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독제2008에서 처음 공개되는 독립영화는 모두 5편이다. 국내초청 섹션에 초대된 김동명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바툼바>와 단편경쟁부문의 <주방> <오수 3시, 봄날> <피쉬> <자가당착>. 이 다섯편은 가사·노동·노인·정치 등 서로 다른 소재를 통해 한국사회의 어둠을 들여다본다. 우선 CJ의 인디영화 제작지원작인 김동명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바툼바>는 외계인의 한국사회 수난기다. 외계인 바툼바는 대체에너지인 금을 찾기 위해 지구에 온다. 금을 사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 취직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바툼바는 불법 노동자, 불법 체류자, 노숙자의 신세를 피하지 못한다. 외계인의 지구 방문이란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제3자의 시선에서 보이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적절한 거리감으로 풀어놓는다. 화면 전환이나 배우들의 연기, 이야기의 진행이 아마추어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새로운 화법 자체는 시도의 의미가 있다.
<이상한 나라의 바툼바>가 외계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16분여의 단편영화 <주방>은 가정주부가 주인공이다. 어느 영화에서든 대부분 주변 인물이고 존재감이 없는 캐릭터인 가정주부는 <주방>에서 스릴러의 화자가 된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모든 시간을 소비하는 여자는 정해진 예산으로 최고의 맛을 뽑아내기 위해 매일같이 마트를 궁리하며 살핀다. 그리고 어느 날. 싼값에 한우를 한근 구입한다. 하지만 이 고기를 먹은 가족들은 모두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고 여자는 그 고기가 혹시 수입산이 아니었을까 의심한다. <주방>은 가사일에 매여 사는 주부의 일상과 그 일상에 침입한 신자유주의의 질서를 쇠고기 문제로 풀어낸다. 특히 여자가 냉장고 앞에서 출구없는 자신의 일상을 울부짖는 장면은 서툴지만 인상적이다.
매번 실험적인 영상을 선보여온 김선·김곡 형제 감독은 <자가당착>에서 기묘한 느낌의 그림을 연출해낸다. 마네킹 모습을 한 여인이 방에 틀어박혀 옷을 만드는 모습과 TV 속 프로레슬링 경기 장면, 정치 뉴스 화면이 반복적으로 겹치는 이 영화는 폐쇄된 공간에서, 매우 개인적이고 뒤틀린 방식으로 2007년 한국의 정치상황을 풍자한다.
촛불시위 참가자 영상 중 9편 추려
올해 서독제가 새롭게 준비한 특별전 중 하나는 ‘촛불영상-재밌거나, 열받거나’다. 이 섹션은 올 여름 서울광장 주변을 가득 메웠던 촛불시위 참가자들을 담은 영상 모음으로, 영화제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는 취지로 공모를 통해 총 9편의 작품을 추렸다. 기록의 의미로 촛불시위에 접근한 이나라, 김교학, 김진영 감독의 <재밌거나 혹은 열받거나>부터 휴대폰 카메라, 개인 미디어의 문제를 다룬 김철민 감독의 <시대의 증언자 렌즈 촛불을 보다>, 1987년 6월항쟁과 2008년 6월의 촛불시위 모습을 교차로 편집하며 민주화의 역사를 이야기한 이미지 팩토리의 <1987061029980610>까지 다양한 의미의 텍스트가 촛불시위란 공통 소재를 통해 보여진다.
이 밖에도 서독제는 해외초청전으로 ‘감각의 독립, SEX-표현의 자유를 누려라’를 준비했다. 검열, 심의 제도에 대한 재고의 취지로 마련된 이 섹션에선 마이클 윈터보텀의 <나인 송즈>, 이미 국내에서 등급문제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숏버스>, 장 클로드 브리소의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들2>,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의 <서비스>, 김경묵 감독의 <얼굴없는 것들> 등이 상영되며, 성과 정치 문제를 극단적으로 다룬 브루스 라브루스 감독의 <산딸기 제국>이 국내에선 처음으로 상영된다. 촛불영상, 감각의 독립 섹션에 대해선 세미나가 각각 12월16일과 15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영화제 시간표 및 자세한 일정은 영화제 홈페이지(www.siff.org)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