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니와 준하는 같이 산다. 그러나 그들의 집에는 준하가 알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세 번째 동거인이 있다. 그는 와니에게 사련(邪戀)의 기억을 무덤처럼 남겨두고 떠난 이복동생 영민이다. 건조한 음성의 국제전화가 걸려온 어느 여름날 이후, 준하는 웃음기 걷힌 와니의 눈이 자꾸만 자기 어깨 너머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행복이 끝난다. 머지않아 끝나버린다.
‘치정극’ <해피엔드>에 이어 청년필름이 제작한 ‘순정영화’ <와니와 준하>는 만남에서 이별까지 연애의 전말을 따르지 않고, 사랑이 긋는 포물선의 한 구간을 잘라 들여다본다. 그럼에도 <와니와 준하>는 단순하거나 단조롭지 않다. 영화의 전경(前景)을 차지하는 와니와 준하의 현재는 일기처럼 담담하지만, 현재진행형 스토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와니와 영민의 운명적 비련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음영을 더하고, 20대의 삶에서 또 하나의 중요 테마인 직업에 관한 이야기가 보태져 영화의 부피를 확장한다. 첫사랑의 신화를 예찬하는 수채화풍의 애니메이션으로 꾸며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이 오밀조밀하게 구성된 영화를 감싸는 더할 나위 없이 예쁜 장정이다.
역시 이중적 내러티브를 구사한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이 춘희의 시나리오를 구성의 징검돌로 썼다면, <와니와 준하>의 김용균 감독은 ‘데자뷰’ 현상을 영화적 도구로 슬기롭게 활용한다. “그 사람 정말 사랑해”라는 당당한 소양의 고백 뒤에는, 몇해 전 참담한 비극으로 귀결된 와니의 초라한 사랑고백이 회상된다. 기억의 포로인 와니를 때없이 과거로 돌려보내는 괘종시계 소리, 작은 손짓 하나, 음악 한 소절은, 매끄러운 편집의 이음매에 공을 들인 이 영화에서 접속사 노릇을 한다.
한편 치밀한 편집과 나란히 쓰인 심리적 복선들은 마치 ‘말수 적고 친절하고 어른스런’ 인물들의 성격을 부각시킨다. 영화사에서 속상한 일을 당한 준하는 비오는 저녁 공중전화 부스에서, 밤샘 하는 와니의 안부를 쾌활하게 묻는다. 카메라가 물러나면 우리는 그곳이 와니의 사무실 바로 앞 부스였음을 발견한다. 귀갓길의 준하에게 소양은 가지고 간 우산은 어디 있는지 묻고, 카메라는 길가에 내동댕이쳐진 우산을 스치듯 보여준다. <와니와 준하>에서 널브러진 몽당연필, 낡은 자전거에 새겨진 이니셜 등등 만화적인 인서트들은 마치 아다치 미쓰루의 만화에서처럼 인물의 가려진 슬픔이나 남모르는 배려를 드러낸다. 와니가 “날씨 좋다”를 중얼거리자마자 천둥이 치는 장면의 유머도 아다치 미쓰루에 대한 오마주다. 앞장면을 잘 기억할수록 뒷장면의 의미는 풍부해지는 이런 영화의 관객은 방심하면 지루해지기 십상이므로 사금을 채취하듯 꼼꼼해지는 편이 이득이다.
<와니와 준하>가 겉장에 곱게 적은 ‘순정영화’라는 표제에는 단순한 포장지 이상의 실속이 있다. 심리의 정밀묘사에 특출한 순정만화의 미덕을 수용한 <와니와 준하>는 감정의 엄살을 떨지 않고 사랑의 실제 증상과 함정을 보여줌으로써 기성 멜로드라마의 약점을 넘어선다. 한편 <와니와 준하>는 기존의 멜로드라마에서 특별한 척했던 것들의 보편성을 드러내고 보편적인 척했던 라이프 스타일의 바깥쪽에 존재하는 젊은이들을 조명하는 건강함을 보인다.
영화 속 인물들의 직업은 트렌디드라마의 그것이지만 그 생활에는 보편적인 좌절과 곤란이 따른다. 그런가 하면 <와니와 준하>에서는 변형된 가족,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동거 커플, 동성애자, 언어장애자 등이 전혀 별스럽지 않게 일상의 풍경 속에서 동거한다. 그러나 고양이를 차로 치고도 뻔뻔한 남자와 준하가 벌이는 싸움은, 영화 속 젊은이들이 지켜가려는 개방된 삶의 양식과 무감동한 세상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스타 파워를 빌리되 스타의 숨겨진 파워도 일깨웠다는 점도 <와니와 준하>가 지닌 대중영화의 덕목. 특히 지난 계절에 앓은 ‘중병'에서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와니가 되기 위해 음성과 눈빛의 숨을 죽인 김희선의 하얀 물그릇 같은 얼굴은, 특유의 자존심은 간직한 채 전에 없던 피로와 체념, 포용의 표정을 담아냈다.< 조·단역 연기의 부분적인 어색함, 만화기법 등을 영화로 옮기며 적당한 호흡을 부여하지 못해 효과가 반감된 대목은 흠이지만 <와니와 준하>는 올해 한국 멜로영화가 피워낸 싱싱하고 향기로운 꽃이다.
와니와 영민의 근친애는 와니와 준하의 평온한 연애보다 몇배로 강렬하다. 그러나 <와니와 준하>는 중요한 것은 죽여서 가슴에 묻어야 할 사랑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게 하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조용한 격랑을 타넘은 두 연인이 손을 잡고 다시 들어서는 와니의 집은 흰 돛을 단 작은 배처럼 보인다. 그 배는 위태롭지만 힘닿는 데까지 바다를 헤쳐가려 한다. 언젠가 범선의 모델을 조립한 영민 역시 와니와 둘만의 멀고 영원한 항해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의 풍향은 변덕스럽고 사람들은 항구에서 타고 내린다. 비록 어디쯤 닻을 내릴지 알 수 없다 해도, 지금 배를 탄 연인의 이름은 영화 제목대로 와니와 준하다.
김용균 감독 인터뷰
-‘동거’라는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이 많았나보다.
=원래는 ‘동거’에 더 집중했는데, 비중이 작아졌다. 나는 결혼했지만 실제로 동거하듯 산다고 생각하고 주변에도 연인과 동거하는 친구들이 있다. 동거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 터부시되지만 젊은이들에겐 낯설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보통 연애영화는 각자 공간이 있는 남녀의 만남을 그리는데, 남녀가 같이 지내면서 생기는 생활의 정경을 그리고 싶었다.
-자작 시나리오를 오랫동안 작가들과 다듬었는데.
=에피소드가 훨씬 재미있어졌고 구성의 완결 정도도 높아졌다. 영민이 와니의 눈썹을 그려주는 이야기는 서신혜 작가가 썼고, 주인공의 정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구조적으로도 깔끔하게 영화를 열고 닫아야 하는 애니메이션 부분 스토리는 조감독의 작품이다. 평가뿐 아니라 구체적 대안까지 내고 끝내는 회의방식을 통해 기획팀, 프로듀서도 적극 참여했다.
-영민과 와니의 과거의 장면들이 시나리오와 다른 순서로 편집됐다.
=영민이 현재의 극적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회상장면은 중요했다. 편집 과정에서 와니의 갈등을 묘사하고 정서에 긴장감을 주는 데 이 순서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춘천이라는 도시와 영화적 공간을 선택한 이유는.
=취재했던 애니메이션 회사 서울무비가 춘천에 있었고 내가 자란 소도시 진주와 비슷한 느낌도 좋았다. 와니의 집은 2년 가까이 찾아헤매다 운좋게 발견한 폐가를 리모델링했다.
-영화 속에는 겨울이 없다.
=헌팅에 공들일 여유를 얻고, 봄·여름에 걸쳐 촬영하게 된 점은 캐스팅 지체가 가져다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현재와 과거의 계절도 동일한데, 플래시백의 색채를 달리하거나 장치를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시공의 반복, 현재에 미치는 과거의 힘을 묘사하고 싶었다.
-와니의 흐느낌을 길게 찍었다.
=아버지와 준하가 떠난 시점이 겹쳐지면서 내성적인 와니는 감정을 터뜨린다. 혼자 있을 때 그렇게 울어본 경험, 누구나 있을 거다. 찍다 길어진 건 아니고 처음부터 길게 가려 했다. 클로즈업으로 들어간 400자짜리 재촬영까지 했지만 오버인 것 같아 쓰지 않았다.
-몇몇 대목에서 점프컷을 썼다.
=시공간 구분의 생략과 함께 편집에서 유일하게 시도한 작은 실험이다. 통상 정서 흐름을 따라가는 기존 멜로드라마와 작은 차별을 갖고 싶었다. 큰 사건이 없어 발생할 수 있는 리듬의 ‘처짐’을 줄이는 효과를 꾀했다.
-‘순정영화’라는 컨셉에 대해.
=워낙 만화를 좋아해 준비단계에서 순정만화의 장점을 많이 이야기하게 됐는데, 아예 기획 컨셉으로 쓰자는 의견이 나왔다. 과잉감정, 과잉연기의 신파와 차별되는 맥락이다.