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게 침체되어 있을 땐 남이 무슨 말을 하든 별 도움이 안된다. 한국영화산업은 2년째 침체기에 처했고 세계의 경제 상황 역시 암울하다. 어느 누구도 단박에 회색 구름들을 걷어내버리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신문이나 인터넷의 평자들은 회사와 개인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충고를 해댄다. 이런 말들은 과연 들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런 말들이 영화산업에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새로운 기술을 익혀라.’ 사업이 번성할 때 사람들은 일에 쫓긴다. 침체기에는 일이 없어도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보려고 더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일을 늦추고 이 기회에 미래에 도움이 될 새로운 기술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 한 평자는 회사에서 서로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주면 어떠냐고 제안한다. 영화감독들은 이번 기회를 평소에 해보지 못한 완전히 다른 일을 해보는 기회로 삼는 건 어떨까? 일이든 공부든 자원봉사든. 영화를 만들 때 개인의 경험이 밑천이 되는 것이라면 지금이 바로 재미있고 특이한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다.
‘사업과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하라.’ 위기에서는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IT 벤처 회사 위기 때 살아남은 사람에 따르면, 이럴 때 최고의 방법은 사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작은 개선책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시절이 좋을 때 사업의 속도를 늦추었던 작은 결점들을 찾아 지금 개선한다면 위기가 지난 뒤에는 한참 앞서 시작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야말로 현재 영화산업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태도다. 적법한 다운로드 서비스가 당장 영화산업을 구할 수는 없지만 그 분야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지금껏 노력해온 대로 계속해서 말이다). 영화산업이 장기적으로 안정되기 위해서는 티켓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지금이 그걸 추진할 적기다. 비용에 관련된 투명성을 높여 투자자들에게 확신을 주고, 국내와 해외에서 한국영화를 광고할 새로운 방법을 찾고, 가족과 나이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도록 장려하고, 더 많은 미래의 영화 예술가들을 만들기 위해 학교에서 영화교육을 강화하고, 이 모든 일들이 시간을 들여 노력할 만한 일들이다.
‘작은 성과를 기념하라.’ 침체기에 큰 성과를 거두리라 예상하기는 어렵다. 큰 성과를 기다리고 앉아 있기보다는 작은 성공을 기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우울해 있으면 자기 패배감에 빠지기 쉽다. 침체기에 거두는 작은 성과는 호시절에 거두는 큰 성과만큼 중요하다. 작은 성과들을 기념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라.
그런 마음으로 나는 2008년에 새롭게 데뷔한 감독들에게 축배를 들어주고 싶다. 올해 나의 눈을 사로잡은 이들은 <추격자>의 나홍진(그는 사실 ‘큰’ 성과를 거뒀다),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영화는 영화다>의 장훈, <낮술>의 노영석, <약탈자들>의 손영성, 기억에 오래 남는 다큐멘터리 <석섬이 되다>의 임은희다. 물론 그외에도 칭찬과 격려를 받을 만한 이들이 많이 있다. 올해의 한국영화를 이만큼이나 흥미롭게 해준 그들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