더스
올 겨울에 ‘해리 포터’를 만나지 못해 마음 아팠던 팬들에게 <디셈버 보이즈>는 뜻밖의 선물이다.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그간 해리 포터의 캐릭터로만 인식됐는데, 첫 키스와 첫 경험 앞에서 수줍어하는 소년의 역할은 그를 연기자로 바라보게 한다. 마냥 귀엽던 꼬마에서 털이 거뭇거뭇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래드클리프를 보는 것 자체가 팬들에겐 기쁨이다. 마이클 누난의 소설을 각색한 <디셈버 보이즈>는 초로의 남자가 1970년대에 보낸 소년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오지에 있는 고아원의 원생 가운데 생월이 12월인 네 소년은 ‘디셈버 보이즈’로서 운명을 공유하는 사이다. 생일을 맞아 휴가 여행을 떠난 넷은 외로운 어른들이 모여 사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도착한다.
가족과 살기를 갈망하는 네 소년이 소소한 사연을 간직한 어른들과 만나 벌어지는 사건은 의외로 심심하다(원작을 읽지 않아 그게 각색 탓인지 연출 탓인지 알 수 없다). 호주의 영화자본이 적극 투입된 <디셈버 보이즈>의 진짜 즐거움은 호주의 거대한 황야와 바다와 해안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서 비롯된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풍광이 소년들의 순수한 마음처럼 빛나는 영화이며, DVD는 고운 영상으로 영화에 답한다. 유일한 부록인 삭제장면 모음(8분)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고 넘어간 몇몇 부분을 보완한다.
괴짜 작가 어거스틴 버로스의 어린 시절
<러닝 위드 씨저스> Running with Scissors 2006년/라이언 머피/122분/출시 소니픽쳐스
작가 어거스틴 버로스에게도 십대는 혼란과 고통의 시간이었다. 남들과 달랐다면 그는 힘들게 통과한 시기를 글로 써 스스로를 치유했다는 점이다. <러닝 위드 씨저스>는 베스트셀러가 된 성장소설(<가위 들고 달리기>로 번역, 소개됐다)을 각색한 영화다. 1972년, 어린 버로스는 유명작가의 꿈에 빠진 허영심 많은 엄마와 가족에게 무관심한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다. 1979년, 부모의 불화 끝에 어머니의 정신과 의사가 14살 소년을 입양하기에 이른다. 스트레스로 억압받은 인생을 분노로 표출하라는 의사의 주문에 어머니의 질환은 갈수록 심해지고, ‘아담스 패밀리’에 버금가는 의사의 가족 구성원은 십대 소년의 삶을 뒤흔들어놓는다. 소년은 자기 삶이 왜 우울한지, 어디에서 잘못된 건지 궁금하다.
TV시리즈 <닙턱>의 각본·제작·연출로 유명한 라이언 머피의 <러닝 위드 씨저스>는 <로얄 테넌바움>과 <아이 하트 허커비>의 가운데에 자리할 영화다. 괴짜 인물들의 엉뚱한 행동을 에피소드식으로 전개한 영화에선 묘한 매력이 흐른다. 명배우들의 앙상블, 197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명곡들부터 ‘크로노스 쿼텟’의 재즈연주에 이르는 선곡도 훌륭하다. 수준급의 영상과 소리를 자랑하는 DVD는 캐릭터, 원작자, 미술에 관한 세 가지의 특별영상(19분)을 부록으로 담았다.
오쿠다 히데오 소설이 원작
<인 더 풀> インザプ-ル 2004년/감독 미키 사토시/100분/출시 태원엔터테인먼트
<인 더 풀>은 요즘 가장 사랑받는 일본 작가 중 한명인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처음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동명의 원작 소설은 나오키상 수상작 <공중그네>의 전편에 해당하는 것으로 엽기적인 의사와 간호사 커플인 이라부와 마유미가 여러 환자들과 벌이는 기이한 행각이 내용의 주를 이룬다. 영화는 소설의 다양한 사례를 세건으로 줄였고, 인물의 구성을 상당 부분 바꾸었으며, 배우들의 익살맞은 연기가 원작의 맛깔스러운 대사를 대신한다.
발기가 지속되는 바람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든 젊은 직장인, 정신건강을 원해 수영을 시작했다가 오히려 수영 중독에 걸린 남자, 전열기구로 인한 사고와 화재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바깥 출입에 지장을 받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라부는 이들의 사례를 전혀 의사답지 않은 자세로 임하거나 뚱딴지 같은 행위를 요구하는데, 미키 사토시 감독은 의사의 이름을 빌려 관객에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라는 주문을 건다. <인 더 풀>은 등장인물들처럼 문제를 안고 살던 관객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태도와 소신껏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마음자세를 구하길 원한다.
DVD 본편은 깔끔한 영상과 소리를 갖추었으며, 부록으로 캐릭터 분석과 감독의 연출 스타일 등을 다룬 메이킹필름(38분), 리허설 과정(18분)을 수록했다. 본편의 음성해설에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건 아쉽다.
만화 <군계>의 격투를 영상으로
<군계> 軍鷄(Shamo) 2007년/감독 정 바오루이/105분/출시 Tai Seng Video
여문락 주연의 <군계>는 하시모토 이조, 다나카 아키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원작은 격투 만화 팬들의 필독서로 손꼽히는 걸작으로, 주인공 나루시마 료는 소년 시절 부모를 살해하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곳에서 다른 죄수들에게 폭행과 강간을 당하면서 자기 보호를 위해 가라테를 배우며 무도인의 길을 걷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영화는 각색 작업을 거쳤지만 원작을 크게 훼손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이뤄졌고, 핵심 요소인 격투의 비중은 변화가 없다. 그러나 원작 팬의 입장에서 볼 때 아쉬움이 있다. 나루시마는 사악하지만 자신의 결정과 의지를 믿고 실천하는 카리스마를 지녔다. 여문락이 연기한 나루시마는 강렬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압축한 탓에 인물을 깊이있게 다루지 못했다. 또한 나루시마의 주변 인물들과 얽히고설키는 사건 전개도 매끄럽지가 않다.
하지만 원작 만화의 백미인 격투에 관해서는 훌륭하게 영상으로 표현했다. 만화에서의 무도인이 발산하는 무게감은 재현하지 못했지만, 기교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아쉬울 것이 없다. <권계>의 격투 연출은 기존 홍콩 액션영화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보고 즐기기 위한 액션이 아닌 사실적인 대결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서 실제 K-1 MAX의 챔피언 마사토를 기용해 나루시마와의 마지막 승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또한 오랫동안 홍콩 권격영화의 팬이었다면 영화 중반 멋진 실력을 발휘하는 양소룡의 건재함이 반가울 것이다.
프로레슬링의 박력을 원하신다면
<컨뎀드> The Condemned 2007년/감독 스콧 와이퍼/100분/출시 소니픽처스
지난해 공개되어 액션영화 팬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컨뎀드>는 미국 프로레슬링 단체 WWE가 설립한 WWE 필름스에서 제작한 영화로, ‘스톤 콜드’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레슬러 스티브 오스틴을 기용한 박력 만점의 액션영화다. <컨뎀드>의 이야기는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러닝맨>을 떠올리게 한다.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들이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 동원되고,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죄수들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다. 이 과정은 고스란히 인터넷으로 중계된다. 자극을 좇는 시청자에게 최고의 오락 프로그램이다.
프로레슬링의 명승부를 보는 것처럼 <컨뎀드>는 화끈한 액션이 눈요기다. <러닝맨> <배틀 로얄>을 대충 섞어놓은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담고 있는 액션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80년대 극장가를 장악했던 마초 액션을 재현하듯이 <컨뎀드>의 격투는 힘과 힘의 대결이며, 레슬러로서 갈고닦은 기술까지 영화에서 멋지게 재현한다. <컨뎀드>는 보고 나면 남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B급 액션 애호가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맛있는 영화다.
이번엔 여자 옹박이다
<초콜렛> Chocolate 2008년/감독 프라차야 핀카엡/92분/출시 Magnolia Home Entertainment
<옹박>으로 새로운 무술 액션의 세계를 연 프라차야 핀카엡 감독은 넘치는 아류작들과 차별화를 위함인지 여배우를 기용해 또 다른 액션영화를 내놓았다. <초콜렛>이란 특이한 제목의 영화다. <초콜렛>의 여주인공 센은 자폐증을 앓고 있지만, 엄청난 무술 잠재 능력이 있다. 대개는 피나는 수련 과정을 거치고 고수가 되지만, 그녀는 단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무술의 테크닉을 자기 것으로 흡수한다.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무술의 천재이다. 재미있는 것은 트레이닝 과정에 등장하는 것이 이소룡과 토니 자의 영화들이다. 그녀는 열심히 무술영화를 보고 머릿속으로 기술들을 흡수하며 어느덧 고수가 된다.
<초콜렛>의 무술 액션들은 <옹박>의 그것과 동일하다. 남녀 성별만 바뀌고 파워가 조금 모자랄 뿐 대단히 높은 기술을 구사한다. 토니 자처럼 점프하며 무릎과 팔꿈치로 실제 가격하는 리얼 액션의 계보를 잇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움찔할 정도로 실감나는 격투를 소화한 여주인공 지쟈 야닌은 가냘프고 앳된 외모의 소유자로 거친 액션을 소화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스턴트까지 소화하는 그녀의 진면목은 영화가 끝난 뒤 이어지는 NG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수입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개봉을 못하고 있어 아쉽다.
유적지에 피어난 죽음의 식물
<루인스> The Ruins 2008년/감독 카터 스미스/91분/출시 CJ엔터테인먼트
스콧 B. 스미스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호주·미국 합작영화 <루인스>는 2008년에 나온 공포영화 베스트 목록에서 빠지면 섭섭할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멕시코의 휴양지. 해변과 수영장을 오가는 놀이에 싫증이 난 미국인 관광객 4명과 독일 청년 1명이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고대 마야문명의 유적지를 찾아 나서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유적지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총과 활로 감시를 하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갈팡질팡하던 다섯명의 멤버들은 유적지 안으로 몰리면서 하나둘씩 끔찍한 일을 당한다.
<루인스>는 잔혹한 살육 행위를 앞세운 최근 공포영화들의 트렌드와는 살짝 거리를 둔다. 돌로 다리뼈를 부수고 절단하는 끔찍한 고어장면도 있지만, <루인스>의 매력은 매 순간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탁월한 분위기 묘사로 심리 공포를 추구하는 데 있다. 유적지에서 여행객을 위협하는 것은 식물이다. 강한 전염성을 가진 이 식물과 접촉을 하면 얼마 뒤 숙주가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식인식물이 나오지만 시각적인 화려함은 전무하다. 그러나 <루인스>의 공포 효과는 대단히 효과적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로 관객을 긴장과 공포로 몰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