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퀸 원작 능가 지수 ★★★ 손발 오그라드는 닭살 지수 ★★★★★ 크리스틴 스튜어트 만세 지수 ★★★★
<트와일라잇>의 이야기는 주인공 벨라의 입으로 정리된다. “확실한 게 세 가지 있다. 첫째, 에드워드는 뱀파이어다. 둘째, 그는 나의 피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리고 셋째, 나는 그와 저항할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오래전 헤어진 아빠와 살기 위해 사시사철 비내리는 워싱턴주의 소도시로 이주한다. 학교생활에 의외로 잘 적응해가던 그녀는 석회암처럼 하얀 얼굴에 석류처럼 붉은 입술을 가진 급우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알고 보니 그는 108년 동안 17살 고등학생으로 살아온 뱀파이어다. 다행히도 에드워드의 뱀파이어 가족들은 인간의 피를 향한 욕망을 동물의 피로 누를 줄 아는 뱀파이어 세계의 채식주의자들. 에드워드 역시 벨라의 피에 대한 유혹을 이성으로 억누르고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새로운 뱀파이어 무리들이 심심풀이 간식용으로 벨라를 지목하자 위기가 닥쳐온다.
스테파니 메이어의 원작은 뱀파이어 소설이라기보다는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할리퀸 로맨스다. 원작에서 ‘에드워드의 믿을 수 없이 잘생긴 얼굴’을 찬양하는 문장들만으로도 사전을 하나 출간할 수 있을 정도다(<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한 1700개 신조어로 만들어진 <해리 포터 영영한 사전>을 다들 기억하시는가). 할리퀸 로맨스 따위 생리에 맞지 않는다는 독자들? 책을 덮는 순간 꿀단지를 통째로 들어마신 기분이 됐을 거다. 영화도 원작의 달콤함으로부터 크게 멀지는 않다. 대신 <13>과 <독타운의 제왕들>의 캐서린 하드윅 감독은 원작의 들뜬 톤을 살짝 가라앉히는 것으로 꽤나 절묘한 영화적 줄타기를 벌인다. 특히 인공조명을 자제하고 찍어낸 워싱턴주의 축축한 풍광과 전형적인 할리퀸 로맨스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크리스틴 스튜어트(<패닉룸> <언더토우>)의 예민한 연기는 이야기의 당도를 낮추고 영화적인 매력을 돋우는 공신이다.
잘 빠진 장르영화로 능란하게 각색됐음에도 여전히 몇몇 관객(특히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극장에 들어온 남성 관객)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낯간지러움에 치를 떨지도 모른다. 하지만 뭘 더 바라시나. 이건 결국 햇빛을 받으면 얼굴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훈남 뱀파이어를 사랑하는 10대 소녀의 판타지다.
Tip/ 영화는 후속편 <뉴 문>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3편 <이클립스>와 마지막 편 <브레이킹 던>도 모두 영화화될 예정다. 시리즈의 맹렬한 팬을 여자친구로 둔 남자들이라면 앞으로 몇년을 더 감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